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벨파스트, 그리운 사람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제가 20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제 조카들은,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 조카들 만나러 제주도 갔다가 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어땠을까. 그 무뚝뚝한 양반이, 손주들 보면서 얼마나 좋아했을까-하고요. 나한테도 이렇게 예쁜데, 아버지가 보시면 정말 얼마나 예뻤을지.

벨파스트, 북 아일랜드 수도 이름을 가진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인 ‘버디(주디 힐 분)’보다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더 마음이 끌렸던 이유입니다. 그래도 아직 젊은데, 왜 저 노부부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건지. 아마 제가 결혼도 안했고, 자식도 없고, 그래서 버디 엄마 아빠 보다는 버디 할아버지(…)에 더 가까운 위치여서 그랬나봅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 제대로 늙으셨어요. 아휴. 정말 나도 저렇게 늙으면 참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멋진 할아버지로 나옵니다.

글에 인용된 사진은 다른 크레딧이 없으면 모두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7941

벨파스트,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옛날(?) 벨파스트에 살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시네마 천국이 떠오르는 데, 시네마 천국과는 조금 다릅니다. 뭐랄까, 후일담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옛날 어느 한 때, 그 곳에 살았던 소년이 그곳을 떠날 무렵 이야기. 영화는 그 시간을 잠깐 보여주고 끝냅니다.

감독은 실제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케니스 브래너. 감독 이야기 같긴 한데, 감독이 이거 내 이야기다-하는 말은 안했습니다. 창작물이에요. 영화 내용도 현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에 가깝고요. 아빠 어렸을 적에 벨파스트는 말이지- 아빠가 왜 고향을 떠났냐면 말이지- 뭐 이렇게 술 한잔 마시고 기분 좋아진 아버지가 썰을 풀어놓는 느낌.

영화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 연극처럼 흘러갑니다. 거리 세트 하나 짓고 영화를 다 찍은 느낌인 것도 그렇고. 악역을 맡은 한 명만 빼면 다 착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빠 엄마가 잘 생기고 예쁩니다. 친형은 사고도 안쳐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늙어서까지 서로를 챙겨주고 사랑하는, 닮고 싶은 노부부.

… 자전적 영화에선, 이런 거 나오기 힘들죠.

그저 감독이 기억하는, 어떤 따뜻했던 시절의 벨파스트. TV에서는 스타트랙이 방영되고, 극장에선 ‘치티치티뱅뱅’이 걸리던 시절. 종교 갈등으로 인한 유혈 사태가 일어났지만, 그런 와중에도 꼬마 주인공은 열심히 삽니다. 좋아하는 소녀가 있고, 그 애 옆에 앉고 싶어서 공부하고, 축구와 장난감 자동차를 좋아하죠.

… 설정상 제 조카랑 동갑인데, 제 조카도 저럴까요? 이 녀석도 축구광인데, 꼬마 주인공도 비슷한 꿈을 꿔서 혼자 빵-터졌다는.

아버지는 영국으로 건너가 기러기 부부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이고, 어머니는 가난하면서도 떳떳하게 생계를 꾸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할아버지는 목공일을 하며 꼬마 주인공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정말 멋진 아일랜드식(?) 농담을 날립니다. 그걸 받아치며 꼬마 주인공에서 용돈을 쥐어주는 할머니도 있고요.

그러니까, 어쩌면 감독이 ‘사랑 받았던’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벨파스트.

반전 같은 건 없지만,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할 만큼, 그때 그 시절을 따뜻하게 잘 풀어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그리워하는, 어떤 ‘가족’이 가진 이미지를 잘 담았다고나 할까요. 후일담 영화가 아니라서, 시네마 천국이 가진 그런 감동은 없지만요.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탄압을 당하는 입장이 아닌 탓도 큽니다.

▲ 장례식 피로연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할아버지 장례가 끝나고 모여 피로연(…)을 여는 사람들. 장례식이 끝났는 데 갑자기 노래하고 춤추기에, 대체 이게 뭐야-했는데, 아일랜드 장례 문화가 그렇다고 합니다. 나중에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네요.

사실 예전 벨파스트 문화(?)를 꽤 제대로 고증했기에,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울기도 한다는 데… 어쩌면 한국에서 이 영화가 조용히 묻히고 넘어간 건, 벨파스트의 그때 그 시절과 전혀 상관없는 나라인 탓도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린 모두 죽습니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죠. 언제 올 지 모르니 모른 척 살지만, 언젠가는 정말 편히 쉬게 돼요. 그때가 오면, 사람들은 우릴 어떻게 기억할까요? 조카들에게 저는, 어떤 큰아빠로 기억에 남을까요?

그냥 친척, 아빠의 형, 그런 사람은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재밌었던 사람, 가끔 고민이 생기면 하소연할 수 있던 사람, 그렇게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음, 그러니까,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말이죠. 다른 사람들이 다 잊어도, 너희들만은.

그거면 족합니다. 내 삶에서는.

* 그나저나, 애가 연기 자연스럽게 잘한다- 싶었더니, 감독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찍고 싶어서, 리허설이라고 뻥치고 주인공 몰래 카메라를 돌렸다고 하네요. 영화 속 많은 장면은, 그런 리허설 장면에서 건진 컷이라고.

* 흑백 영화입니다. 보다 보면 이상하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지만요. 장면 장면도 예뻐요. 그냥 그대로 스틸컷 찍어서, 노트북 바탕화면으로 써도 될 정도.

About Author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