내 6mm 영화 카메라, ELMO 3000

가끔 방을 정리하다가 보면, 정말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옵니다. 워낙 여기저기 버려진 물건들 주워다 고쳐쓰는 버릇-_-에 길들여져 있는지라, 조금 쓸만하다 싶으면 주워서 손 본 다음, 애지중지 보관하다가-

까.먹.습.니.다.

이번에 방정리할 때도 그랬다지요.
실은 이번 방정리는, 정리라기 보다는 차라리 재건축-_-에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 반트럭분의 책을 가져다 버리고..(엉엉엉…ㅜ.ㅡ) 100여장의 CD를 버리고…(대체 이런 CD를 왜샀던 것일까…) 아무튼 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버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엉뚱한 물건을 하나 발견합니다.

1970년에 일본 ELMO에서 만들어진 6mm 영화 카메라. ELMO 3000.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 자그니를 카메라-_- 소년에서 영화소년으로 바꾸게 만들었을지도 몰랐을 물건.

제 동생의 친구가 내게 가져다준… 필름과, 영사기와, 편집기가 셋트로 있던 이 카메라는, 어린 자그니를 몇개월내내 “영화를 찍는거다!”라는 꿈으로 들뜨게 만들었던 물건입니다. 그래서 다 늙은 다음에는 나도 “씨네마 천국”의 한장면을 몸소-_- 재현해 볼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기대를 가지게 만든 물건이기도 합니다. 

… 그렇잖아요?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영화가 아닌 사진이라고 해도, 하늘과 땅의 차이니까요. 그리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이 카메라는, 몇몇 영화학도들이 실전에서 연습용으로 쓰고있던 카메라였습니다.

하지만… “뭐 좀 만들어볼까?” 하는 판이 다 그렇듯이 이 카메라도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바로 필름을 현상하는 값이. 당시 90년대 초반이었는데, 필름값만 해도 1롤에 2-3만원씩 불렀던 것 같고, 그 필름을 찍은 다음에 다시 일본에 보내서 몇 달에 걸쳐 현상해서 다시 오는 비용도 장난 아니었고… 게다가 다들 한두 롤로는 1-2분짜리 장면하나 만들기도 힘들다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몇십 롤은 들어가야 볼만한 장면 하나 만든다고.

고등학생이었던 자그니는 당연히 그만한 돈이 없었고, 꿈을 아무 생각 없이 접어버리고 맙니다. (… 말은 이렇게 하지만.. 6개월 가까이 이거 하나 사용해 보겠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던 것 생각하면 🙂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서른살을 훌쩍 넘겨버린 이 카메라는, 내 방 귀퉁이에서 부활하듯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활은 불안한 것이라, 그 녀석은 이제, 편집기도, 영사기도, 필름도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못난 서른몇살짜리 카메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자그니는 그 못난 녀석을 접어, 장식용-_-으로 필요하다는 친구에게 넘겨버릴 지도 모릅니다. 자그니는 이제 10대도 아니고, 그런 꿈을 꾸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습니다.

자그니는 이제,
병원비를 걱정하고, 건강을 걱정하고, 월급을 걱정하고-
민방위 훈련을 걱정하고, 결혼을 생각해 보고, 동생들 생활을 지켜보며,
영화를 보다가 자꾸만 울어버리고, 소설을 쓰다가 막혀서 답답하고,
끊어버린 담배가 그립고, 몸에는 29개의 칼자국이 새겨진…
하루에 한번씩 청소를 하고, 빨래를 걷고, 두번씩 밥을 차리는…
그리고 그러다 힘들면 쓰러져 한시간씩 자고 하는…
그런 서른이 되었습니다.

나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알고 있습니다.
꿈, 또는 새로운 시작이란 것은, 그런 물건 하나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간직하고 있던 꿈은,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서 무엇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나는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지금도…
매일매일 세상에서 배우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예, 나는, 자.라.고 있으니까요.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두려움 속에서, 몇 달후에 무엇을 할 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수없는 불안함 속에서, 내일 소중한 누군가를 볼 수 없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슬픔 속에서도,

나는,
날마다,
무럭무럭,

계속 자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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