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쟁점 법안 처리 문제를 두고 국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명 2차 입법 전쟁이다. 총포를 앞세운 전쟁이 아닌, 입법안을 둘러싼 대치에 전쟁이란 말이 붙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블로고스피어 역시 흔히 ‘떡밥’이라 부르는 논쟁적 사안을 둘러싸고 뜨겁게 논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현 정권은 입법안 강행과 낙하산 인사, 경인운하 건설 등을 통해 여전히 야당, 시민사회단체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용산참사 등을 둘러싼 논쟁도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남녀문제나 연예계 소식은 단 한 번도 식어본 적이 없는 논쟁과 떡밥의 단골 손님이다.
이렇게 미디어 보도나 블로고스피어의 모습만 보고 있자면 한국은 사분오열된 나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의 한복판에 서 있는 나라처럼 보인다.
▲지난 1월 여의도에서 진행된 언론악법 저지운동에 참여한 오영애 국민참여네트워크 대표. ©국민참여1219
이런 일은 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누군가는 한국인이 원래 싸움을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경향신문의 김학순 논설실장은 저명한 외국 언론인이 여러 나라 사람들의 민족성을 비교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한 방에 둘이 같이 있을 때, “미국인은 상대방을 맞고소하고, 중국 사람은 장사를 트기 위해 흥정을 벌이며, 일본인은 의례적인 인사만 나눈다. 한국 사람은 ‘싸운다’가 정답이다“라고 말한다. 김학순은 조선족 3세 지식인 찐원쉐의 말을 빌려 “한국 사람들은 똑똑이들이어서 혼자 있을 때는 곧잘 개인 파워를 발휘하지만 셋만 모이면 저 잘났다며 결속은 커녕 싸움을 벌리기 십상이다.“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1).
한국의 정(情)문화를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농경사회와 유교사회의 산물인 정문화는 공동체를 더욱 단단히 엮이도록 만드는 힘이 있지만, 대신에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감성적인 판단만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원래 유교의 인(仁)은 가까운 관계로부터 점점 사회적으로 확대되어나가는 관계 중심적 윤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가까운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리지만, 자신과 관계가 약한 타인과의 만남에서는 자신의 이기심을 크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조호길 중국공산당 중앙당교(黨校) 교수는 한국 민주정치의 딜레마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지적하며, “정(情)에는 이지(理智)가 없다. 정(情)이 정치과정에 반영되면 인물중심으로 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극한주의 사고방식이 가미되여 한국정치는 항상 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한다(2).
하지만 과연 그런 이유뿐일까? 정이나 민족성의 문제로 집단갈등의 발생 원인을 파악하게 되면, 해결을 위한 대안은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는 것 밖에는 없게 된다. 하지만 집단갈등 자체는 지구 어디를 가도 발생하는 것이며, 다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게 보일 뿐이다. 더 정확하게는 ‘한국 사회의 집단갈등’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갈등을 위한 갈등’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이런 문제가 왜 발생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는 틀거리가 아닐까?
집단 갈등의 비용과 갈등 형태
지난 2005년 12월 한국여성개발원에서 발표한 “사회갈등에 관한 국민의식 및 정책수요 조사”(3)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크게 ① 정책 지연으로 인한 비용 ② 생산의 중단 등에 따르는 경제적 비용 ③ 갈등당사자간의 상호불신으로 인한 공동체의 사회자본의 침식 등이다.
더불어 갈등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는데 ① 분단 구조 성립과 온존으로 인한 이념 갈등 ② 권위주의 정권과 헌정 질서의 파괴로 인해 나타난 정치 갈등 및 지역 갈등 ③ 경제 발전 동원 체제로 인해 생긴 경제 갈등 및 노사 갈등 ④ 집권적/일원적 사회 구조와 가치의 미분화로 인해 보여지는 교육 갈등 ⑤ 민주화와 가치의 급격한 전도로 인해 생긴 환경․세대․성별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사람들에게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조사 응답자의 91.9%가 사회적 갈등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으며, 그 가운데 계층 간 갈등/정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한국 사회의 집단 갈등은 지난 100여 년 간의 역사적/문화적 변동에 기반하고 있다. 20세기 한국 사회는 자연적 조건과 인종에서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지만 여타의 면에서는 격변을 겪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열강의 제국주의 대세 속에서 한 세대 남짓 나라의 독립성을 잃었고, 1200년간 이상의 통일 국가가 외세의 간섭으로 결국 양분되고 말았다.
그러나 독립국가로 재건되면서 정치/경제 제도는 가히 ‘혁명적’으로 바뀌어 자본주의 체재를 취한 남한만 해도 50년 사이에경제규모의 외형은 세계 10 몇 위에 올랐고, 몇몇 산업 부분에서는 세계 1, 2위에 이를 만큼 발전하였다. 그 사이 사회규범의내용과 사회구성원의 심리적 특성 또한 현저하게 바뀌었다.(4)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1천만에 머물던 인구가 일제 강점기에는 2천만, 지금은 남북한 합쳐서 7천만의 인구가 되었으며,군주정(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고, 한국 전쟁을 거쳐서 세계 냉전 체재를 반영한 남북 분단 체재가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집단갈등을 ‘민족성’이나 ‘정문화’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맞지 않다.
반대로 현재의 집단갈등은 역사의 변화에 기반을 둔 이중적 정서(5)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 민주당 정세균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00 여 년간 이뤄진 한국 사회의 변화
그렇다면 지난 100여년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호프슈테더의 사회문화 유형 나누기의 요소들(6)을 참조하여 20세기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모하였는가를 짚어 보자면, “한국 사회는 첫째로 ‘권력거리’가 점점 작아지는, 곧 ‘한 사회의 기관과 조직 속에서 약한 자가 권력분배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차츰 작아지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세기에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줄곧 강력하고 응집력 있는 내집단에 통합되어 있으면서 일생 동안 계속해서 집단의 보호를 받는 대가로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게끔 되어 있는” 이른바 집단주의 사회로부터 점차 단독자로서 개개인이 주체의식을 갖는 개인주의 사회로 이행해 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안에 대한 면밀한 성찰과 냉정한 토론보다는 혈연, 지연, 학연 등 갖가지 ‘끈끈한’ 연줄망과 정서적인 연대감이 공론에 앞서 ‘끼리끼리’의 집단 의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개인의 개별성이나 의사소통적 이성의 공간 확대는 더디게 진행된 편“(7)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 갈등의 실제 양상에서 나타나는 것들
재미있는 것은, 합리적 의사소통 공간/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집단갈등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앞서 말한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자. 한국 사람들은 집단 갈등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우선 집단 갈등의 원인 제공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및 정부여당(44.5%)’다. 절반에 가까운 압도적인 수치다. 그 다음은 국민 개개인(17.2%)이고 기업 및 경제계(12.1%)가 뒤를 잇는다. 집단 갈등의 원인으로는 47%가 ‘무분별한 자기 이익 추구’를 지적했고, ‘개인 및 집단 간의 가치관의 차이’를 지목한 사람이 22.6%, ‘정부의 잘못된 대처’를 원인으로 꼽은 사람이 20.9%다.
역사적 차원의 갈등 원인으로는 ‘정치인들의 부패와 무능’이 41.4%로 가장 높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민주적 시민의식의 부족’이 21%, ‘너무 빠른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이 17.4%, ‘한국인의 전통적 민족성’이 11.2%로 나타났다.
▲ 출처_kopas
세가지 항목에서 모두 정치의 문제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다. 강준만 교수는 이런 불신을 통해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히 이익 분배 기능을 갖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한 거래와 갈등에선 이른바 ‘우는 아이 젖 더 주기 신드롬’이란게 오래 전부터 맹위를 떨쳐왔다. 누가 더 세게 오래 우느냐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협상 과정에서의 에누리를 염두에 두고 아예 처음부터 세게 치고 나가는 건 모든 정치사회적 거래와 갈등에서 상식이 되고 말았다.”(8)
이런 인식은 사회적 절차와 법규범에 대한 신뢰에서도 다르지 않다. 실제로 한겨레 신문사가 2000년 12월에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사회가 공정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9.4%에 불과했으며, 1990년 동아일보가 수행한 ‘국민생활 사회의식 지표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부의 분배에서도 한국인은 부의 분배구조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9)
“그러니 ‘줄’과 ‘빽’을 통원하거나 결사항전을 부르짖고 나서면 무리한 민원도 잘 해결되고, 그게 없이 항의조차 약하게 하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침해당한 채 억울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게 법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삶의 법칙이 ‘언어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 모두 다 ‘목숨 거는 건’ 기본이 되고 말았다. 덩달아 힘있는 기관들도 기선 제압을 당하지 않겠다는 듯 처음엔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바람에 ‘강경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10)
갈등해결을 하지 못하는 시스템
결국 우리 사회가 보여지는 극단적인 형태의 집단 갈등은, 우리 사회가 집단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인이 찾은 것은 개개인의 능력이었다. 위의 보고서에서 갈등 해결의 주체로 국민개개인이 1순위로 지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후쿠야마는 이미 “한국 사회가 중국식 가족주의의 영향으로 1차 집단에 대한 신뢰가 강하게 나타나, 가족의 울타리내에서는 신뢰가 높이 나타나는 반면, 이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신뢰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아 사회 전체의 전반적인 신뢰가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fukuyama 1996)“(11)한 바 있다.
그 개개인의 능력은 근대적 시스템이 아닌 전근대적 혈연/지연/학연을 말한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이 한국의 KBS 및 아시아 연구기금과 공동으로 1996년 7월 서울/도쿄/북경의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보다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조사에서
- “혈연이 성공 여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서울 90%, 베이징 85%, 도쿄 70%였다.
- “지연이 성공 여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서는 서울 80%, 베이징 52%, 도쿄 51%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 “학연이 성공 여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서울 91.6%, 도쿄 82.2%, 베이징 65.1%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 혈연/지연/학연의 세가지 질문에 모두 80% 이상의 “그렇다”라는 응답을 보여준 도시는 서울뿐이었다.
개개인의 능력을 중시하고 사회적 시스템이 불신되는 사회는 집단갈등의 기형적인 구조를 낳았다. 그것은 집단 갈등이 문제의 해결이 아닌, 문제 자체의 표현에 그치고 마는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단 갈등 양상은 ‘문제 해결 과정’에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후쿠야마가 지적했듯이 한국 사회는 자신과 가까운 1차 집단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신뢰의 시스템이 ‘제도에 근거한 신뢰’가 아닌 “평판에 근거를 두고 있는 ‘과정에 근거한 신뢰’와 한 개인이 속한 집단의 특성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귀속성에 근거한 신뢰’가 지배적”(12)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구조 속에서 집단 갈등은 토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대신 강준만이 말하듯 집단 갈등은 ‘더 징징대며 울어서’ 정부나 언론, 대중의 관심을 끈 다음 ‘더 많은 댓가’를 얻기 위해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더 많은 이들의 ‘동정’이나 ‘관심’을 얻는 것이 승리하는 결과로 귀착되고 만다.
집단 갈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한국 사회의 집단 갈등은 정치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상호 불신으로 이어지고, 개인적인 연결망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전체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갈등은 토론을 통해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갈등은 그저 힘의 역관계를 통해서 더 많은 힘을 갖고 있는 쪽으로 해결되며, 따라서 집단 갈등이 나타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많이 징징대며 울어서 더 많은 관심을 끄는 것, 그 가운데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 된다. 시스템은 신뢰받지 못하고, 징징대며 울지 않으면 다른 이들은 아예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집단 갈등-이라는 현상이 직면하고 있는, 그 집단 갈등의 현장에 있는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문제다. 이 해결방법은 결국 집단 갈등을 ‘누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로 만들며, 힘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이익을 가지게 되고 힘이 없는 사람은 계속 손해를 보는, 그래서 다시 사회적 시스템을 불신하게 만드는 ‘불신의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사실 정치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말고 다른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인들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원하고 있다. 다시 한번 앞의 보고서를 살펴보자. 보고서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란 항목에서 사회 갈등 해결에 정부의 적극적 개입 여부에 대해 무려 68.7%가 찬성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이 수치는 반대 의견의 두배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부가 맡아야할 적절한 역할로는 “법과 제도의 구축”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법과 제도의 구축을 그냥 잘하면 된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이익집단이 서로의 힘을 겨루고 있고, 각자 자신의 이익에 맞춰 정부와 사회적 시스템을 재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알고보면 무수한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맞물려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따라서 법과 제도는 집단 갈등의 해소를 위한 최소 기반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맞다.
반면에 집단 갈등은 훨씬 구체적인 장소에서 구체적인 사람들에 의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이때 언론과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게 된다.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교섭자(Nagotiator)의 역할에서 조율해주는 입장의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과거의 ‘권위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형식적인 공청회 등을 여는 역할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정책 구성의 과정에 해당 당사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동시에 언론과 지식인들은 정부의 정책 협상 과정에서 특정 집단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관점(Bird-eye View)에서 당사자들의 입장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13).
■ 본문 주석
1. 김학순, 싸움닭 정치, 경향신문, 2005년 10월 26일 30면
2. 조호길, 정(情)과 민주정치의 딜레마, 조선족 포럼, 2005년 7월 15일
3. 전영평, 김서영, 사회갈등에 관한 국민의식 및 정책수요 조사, 한국여성개발연구원, 2005년 12월
4. 백종현, 현대 한국사회의 철학적 문제 사회운영원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서론 p2
5. 여기서 말하는 이중적 정서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최고 목표로 설정됐던 “자유민주주의 공화국”과 그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정받은 자유/ 평등/ 정의/ 도덕성/ 이웃사랑의 다섯가지 이념과 해방 이전 봉건 사회(조선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유교적 규범, 공동체 의식, 정문화등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6. 호프슈테더는 사회문화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요소로 권력거리(power distance)의 크기, 집단주의(collectivism) 대 개인주의(individualism), 여성성(femininity) 대 남성성(masculinity),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의 강도, 단기 지향성(short-term orientation) 대 장기지향성(long-term orientation)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7. 백종현, 같은 책, 서론 p4~6
8. 강준만, 인간사색, 개마고원, 2006, p121
9. 김지희, 한국 사회 신뢰와 불신의 구조 미시적 접근편 제5장「한국사회의 신뢰수준」, 도서출판 소화, 2002, p247
10. 강준만, 인간사색, 개마고원, 2006, p121
11. 김지희, 같은 책, p240
12. 김지희, 같은 책, p261
13.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현재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런 역할을 해낼수 있을지는 무척 의심스럽다. 특정 지식인과 언론은 특정 계층/집단의 이해관계를 지나칠 정도로 반영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참고 자료
1. 전영평, 김서영, 사회갈등에 관한 국민의식 및 정책수요 조사, 한국여성개발연구원, 2005년 12월
2. 백종현, 현대 한국사회의 철학적 문제 사회운영원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3. 강준만, 인간사색, 개마고원, 2006
4. 김우택, 김지희 편, 한국 사회 신뢰와 불신의 구조 미시적 접근편, 도서출판 소화, 2002
5. 김인영 편, 한국 사회 신뢰와 불신의 구조 거시적 접근편, 도서출판 소화, 2002
6. 김용학, 사회구조와 행위, 나남출판, 1992
7. 한국사회사학회 엮음, 한국 현대사와 사회 변동, 문학과 지성사, 1997
8. 왕 샤오링, 왕 샤오링의 한국 리포트, 도서출판 가람기획, 2002
9. 김학순, 싸움닭 정치, 경향신문, 2005년 10월 26일 30면
10. 조호길, 정(情)과 민주정치의 딜레마, 조선족 포럼, 2005년 7월 15일
* 글이 너무 길지 않았나, 싶네요.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전에 썼던 글을 먼저 정리해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