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모바일 제품들


인터넷 서점에서 ‘처음’을 검색하면 수천 종이 넘는 책이 나타난다. ‘나도 내가 처음이라’, ‘돈 공부는 처음이라’,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등등. 그만큼 힘들어서 그렇다. 어쨌든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도 해본 적이 없으니 위험하다.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는 이럴 때 처음 움직이는 사람에게, 퍼스트 펭귄이라는 이름을 붙인 상을 줬다고 한다. 펭귄 무리가 적이 은밀히 잠복해 있을지도 모르는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 반드시 어느 하나는 첫 번째 펭귄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모바일 세상에도 그런 퍼스트 펭귄들이 있다.

지금 우리 삶을 바꿔놓은 변화를 주도했던 펭귄들. 세계 최초의 모바일 제품들을 소개한다.

 

1. 세계 최초의 휴대폰 – 모토로라 DynaTAC 8000X, 1984년

휴대폰 개발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1947년에 처음 아이디어가 나오고, 1973년에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984년에야 출시될 수 있었다.

출시 가격은 3,995달러로 현재 시가로 10,300달러(한화 약 1,300만 원)에 달한다. 크기(33cm)와 무게(790g)가 표준 벽돌과 비슷해서 벽돌폰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제 와서 다시 보면 휴대폰보다는 전쟁 영화에 나오는 무전기를 더 닮았다. 완전 충전에 걸리는 시간도 10시간. 이렇게 비싸고 무거운 제품이지만, 출시할 때는 구매 대기자만 해도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화기를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혁명적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망도 없어서, 1세대 휴대전화 네트워크(AMPS, Advanced Mobile Phone System) 자체가 이때 함께 구축되었다.

 

* 한국 최초의 휴대폰 – 삼성전자 SH-100, 1988년

국산 휴대폰 1호는 1988년 삼성전자에서 만든 SH-100이다. 휴대폰 크기는 40cm(안테나 길이 포함), 무게는 거의 800g으로, 역시 벽돌폰이라 불렸다.

* 세계 최초의 TFT-LCD 컬러 휴대폰 – 삼성전자 SGH-T100, 2002년

휴대폰 개발은 뒤처졌지만 컬러 휴대폰 시장은 한국에서 먼저 문을 열었다. 세계 최초로 TFT LCD 디스플레이를 달고 나온 삼성전자 SGH-T100이 그 주인공이다. 128×160픽셀 해상도에 12줄을 표시할 수 있었던 이 폰은, 삼성전자의 첫 번째 텐밀리언셀러 휴대폰이자, 세계 3대 휴대폰 제조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든 폰이기도 하다.

 

2. 세계 최초의 모바일 컴퓨터 – 샤프 PC 1211, 1980년

세계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라면 아마 도시바 T1100(1985년)이나 오스본 1(1981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모바일이란 관점에서 보면, 그 영광은 샤프에서 만든 포켓PC, 샤프 PC-1211에게 돌아가야 한다(미국명 TRS 포켓컴퓨터 PC-1).

미국 전자제품 판매점 라디오샤크에서 판매한 공학용 계산기 형태의 컴퓨터는, 디스플레이는 고작 24글자를 표시할 수 있는 1줄짜리였지만, 엄연히 베이식 언어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휴대용 컴퓨터였다.

램 4K bit에, 무게는 고작 170g. AA 배터리를 쓰긴 하지만 전용 프린터로 출력도 가능하고, 카세트테이프에 저장도 할 수 있었다. 출시가는 230달러. 모바일 컴퓨터라는 개념은 나중에 키보드가 달린 서브 노트북 형태의 PC, 팜탑 PC(Palmtop PC)로 이어지고, 다시 키보드가 달린 휴대폰과 스마트폰까지 발전하게 된다.

 

* 세계 최초의 PDA – 애플 뉴턴 메시지 패드(1993)

애플2로 인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열리자, 이에 힘입어 포켓PC가 등장했다. 이때 등장한 포켓PC 시리즈 사이언 오거나이저(Psion Organiser, 1984년)는 주소록 및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탑재해 큰 인기를 끌었다.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라 불리는 개인용 정보 단말기의 전신이었던 셈이다.

* PDA란 말을 직접 쓴 건 애플에서 만든 뉴턴 메시지 패드(1993)부터다. 당시 애플사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가 만든 말이다.

뉴턴 메시지 패드는 필기 인식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혁신적인 장치였지만, 비싸고 버그가 많아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휴대기기를 펜을 이용해 조작한다는 개념은, IBM 사이먼(IBM Simon Personal Communicator, 1994)으로 이어지고, 나중에 팜파일럿(1996)이란 인기 PDA 제품이 태어난다.

 

3.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 – 새한 엠피맨(1998)

세계 최초의 모바일 음악 기기는 1979년에 출시된 소니 워크맨 TPS-L2다. 음악을 함께 듣는 것에서 혼자 듣는 것으로, 앉아서 듣는 것에서 걸어 다니며 듣는 것으로 만든 제품이다. 이후 음악 매체의 변화와 함께 휴대용 CDP 등이 출시됐지만, 워크맨만큼 세계를 바꾸진 못했다.

디지털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후반, 정확히 1998년에 출시된 제품이다. 두께 16.5mm에 무게 65g으로, 다른 휴대용 음향기기에 비해 작고 가벼웠던 이 제품은, PC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MP3 파일을 바깥에서도 들을 수 있게 만들어준 제품이다.

 

● 세계 최초로 OLED 디스플레이를 담은 MP3 – 아이리버 클릭스(2007)

아쉽지만 엠피맨은 시장에서 성공하진 못했다. 대신 다른 플레이어들이 앞다퉈 MP3 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게 만드는 퍼스트 펭귄이 되었다. 후속작 중 아이리버 클릭스는 돋보이는 제품이다.

사면을 눌러서 조작하는 디클릭 시스템이나 예쁜 디자인도 좋았고, 세계 최초로 모바일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해서, 2.2인치 작은 디스플레이에서도 뛰어난 화면 품질을 보여줬다. 같은 해 일본 교세라에서도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휴대폰 미디어 스킨이 발매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두 제품은 지금 봐도 참 예쁘다. 이후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휴대폰 및 미디어 플레이어가 여럿 나오게 된다. 아, 한국 최초의 OLED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은 2008년에 출시된 삼성 오리진이다. 2009년 출시된 삼성 햅틱AMOLED(SCH-W850) 폰이 아니다.

● 세계 최초로 비즈니스 모델을 담은 MP3 플레이어 – 애플 아이팟(2001)

시작은 한국에서 했지만, 세계를 휘어잡은 MP3 플레이어는 애플에서 만든 아이팟이다. 2001년 출시된 이 제품은, 처음에는 애플 맥 컴퓨터만 지원했기에 인기와 비교해 많이 팔리지는 못했다. 나중에 윈도우 PC 지원이 시작되고, 2004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통해 음원을 정식으로 살 수 있게 되면서, 음악 시장을 CD 같은 실물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이동시켰다(그전에는 음악 CD를 아이튠즈를 이용해 음원 파일로 만들거나, 냅스터 같은 P2P 사이트에서 내려받았다). 디지털 음원 시장은 나중에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로 발전했고, 아이튠즈 모델은 스마트폰 앱스토어 사업 모델의 원형이 되었다.

 

4.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 IBM 사이먼(1994)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이 어떤 제품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초기에 나온 전자수첩 형태의 휴대폰까지 포함할 것인지, 모바일 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휴대폰도 들어가는지, 아니면 컴퓨터처럼 인터넷을 쓸 수 있는 폰을 스마트폰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스마트폰은 노키아 9210 커뮤니케이터(2001)라고 생각한다. 심비안 OS가 최초로 탑재된 이 폰은, 이메일과 웹서핑, 문서 작업을 할 수 있고, 원하는 앱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었다. 키보드가 달린 초기 스마트폰 스타일은, 나중에 (미국에서) 사이드킥과 블랙베리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냥 부가 기능이 들어간 똑똑한 전화기라면, 1994년에 나온 IBM 사이먼이 처음이다. 이메일 및 팩스를 보낼 수 있고, 스타일러스를 이용해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는 기기였다. 주소록이나 달력 같은 전자수첩 기능도 쓸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모바일 컴퓨터의 휴대폰 버전이다. 다만 비싼 가격과 너무 짧은 배터리 수명 덕분에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 세계 최초의 멀티 터치 스마트폰 – 애플 아이폰(2007)

아이폰은 정전 방식의 멀티 터치 스크린을,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하는 스마트폰 조작을 처음 도입한 스마트폰이다. 스타일러스 펜이 없어도 자유롭게 화면을 조작하고, 멀티 터치를 이용해 다양한 제스처를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최초로 선보였다. 얼리어댑터의 장난감이나 문자 메시지 전용으로 쓰이던 스마트폰을 모두가 쓰는 폰으로 만든 1등 공신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처음엔 스마트폰이 아니라 아이팟 + 휴대폰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처음 출시됐을 때는 앱스토어가 없었다.

 

5. 세계 최초의 플렉시블 OLED 스마트폰 – 갤럭시 라운드(2013)

이제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라고 하면, 끝이 둥글게 말린 엣지 디스플레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초의 플렉시블 OLED 스마트폰이었던 갤럭시 라운드는 조금 다르다. 일명 기왓장 폰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전체 디스플레이가 안쪽으로 휘어진 듯한, 커브드 모니터를 보는 듯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너무 튀는 디자인이라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은 다음 해에 출시된 갤럭시 노트 엣지(2014)로 이어진다. 안으로 휘는 대신 화면 끝을 둥글게 처리했던 이 제품은, 화면이 옆으로 흐르는 느낌 덕분에 큰 관심을 받았다. 엣지 디스플레이를 세상에 각인시키고, 고급형 스마트폰의 다른 진화 방향을 제시한 제품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의 절정은 역시 갤럭시 폴드(2019)다. 7.3인치의 주 디스플레이와 4.6인치의 보조 디스플레이를 가지고 있다. 화면을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다. 수년간 나온다는 소문만 들렸던, 꿈의 기기로 여겨졌던 제품을 실제로 만들어냈다. 따라 나온 다른 회사의 여러 폴더블 스마트폰이 사실상 실패한 지금, 2세대 제품까지 성공적으로 출시한 갤럭시 폴드는 2020년대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먼저 출시한 모든 제품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아니, 아이디어만 남기고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오죽하면 갤럭시 폴드가 먼저 출시되어 실패하기를, 다른 경쟁 회사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랜디 포시가 주는 ‘퍼스트 펭귄’ 상도 ‘도전 목표에는 실패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시도해 승부수를 띄운 팀’에게 주는 상이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기억되고, 다시 새로운 제품이 나올 씨앗이 된다. 혹시 지금 퍼스트 펭귄이 될까 봐 두려운 사람이라면, 이 말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경험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 랜디 포시, 마지막 강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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