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애인이 전에 백만명과 같이 잔 사람이라고 해도

이글루스 연애밸리가 후끈 달아올랐다. 일명 ‘처녀랑 결혼하지 말아야할 이유’ 논쟁. … 거참, 논쟁 이름 한번 오덕지다. -_-;;; 일단 이런 논쟁을 보고 있으려면, 「연애, 그 유혹과 욕망의 사회사」가 자꾸 떠올라서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이런 논쟁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사실 이 책이랑 「조선의 성풍속사」를 같이 읽다보면, 몇몇 남성들의 ‘처녀 밝힘’이 과연 우리 고유의 풍속인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그러니까, 일명 ‘처녀 밝힘’은 한국 역사에선 ‘왕실의 간택’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 애시당초 조혼, 그러니까 민간에선 성적으로 성숙하기 이전에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도령과 성춘향이 몇살때 놀아나는 지를 생각해 봐라.)

물론 유교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숙하지 못한(?) 여성에 대해선 매우 잔인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론 유교적 이데올로기랑 기독교의 육체적 쾌락에 대한 부정이 만나 어떻게 짝짜꿍해서 ‘순결 이데올로기’까지 낳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자리에서 증명할 문제는 아니고….

그렇지만 처녀니 숫총각이니 하는 논쟁은 본질을 놓치고 있다. 그러니까, 상대가 처녀면 어떻고 숫총각이면 어떻단 말이지? 과장되게 말해서 상대가 다른 남자 천명이랑 잠을 자본 사람이면 어떻고, 수만명의 여성을 울린 남자라면 어떻단 말이지? 그러니까, 상대를 어떤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게 대체 무슨 문제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니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건,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다.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과거의 남자/여자 친구가 몇명 있었건, 숫총각이건 아니건, 처녀이건 아니건, 그걸 왜 당신이 신경쓰는가? 그런 이유로 지금 사귀고 있는, 앞으로 사귈지도 모를 사람을 판단하려거든… 그래라. (누가 말리겠는가.)

하지만, 그걸 신경쓰는 순간, 당신은 ‘현재’를 버리고 ‘과거’를 선택하게 되는 것임을 진지하게 인정하라. 물론 평판은 중요하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대부분 일면적이며,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 지를 아는 것은,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 … 그렇지만 아는 것과 신경 쓰는 것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그와 함께 있고 싶은가-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니? 하는 질문이 아니다. 연인이 된다는 것은 그와 함께 있음을 선택한다는 것이고, 그의 편이 되기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육체적 갈망에 눈 먼 관계가 아닌, 진짜 연인이라면 말이다. …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그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닌, 그의 현재 위치, 처녀/총각등에 대해 먼저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불편하다. 하나의 판단 기준이나 조건으로 상대를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견의 프레임을 씌우고 사람들을 ‘몇몇 유형으로 일반화’시키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를 통해 그의 현재를 이해하기보다, 과거를 통해 그가 보여주는 현재의 못마땅한 모습을 합리화시킬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진실을 말해줄까? 처녀니 영계니 숫총각이니 따지는 것, 아무 의미없다. 오히려 따지는 사람들이 더 잘 속는 경우도 더 많이 봤다. 조건이 명확한 사람에게 조건에 맞는 척 행동하는 것, 쉽다. 경험이 없다고 섹스를 못하지도 않는다. 유감이지만, 많은 성의학자들의 책-_-;;에 따르면(미안하다, 본의 아니게 좀 많이 읽었다.), 서로 솔직히 얘기하고 소통을 하는 것이, 성행위에 있어서 만족도를 높이는데 더 많은 도움을 준다.

다양한 경험이 인생에 도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험은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에 도움되는 것이지, 성감대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다. -_-;;; (그러니까 제발, 남성잡지나 포르노가 세뇌시킨 망상은 좀 벗어나길…-_-;;) 처녀나 영계나 숫총각이라고, 당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그/그녀를 정복할 수도 없다. 못난 건 못난 거고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사람이랑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 ‘경험없는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와 함께 있고 싶은가, 그의 편이 되고 싶은가-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런거다. 그게 아니라면 상대를 이용하는 거지. 제갈공명이 삼고초려에 넘어간 것은 유비의 편이 되기를 선택했던 것이지, 자신의 삼분지계를 유비를 통해 실현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의 영역을 인정해 줘라. 이미 내가 한편이 되기로 결심했는데, 그가 뭐뭐뭐인지가 그리 중요한가. 그가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기 전에, 그와 함께 뭐를 하며 놀고 싶은 지를 고민하는게 백배는 더 낫다.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진도를 나가고(?) 싶어하는데 다른 사람은 끝까지 거부한다면, 깨지는 게 당연한 거다. 그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라. -_-; 타인의 조건을 맞출 필요는 없다. 태도는 가치관에 달려있고, 가치관은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 속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 지에 대한 결과다. 노력했는데 싫다면, 어쩌겠는가. 사랑하니까란 핑계로 참는 일 따위 하지마라. 서로 손해다. -_-;

다르게 생각하는 건 다르게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까 서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도, 인정할 수 없는 부분도 생긴다. 그 부분이 별 것 아니라면 모르겠지만,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앞으로 어떻게 함께 하겠는가. -_-; 유비가 덕-을 버리고 사람 죽이는 귀신이 됐다면 제갈공명이 계속 그를 따랐겠는가.

요약하자면, 처녀니 뭐니 하는 논쟁 의미없다. 관계의 만족은 소통이 훨씬 더 중요하고, 경험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태도도 신뢰할 것이 못된다. 관계맺음은 서로 끌리는 것이 있어서 ‘같은 편이 되기를’ 택하는 거다. 다만 한번 맺었다고 관계 자체에 이끌려가진 말라는 말.

* 도쿄까지 와서 별 글을 다 쓰고 있습니다. -_-;;;
* 요즘 ‘진실을 말해줄까?’ 라는 표현 자주 쓰는 듯. 이거 매트릭스 1에서 나오는 neo 의 마지막 대사에요. -_-;

* 근데 이거 쓰다보니 자꾸, 유비-공명 BL 물로 변하는 듯?
* …이거, 19금은 아니겠지요?

  • 2008년 10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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