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폰X가 제대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9월 12일, 미국에서 열린 애플 이벤트에서는 애플 역사상 처음, 두 종류의 아이폰이 동시에 공개됐다. 다들 알고 있을 아이폰 X(아이폰 텐)과 아이폰 8이 그 주인공이다. 아니, 어쩌면 주인공 한 명에 서브 주인공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모든 관심은 아이폰 X가 독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실제로 9TO5 MAC에서 행사 직후 “애플 행사 후에 뭐가 사고 싶어 졌느냐?”라고 설문 조사를 했는데, 약 35%가 아이폰 X을 꼽았다. 그다음은? 애플 TV, 애플 워치가 뒤를 이었다. 아이폰 8과 플러스는 합쳐서 7.5% 밖에 얻지 못했고.

… 온라인 설문 조사의 한계를 감안해도, 아이폰 X이 거의 5배에 가까운 관심을 받은 셈이다.

아이폰 X, 디자인이 모든 관심을 먹었다

예상 밖이었을까? 그렇다. 당연히 아이폰 X에 관심이 쏠릴 것은 알았겠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으로 아이폰 X에게만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사실 아이폰 8과 X은 같은 OS를 사용하고 있고, 무선 충전도 둘 다 되고, 프로세서도 같은 것을 사용한다. 성능이 거의 같다는 말이다. 가격은 아이폰 X이 훨씬 더 비싼데도.

물론 X는 좀 더 큰 베젤리스 화면과 손떨방이 탑재된 듀얼 렌즈 카메라, 페이스 ID라는 새로운 기능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이폰 8도 많이 변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꽤 예쁘게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도 모든 관심은 아이폰 X에 쏠려버렸으니, 아이폰 8 개발자라면 조금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디자인이다. 스마트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디스플레이인만큼, 과거를 되돌아봐도 아이폰은 디스플레이를 바꿨을 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아이폰 3Gs에서 아이폰 4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옮겨가거나, 아이폰 4s에서 5로, 5에서 6로 화면이 커졌을 때가 그랬다.

반면 아이폰 8은 디자인은 세련되게 변했지만, 화면 크기나 모양은 지루한 옛 모습 그대로다. 어쩌면 스마트폰 시장의 중요한 속설 하나가 확인됐다고 봐도 좋겠다. 고성능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는 무조건 제품 라인업의 최고를 원하지, 100달러 200달러 때문에 더 낮은 단계의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는.

아이폰 X에 대한 관심이 감추고 있는 것들

애플 입장에선 대박이 난 셈이긴 하지만, 이런 반응은 애플 입장에선 좋은 일이기도 하고 아닌 일이기도 하다. 일단 새로운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는 거야 기쁜 일이지만, 아이폰 X는 지금 당장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다. 공식 판매일도 늦고, 당장 양산에 대한 불안한 루머들이 많이 흘러나온다.

지금 알려진 내용만 합쳐봐도 사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를 다 맞추기 어려울 전망이다. 예전에 삼성에서 갤럭시 S6와 S6 엣지를 동시에 내면서 수요 예측에 실패해 고생했던 것과 비슷하달까. 애플 전체 수익에서 아이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는 것을 고려해 보면, 오히려 안 좋은 상황이 됐다고 볼 수도 있다.

▲ 애플 순이익에서 아이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대로 높다

주요 소비자는 아이폰 X를 기다리며 아이폰 8 구입을 하지 않는데, 막상 팔아야 할 아이폰 X는 팔 물량이 없다. 판매자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아예 아이폰 X만 내놔도 됐을 텐데, 왜 애플은 두 가지 폰을 다 팔겠다고 나선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팀 쿡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었다-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기존 사용 방법에 익숙한 이용자들을 배려한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길 원하는 사용자들을 위한 제품이다. 아이폰 X 생산 물량이 모자란 것도 고려했겠지만, 애당초 올해 아이폰은 2 종류가 나오기로 예전부터 얘기가 되고 있었으니…

아이폰 X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문제는… 아이폰 X은 아직 미완성된 제품이라는 것. 원래 기획대로라면 디스플레이 위에 가상 지문 인식 홈버튼을 배치해야 했는데, 그 기술 적용에 실패하니까 플랜 B를 들고 나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농담 삼아 탈모라고 부르는, 그런 부분이 화면 상단에 생겨버렸다.

페이스 아이디 기능을 넣기 위해 저 탈모 부분에 들어간 센서가 상당히 많다. 전면 카메라를 비롯해 스피커, 마이크에다 얼굴 인식 카메라와 센서까지 무려 8개의 부품이 탑재되어 있다. 페이스 아이디만 사용하지 않았어도 훨씬 예쁘게 다듬을 수 있을 부분이다.

▲ 아이폰 X은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

실제로 초기에 사람들이 상상했던 모습은 이번에 나온 아이폰 X과 달랐다. M 자형으로 깎인 디스플레이는 수율도 낮고 부품값도 비싸다. 게다가 상하 화면 균형을 깨버렸다. 안 예쁘다.

가상 홈버튼이 들어갈 경우 페이스 아이디를 없앨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이 부분은 1~2년 안에 어떻게든 애플이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애플이 생각하는 진짜 아이폰의 진화는 디스플레이에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다. 애플이 노렸던 진짜 진화는, 프로세서에 담겼다.

증강현실과 인공지능, 애플이 생각하는 아이폰의 미래

애플은 아이폰 8과 X에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를 넣었다. 아이폰 8과 X이 같은 프로세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주목받지 못한 면이 있지만, 이 프로세서는 노트북 컴퓨터에 버금가는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이번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에는 인공 지능을 위한 칩이 탑재되어 있다. 1초에 6천억 번의 연산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머신 러닝 알고리즘 설계나 페이스 아이디 같은 기능도 빠르게 실행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증강현실을 사용한 앱의 성능이 좋아지게 된다.


위 영상은 이번에 새로 업데이트된 iOS 11의 증강현실 기능을 이용해 신체 구조를 학습할 수 있는 앱이다. 기존에는 화면 그래픽으로만 보던 것을, 카메라 앞에 인체 모형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른 한편 아래 영상처럼 증강 현실을 이용해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기능 같은 것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가야 할 길 바로 위에 화살표를 표시해 주는 방식으로, 나중에 AR 안경 같은 것과 결합되면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애플은, 이제 스마트폰이 손 안에서 머무는 것을 넘어서, 현실에 정보를 비추며 쓸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원한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런 점들이 부각되기 시작하면, 앞으로 아이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에 머물지 않고, 더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디지털 오버레이 월드-라고 부른다. 현실과 정보가 자연스럽게 믹스되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 애플이 꿈꾸는 아이폰은, 바로 이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도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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