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현대문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자연앞에 무력합니다. 자연을 압도적으로 거스를 수 있는 장비는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 무력함을 알기에 상상속 슈퍼 영웅들을 화면으로 소환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렇기에 계속, 새로운 기기들이 연구 개발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럼 현재까지 개발된 재난 구조 로봇들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왔고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크랩스터는 재난 구조 로봇이 아니다
우선 처음 살펴볼 녀석은 이번 사고 현장에 투입된 무인로봇, 크랩스터 CR200 입니다. 국토해양부 산하의 한국해양연구원이 개발한 무인로봇으로, 2010년부터 국내 5개 대학과 총사업비 200억원을 들여 공동개발하고 있는 로봇입니다. 2013년 7월에 공개된 이후 계속 수정 보완을 하고 있던, 아직 연구 개발 단계에 있는 로봇이구요. 길이 2.42m에 폭 2.45m, 높이 2m에 무게가 600kg, 게를 닮아서 6개의 다관절 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만 이번 작업에 적합한 크랩스터의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유속이 빠른 지형에서도 떠내려가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이런 형태로는 거의 유일한 수중 로봇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도 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로봇입니다. 다만 이동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이고 케이블선을 연결해 원격 조종하는 방식이라, 이번 구조 작업에서 큰 역할은 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2011년 동일본 지진, 재난 구조 로봇들을 소환하다
그럼, 진짜 재난 구조 로봇들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요? 사실 재난 구조 로봇들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부터입니다. 지진이란 사고의 특성, 그리고 핵발전소가 가진 위험성 때문에 로봇 같은 무인 작업용 기기들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재난 구조 로봇들이 가진 2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 그리고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에도 운동 성능을 유지할 것. 이 두 가지가, 재난 구조로봇들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위 영상은 당시 후쿠시마 발전소에 투입된 팩봇이란 로봇이 찍은 발전소 내부 영상입니다. 이처럼 재난 구조 로봇들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 현장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당시 활약했던 팩봇은 이렇게 생긴 차량형 로봇입니다. 로봇 청소기로 유명한 아이로봇사에서 만든 제품이구요(실은 군사용 로봇 만들다 로봇 청소기도 만들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무게 20kg의 캐터필러형 탐지 로봇으로, 원래는 전쟁 지역에서 폭발물 탐지, 제거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9.11 테러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돕기도 해서, 재난 구조 로봇 가운데에 가장 유명한 녀석입니다.
함께 투입됐던 로봇으론 허니웰사의 T호크가 있습니다. 팩봇이 현장 상황 정보를 얻는 로봇이라면 티호크 같은 비행형 로봇은 재난 현장 상공을 비행하면서 재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주게 됩니다. 특히 재난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었을 경우, 초기 정보를 수집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무인기 형태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난 구조 로봇들
그럼 일본은 어땠을까요? 일본 역시 로봇 강국인데- 당시 사고 현장에 투입한 로봇이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최첨단 재난구조로봇 퀸스를 비롯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로봇 ‘로보 Q’, 뱀을 닮은 카메라 로봇 스코프가 있었는데요- 초기 판단 미스로 빠르게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위 영상에 나오는 로봇이 바로 액티브 스코프 카메라를 장착한 로봇, 스코프입니다. 길이 65cm의 뱀을 닮은 로봇인데요. 몸에 나 있는 진동 섬모를 이용해 초당 82cm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특징은 역시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빠르게 이동해 현장 사진을 촬영, 전송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퀸스는 아까보신 팩봇과 비슷한 형태의 차량형 로봇입니다. 주로 방사능 유출 지역을 탐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동 속도는 초당 1.6m 정도이고, 세계에서 가장 운동 성능이 좋은 로봇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 보시는 것은 지난 2009년 일본 소방 방재청에서 공개한 재난 구조 로봇 로보Q 입니다. 가로 1.9m 세로 1.2m 높이 1.6m에 무게 1.5톤이 나가는 로봇으로, 무선 조작으론 50m, 유선으론 100m 거리까지 조정 가능한 로봇입니다. 로봇안에 80kg 정도의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처럼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선 제대로 쓰인 적이 없습니다. 하나는 실전 경험 부족. 로봇을 제대로 다루고, 그것을 이용해 구조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는 후쿠시마 사고 현장은 고 방사능 지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고방사능 환경에서는 일반 로봇의 전자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한 작업, 인간형 로봇의 시대를 요청하다
이밖에도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는 다양한 로봇들이 투입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룬 성과가 많지 않더라도, 이제 인간의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로봇이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왔음을 알려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로봇들은 대부분 원래는 군사용으로 만들어졌던 로봇들입니다. 전쟁터에서 인간이 해야할 일을 대신해 인간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도의 로봇이란 것이죠.
…그리고 이런 로봇들만으로는, 재난 사고에 대처할 수 없음 역시 명백해 졌습니다.
차량형, 뱀형, 비행형은 많이 쓰이는 로봇 형태이긴 하지만, 사실 재난 구조 로봇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곳에서 인간이 해야할 일을 대신해야하는 로봇들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론 사람을 닮은 로봇이 필요합니다. 지난 2013년 12월 미국에서 열린 DARPA, 그러니까 미방위고등계획국 로봇 챌린지 대회에는 이렇게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여럿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이 대회는 로봇의 재난 구조 능력을 겨루는 대회인데요. 한국에서 개발된 로봇 가운데 똘망과 DRC휴보라는 로봇이 참가했습니다. 똘망은 모듈형 구조로 만들어진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로봇 가운데 가장 저렴하게 만들어졌지만(사실 대타로 참가한..;;) 1차 결선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로봇 챌린지 대회는 작년이 1차 결선, 올해 최종 결선이 열려서 최종 우승 후보를 가립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로봇은 로봇 챌린지 1차 결선에서 1위를 차지한 샤프트입니다. 구글이 인수한 일본 벤처 기업의 로봇입니다. 사실 외형은 다른 로봇들에 비하면 가장 기계 같은 모습이지만, 그 성능만큼은 상당합니다.
예전에는 이만하면 충분히 인류 문명은 진보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직도 인류 문명이 가야할 곳은 한참 남았다는 생각을 해보고는 합니다. 사회적 시스템의 정비, 개개인의 의식 변화와 함께, 인류가 앞으로 닥쳐올 여러 재난 사건을 극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기술의 진화는 좀 더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지금 우리가 꾸고 있는 로봇에 대한 꿈은, 마치 20세기에 꿈꿨던 21세기의 모습처럼 어떤 면에선 낭만적이고, 어떤 면에선 허망한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꿨던 꿈이 지금의 우리 시대를 낳았습니다. 로봇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분명한 것은, 거기에 우리 미래의 일부분이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