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 소녀에 대한 추억

예전 여자친구는 취미가 게임이었다. 약속 장소에 나가보면 항상 먼저 와서, 휴대용 게임기를 잡고 놀고 있었다. 키도 작은 애가 자기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지구가 멸망해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게임을 하는 모습이 예뻐서, 왔다고 말하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봤던 기억.

그때나 지금이나, 헤드폰을 끼고 뭔가를 하는 사람의 모습을 좋아한다. 책을 읽거나,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아무튼 뭐를 하든 상관없이.

왜 그렇게 좋아할까. 헤드폰을 끼고 일을 한다는 건, 잠시 나를 둘러싼 세상을 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거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관심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일을 하겠다는 도도함으로 연결된다. 어쩌면 헤드폰을 낀 모습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서 내가 사는 방식을 지키려면, 그런 도도함이 필요하니까. 나쁘게 말하면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거지만. 아, 생각해보니, 분명 이렇게 말한 기억도 난다. “넌 나보다 게임이 더 좋지?”하고.

참 좋아했는데, 한동안 헤드폰을 낀 소녀를 잃어버렸다. 무선 블루투스 이어셋이 널리 보급된 탓이다. 시간이 지나 세상을 보니, 어느새 헤드폰을 낀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들 귀에 하얗고 까만 작은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사람도 많다. 가끔 그렇게 혼자 떠들며 거리를 걷는 사람을 보면, 1인극을 하는 배우를 보는 기분이 되기도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기술은 항상,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꾸니까.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지 겨우 10년이 넘었는데, 이젠 숫자키가 달린 휴대폰이 낯설게 보인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많아졌지만, CD 플레이어가 있는 집은 드물다. 지하철에서 무료 신문을 보던 사람도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손글씨 편지를 받아본 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대학생들은 책 대신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며 필기를 하며, 스마트폰 하나로 교통카드와 신용카드 기능을 다 이용한 지도 오래됐다. 조만간 모바일 신분증도 도입될 예정이다. 우린 이제 스마트폰으로 쇼핑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영화를 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코로나19 덕분에 헤드폰을 낀 소녀를 되찾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강의도 수업도 회의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게 된 세상에서,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일이나 공부를 하면서, 소음차단 헤드폰을 쓴 사람이 늘었다.

분명 쓰게 된 이유는 다른데, 어쩌다 그 모습을 보고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물건은 늘 기억을 되살리는 방아쇠가 되어주고, 추억은 힘이 세니까. 그냥 헤드폰을 썼을 뿐인데,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 예쁘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본인에겐 그게, 그저 고단한 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나가면 결국 좋은 기억이 된다. 이상하게, 나중에 남는 이야깃거리는 항상 고생한 경험이었다. 다시 하라면 두 번은 하기 싫은, 그런 기억들. 언젠가 우리도, 마스크를 쓰다가, 2020년이 기억난다고 말하며 웃을 수 있을까? 부디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물론 그 웃음은, 그때를 무사히 지내 보냈기에, 어쨌든 견뎌냈기에 지을 수 있는 웃음이겠지만.

About Author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