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후기

한파 경보가 울리던 날입니다. 어제죠. 나름 두껍게 입고 산책하러 나갔는데, 바람이 분 탓인지 추위가 장난 아닙니다. 급하게 근처 쇼핑몰로 피신했습니다. 그냥 나가기가 그래서, 영화나 한 편 보고 좀 쉬다가 가기로 합니다. 슬램덩크 보려는 데 자리가 없네요. 설날 연휴라서 그런 가 봅니다.

다행히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은 자리가 있습니다. 적당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상영 시간도 102분이라서 적당합니다. 상영관도 이번에 리모델링 되었다기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수퍼S 관입니다. 다 좋아보였는데, 여러모로 배신 당했습니다(?).

먼저 상영관. 리모델링된 상영관은 수퍼플렉스지 수퍼S가 아니었습니다. 어째 추가 금액을 더 안받더라니. 사운드도 좀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영화 초반이 뮤지컬처럼 진행되는 데, 소리가 뭉개져서 들려요. 그리고 ‘장화신은 고양이’. 이건 좋은 의미로 기대를 배신했네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후반부 배경인 어둠의 숲에 대한 설정입니다. 이 숲을 탐험하는 지도를 누가 가지는 가에 따라, 지형이 완전히 바뀝니다. 이거 보면서, 어? 이런 설정으로 게임을 만들어도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 손에 있는가에 따라 지형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설정 자체가 게임 재미를 이끌어내는 기믹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 물론 저만 이런 거에 환호하는 거 다 아니까, 넘어가겠습니다.

다음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목숨 하나만 남은 고양이란 설정입니다. 아니 설정이야 충분히 흔한 설정인데, 이걸 이렇게 풀어낼 줄 몰랐습니다. 목숨이 남아 돌아서 배짱을 부리다 레전드 위치까지 올라간 고양이가, 그 목숨이 하나만 남자 죽을까봐 벌벌 떠는 이야기라니. 이거 애들용 이야기 맞나요?

덕분에 이야기는 시리어스함과 귀여움을 숱하게 넘나 듭니다. 예를 들어 ‘배드 가이즈’에서 보던 거와 비슷한 늑대가 나타나기에 찬조 출연인가? 했더니, 애들 영화에선 거의 본 적 없는 절대적 공포를 보여주는 괴물이었어요. 최종 보스 빅 잭 호너는 또 어떤가요. 진심 사이코 패스입니다. 용납할 구석이 하나도 없는.

반면 이 영화의 귀여움과 웃음을 책임지는 페로는 어떤가요. 중간에 몇 번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웃는 타이밍이 있는데, 그 씬은 다 페로가 나옵니다. 처음엔 와 이 무슨 머릿속이 꽃밭인 강아지가 다 있냐-했는데(흉터가 많아서 실험실 출신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이 무슨 처절한 삶을 살아온 강아지인가요.

… 이 영화, 페로가 진주인공 먹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로요. 영화 제목을 ‘장화신은 고양이 : 끝내주는 페로’라고 붙여야 했다고요.

하지만 제가 가장 맘에 들었던 캐릭터는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 범죄단’이었다죠. 아, 그러네요. 이 영화에서 정말 좋았던 것 하나는, 모든 캐릭터가 꽤 생생하게 살아있단 점입니다. 쓰다 버리는 캐릭터가 없어요. 빅 잭 호너의 ‘13인의 베이커 군단’은 예외입니다만.

아무튼 원작에 대해 무지해서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뭐 이런 동요에서 따온 악당인가 했는데,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란 동화가 이미 있다고 합니다. 저 골디락스는 경제 기사를 읽다보면 자주 보게 되는 그 ‘골디락스’. 무슨 아주 좋은 황금 시대~ 이런 뜻인줄 알았는데, 금발 주인공 소녀 이름이었네요.

그런데 이 범죄단이, 재밌습니다. 어쩌다 집에 굴러들어온 길 잃은 소녀를 곰 가족이 가족으로 받아들여 같이 범죄단(…)이 된 것도 그렇고,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끔찍하게 아껴주는(?) 것도 그렇고. 구성원이 가진 이기심까지 이해할 정도로 그릇이 넓은 엄마 곰도 그렇고. 흩날리는 곰털도 매력적이고, 장난끼 가득한 것도 좋고, 골디락스 캐릭터도 사랑스럽게 잘 뽑았어요.

… 물론 이번에도 저만 그런 거 아니까, 또 넘어갈게요.

아무튼 장화 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작품입니다. 다른 슈렉 시리즈를 하나도 못 본(세상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안봤더라고요.) 사람이 봐도 재밌을 정도로요.

그래픽도 뛰어납니다. 여러 표현에 아쉬움이 없네요. 하나 이상했던 건, 액션 씬에서 뭔가 뚝뚝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데… 덕분에 액션이 더 잘 보인다는 장점은 있지만, 처음엔 무슨 문제가 생겼나? 그랬습니다. 영화 끝나고 찾아보니 일부러 그렇게 편집했다고 하네요.

한편 그래서 남는 아쉬움도 있네요. 먼저 애들 데리고 가기가 어렵습니다. 애들이 잘 몰라요. 전에 친구 아들에게 아바타 볼래 장화 신은 고양이 볼래 했는데, 자연스럽게 아바타를 선택하더라는. 그러고보니 마지막 슈렉 시리즈가 언제 나왔었더라(…).

주제도 조금 무겁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사실 어른인 제가 봐도 좀 섬찟함이 느껴지는 캐릭터도 있었고, 너만 사랑하지 말고 타인을 사랑해라, 한번 뿐인 삶도 괜찮다-뭐 이런 걸 전달하려는 느낌인데, 막상 이야기에서 짜릿함을 느끼게 만든 장면은, 고양이가 (하나뿐인 목숨인 걸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되찾으며 내뱉는 ‘도망쳐라. 도망칠 수 있을 때’였다는.

그나저나, 끝나고 보니 장화신은 고양이가 정말 부럽기는 하네요. 진실한 사랑도 찾았고, 믿을 수 있는 귀엽고 멘탈 튼튼한 친구도 굴러들어오고, 안그래도 튼튼하고 실력 좋은데, 하나 뿐인 삶을 위해 죽음과도 맞짱 뜰 수 있는 멘탈까지 얻었으니까요. 마지막엔 슈렉의 세계로 다시 찾아가던 데, 거기선 더 멋진 모험을 즐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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