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에 작성된 원고입니다. 백업 차원에서 올려 놓습니다.
2020년 겨울, 콘솔 게임 하기 좋은 계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고 아니고는 운이 70%이고 재주가 30%라는 말이다. 노력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대세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요즘 시대에 브라운관 TV를 팔려면 LCD TV를 파는 일에 비해 수백배는 더 고생해야 한다.
… 다만 운도 준비된 자가 낚아챈다. 물 들어온다고 아무나 노 저을 수는 없다. 화상회의 서비스 ZOOM이 코로나19를 예상했을까? 원래 평가가 좋던 서비스가 운좋게 때를 만났을 뿐이다. 운이 거대한 해류라면, 그 해류를 헤쳐나가는 건 결국 실력이다.
콘솔(가정용)/PC 게임도 마찬가지다. 원래 게임 시장의 주류였다가, 모바일 게임에 밀리며 세를 잃어가고 있었다. 잃어버린 세를 되찾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를 만났다. 갇혀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 나온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이 큰 인기를 얻었다.
게임중독이란 질병 코드를 부여했던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떨어져 함께 놀자(Play Apart Together)’ 캠페인을 벌이며 온라인 게임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e스포츠가 큰 인기를 얻었다. 2020년 하반기에 들어와선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가 정식 런칭했고, 신작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와 엑스박스 시리즈 X가 출시된다.
…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게임을 하기 정말 좋은 겨울이 찾아왔다.
2020 게임 시장 상황
얼마나 좋은 상황일까? 일단 시장조사기관의 예측부터 살펴보자. 지난 6월 뉴주(Newzoo)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게임 시장이 1,59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리라 전망했다. 11월에 내놓은 새로운 예상에 따르면, 올해 게임 시장은 1,749억 달러(한화 약 197조 원) 규모가 될 거라고 한다. 2020년 상반기 재무 실적을 살펴보고 바꾼 전망치다. 2023년에는 더 커져서, 2,179억 달러까지 클 수 있을 거라 봤다.
실제로 닌텐도 스위치는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9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6,830만대를 돌파했다. 발매 3년 차에 접어든 게임기가 발매한 해보다 더 많이 팔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여전히 모바일 게임이 863억 달러 규모로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할 거로 예상하지만, 콘솔 게임 역시 512억 달러로, 원래 예상치의 두 배 이상, 전년 대비 21% 증가한 규모가 될 전망이다. 올해 말에 새로운 게임기가 나오는 걸 고려하면, 꽤 놀라운 수치다.
이렇게 시장 전망이 밝아진 이유는 역시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 덕분에 집에 머물던 사람들 사이에서 모바일 게임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대부분 캐주얼 게임이지만). 2017년부터 큰 인기를 얻었던, 배틀 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로 대표되는 배틀로얄 게임은 여전히 인기다. 많은 게임이 도입한 부분 유료화 덕분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늘어났다(기본 무료라서 시작하기 쉽다.). 코로나로 인해 열리지 못한 자동차나 자전거 레이싱 대회 일부를 가상 레이싱 대회로 대체하면서, 이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기도 했다.
9세대 게임기 시대 개막, PS5와 Xbox 시리즈 X
이런 좋은 분위기를 이어받아, 올해 겨울, 9세대 콘솔 게임기들이 출시된다. 2020년 11월에 나온 소니 플레이스테이션5(PS5)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시리즈 X다. 8세대 게임인(PS4와 Xbox one)가 2013년에 출시됐으니, 7년 만에 나오는 새 모델이다. 둘 다 보급형에 해당하는 PS5 디지털 에디션과 Xbox 시리즈 S도 함께 출시했다(보급형에는 블루레이 디스크 드라이브가 빠졌다).
8세대에 비해 더 뛰어난 성능과 그래픽을 보여주고, SSD를 저장장치로 채택해 더 빠르게 게임을 읽으며, 하위 호환을 보장하기에 기존에 나왔던 게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성능은 어느 만큼 좋을까? 간단히 말해, 200만 원짜리 게이밍 PC와 비슷하다.
게임기는 보통 출시되는 첫해에 가장 많이 팔리기에, 올해 겨울부터 내년 겨울까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마케팅 역량을 이 시기에 집중한다. 물론 게임기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이다. 다시 말해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만 한 A급 게임들이 이때 많이 나온다. 독점 게임은 여전히 PS5가 많고, 엑스박스 시리즈 X는 PC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많다.
원하는 게임이 없어도 걱정할 필요 없다. 앞서 말했듯 구형 기종과 호환이 되기에, 이전 명작들을 즐기면 된다. 다만 지금은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너무 인기가 높아서 나오는 족족 매진이다.
엑스박스의 필살기 – 게임구독 서비스
게임기 성능은 엑스박스 시리즈 X가 더 좋고, 재미있는 게임은 PS5가 더 많다. 앞서 말하듯 게임기는 게임이 전부여서, 이번 9세대 게임기도 플레이스테이션5가 더 많이 팔릴 거라 보는 사람이 많다. 다만 MS도 바보가 아니어서 반격할 필살기를 하나 준비했다. 바로 ‘엑스박스 게임 패스’라 불리는 게임구독 서비스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12개국에만 출시된 이 서비스는, 게임 패스 하나로 100여 개가 넘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MS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2020처럼 MS에서 직접 만든 게임은, 게임이 출시되자마자 함께 제공하기도 한다. 구독료도 저렴하다. 한 달에 11,800원이고, 5천 원을 더 내면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및 PC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독점작은 적지만 7년간 쌓은 인기 게임이 가득 쌓여 있는 데다, 게임용 컴퓨터가 있다면 거기에도 설치해서 쓸 수 있어서 평가가 좋다.
이에 대항해 소니에선 플스5 이용자들에게 PS 플러스 컬렉션이라는 회원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월 7,500원을 내는 기존 회원제 서비스인 PS 플러스에 가입한 PS5 이용자는, 추가 비용 없이 PS4로 출시된 AAA 급(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게임) 게임 타이틀을 내려받아 즐길 수 있다. 엑스박스 게임 패스나 PS 플러스 컬렉션에서 제공하는 게임만 즐겨도, 다 즐기기엔 겨울이 너무 짧다.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는 성공할까?
게임기를 사지 않아도, 게이밍 PC가 없어도 좋다. 스마트폰에서 스마트폰용 게임만 즐기지 않아도 된다. 올해부터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가 정식 출시했기 때문이다. 게이밍 기기가 없어도 게임을 스트리밍하면서 즐기는 서비스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듯 게임을 즐긴다고 생각하면 된다.
구글(스태디아)과 아마존(아마존 루나) 같은 대형 기술 기업을 비롯해 소니, MS,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네트워크 사정상 주로 이동통신사와 손잡고 서비스를 내놨다. MS는 SKT와 손잡고 5GX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론칭했고, 엔비디아는 LGU+와 협력해 지포스나우 서비스를 공개했다(5G 스마트폰, PC에서 사용 가능). KT는 자체 개발한 KT 게임박스 서비스를 시작했다(가장 저렴하다).
한번 결제로 여러 개의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스마트폰과 게임 패드만 있으면 즐길 수 있어서 확실히 편리하다. 다만 스트리밍 방식이라 가끔 게임 실행이 안정적이지 못할 때가 있고, 제공되는 게임이 계약 기간에 따라 변경되는 경우가 꽤 있다. 게임들이 대부분 TV 화면으로 보여질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기에, 스마트폰으로 볼 때는 글씨가 너무 작거나 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게임을 즐기고 싶다거나, 번거로운 설치 없이 간단히 하고 싶다거나, 여러 개의 게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겐 분명히 매력적인 옵션이다.
정말 게임기와 게임이 풍년인 2020년 겨울이다. 게임을 쉽게 즐길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오도로이드 고- 같은 조립식 휴대용 레트로 게임기를 사서 직접 만드는 맛을 즐기기도 한다. 중국산 레트로 게임기도 유행이고, 10년 전 애니팡이 대유행한 이후, 처음 다시 게임이 평범한 이들의 삶에 내려오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이런 흐름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한번 지켜보는 것도 좋겠다. 한번 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에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 과연 게임은 그만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