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나도 네 말에 반쯤 동의해. 군대에 대해선 고민해 봐야해. 군대를 없애면 돈이 생기고, 그 돈으로 굶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일 수 있다-는 류의, 순진해 보이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언제까지 지금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 수는 없지. 까놓고 얘기하자면 가급적 빨리 모병제로 전환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안, 난 군대 폐지론자는 아냐.)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너는 정말 뭐랄까, 노이즈 마케팅에는 타고난 녀석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어. 나쁜 뜻이 아냐. 너는 류상태 목사님 말대로, 유쾌한 난봉꾼인게지. 자신이 언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지를 알고, 그것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줄 아는 영민함도 지녔어. 대중적 더듬이를 지닌 너는, 어쩌면 정말 천부적 마케터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오늘에야 눈치챈 것은 아냐. 네가 예전에, ‘태환아, 너도 군대가‘라고 썼던 글을 읽으면서도 그 생각을 했지. 아이쿠, 입소문 마케팅엔 정말 천재구나-라고. 니 글은 어떤 주장을 말하는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실은 선전포고나 다름 없었지. 논리가 부재한 빈정거림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려는 의도가 너무 읽혀서 되려 민망하기까지 하더라.
쉬운 길은 독약이다
맞아. 넌 천부적인 마케터야. 그리고 그 재능은, 지난 시간 오랫동안 싸움을 진행하면서 단련되고 다져진 것이겠지. 하지만 말야, 쉬운 길은 독약이야. 노이즈 마케팅은 결국 상품의 논리, 너무나 많은 상품 가운데 어떻게든 사람들 눈에 띄이지 않으면 잊혀져버리는 상품들의 몸짓. … 결국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 아니라 상품이거든. 노이즈 마케팅엔 성공했는데 상품이 변변치 않다면, 사람들의 분노는 두배가 되어버려.
너는 어느 순간 그런 태도를 택해버렸어. 친구를 적으로 돌리고, 사람들을 바보처럼 대하고 있어. “군대는 이렇게 나빠요. 나는 평화를 보여주기 위해 누드를 택했어요. 군대는 없어져야 해요.” … 하지만 사람들은 니가 말하는 것을 몰라서 군대를 가는 것이 아냐. 정말 군대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보통 그렇지 않아. … 그러니까, 군대를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나는 너에게 거센 바람을 막아줄
방패여야 했는데
기댈 등나무여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도 못하고 오히려 더욱 모진
바람이 되고 말았구나. 군화발이 되고 말았구나
– 애인에게 2, 강제윤
…난, 지금 입대를 앞둔 많은 친구들이, 이 시와 같은 마음일거라고 봐.
면제는 신의 아들, 현역은 어둠의 자식들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냐. 박노해 시인이 군대가는 2년을 “썩으로 간다“고 표현한 것도 괜한 말은 아니지. 그래, 솔직히 우리들 대부분은 군대에 가기 싫어해. 신나게 군대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들 중에도, 다시 군대가라고 하면 ‘안간다’고 할 사람이 더 많아.
그렇지만 니가 하는데로, “평화를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군사제도가 사라져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 … 군대 대신 감옥 가기 100인 캠페인”에 동참할 사람들은 더 적을거야. 그만큼의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 그건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래서 신념이 필요한 일이야. 사회적 합의, 또는 이미 존재하는 체재를 깰 정도로 간 큰 사람은 많지 않아.
아니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사람들이 쌍아놓은 체재 위에 ‘자신의 소중함을 핑계로’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될거야. 그런 상황에서 “난 소중하니까..”라는 말로 빈정거리는 것은, 친구가 아닌 적을 늘리는 일에 지나지 않아. 분명 진지해야만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만 진지해야 할 때 진지하지 않으면, 껍데기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어.
그동안 다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박수를 보냈던 것은, 그들이 가진 진지함을 알기 때문이었어. 386 선배들의 전방입소반대투쟁도, 미군의 전쟁을 막으려다 죽어간 미국 평화활동가들도 … 심지어는 여호와의 증인들까지도, 모두 자기가 짊어질 리스크를 알면서도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었지.
자신의 종교와 신념에 어긋나길 원하지 않아서, 군 녹화사업으로 죽어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냥 듣고 넘길수가 없어서, 자신이 낸 세금으로 다른 나라의 시민들을 죽이는 전쟁을 막고 싶어서 … 그래,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기에 그 길을 택했고, 그 가운데 많은 숫자의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어.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나는 자위권 행사가 아닌 모든 전쟁을 반대해.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군대를 반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신념을 날림으로 먹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의석이 니가, 너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이번 퍼포먼스는 훌륭했어. 재밌었어. 그리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군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 하지만 그것은, 결코 빈정거림으로 이어지진 않을꺼야.
난 네가, 네 자신의 신념을 쉽게 배반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퍼포먼스를 했다고도 믿고 싶지 않아. 자기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승화시키는 방식도 훌륭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으니까. 그렇지만… 군대에, 썩지만 썩지 않기 위해서 가는 사람도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군대에 가야 할 친구들을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구는 것도 그만 뒀으면 좋겠다. 그들 역시 ‘내 자신이 소중한 것’을 몰라서 군대에 가는 것은 아니니까. … 마지막으로 박노해 시인의 옛 시 하나 보낸다. 군대 가는 후배들에게 항상 쥐어줬던 시야. 그럼, 안녕. 잘 지내렴.
썩으러 가는 길 – 군대 가는 후배에게
열 여섯 애띤 얼굴로
공장문을 들어선지 5년 세월을
밤낮으로 기계에 매달려
잘 먹지도 잘 놀지도 남은 것 하나 없이
설운 기름밥에 몸부림 하던 그대가
싸나이로 태어나서 이제 군대를 가는구나
한참 좋은 청춘을 썩으러 가는구나굵은 눈물 흘리며
떠나가는 그대에게
이 못난 선배는 줄 것이 없다
쓴 소주 이별잔 밖에는 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대는 썩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푸른 제복에 갇힌 3년 세월 어느 하루도
헛되이 버릴 수 없는 고귀한 삶이다그대는 군에서도 열심히 살아라
행정반이나 편안한 보직을 탐내지 말고
동료들 속에서도 열외 치지 말아라
똑같이 군복입고 똑같이 짬밥먹고
똑같이 땀흘리는 군대생활 속에서도
많이 배우고 가진 놈들의 치사한 처세 앞에
오직 성실성과 부지런한 노동으로만
당당하게 인정을 받아라빗지루 한 번 더 들고
식기 한 개 더 닦고
작업할 땐 열심으로
까라며 까고 뽑으라면 뽑고
요령피우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아라
고참들의 횡포나 윗동기의 한따까리가
억울할지 몰라도
혼자서만 헛고생한다고 회의할지 몰라도
세월 가면 그대로 고참이 되는 것
차라리 저임금에 노동을 팔며
갈수록 늘어나는 잔업에 바둥치는 이놈의 사회보단
평등하게 돌고도는 군대생활이
오히려 공평하고 깨끗하지 않으냐
그 속에서 비굴을 넘어선 인종을 배우고
공동을 위해 다 함께 땀흘리는 참된 노동을 배워라몸으로 움직이는 실천적 사랑과
궂은 일 마다 않는 희생정신으로
그대는 좋은 벗을 찾고 만들어라
돈과 학벌과 빽줄로 판가름나는 사회속에서
똑같이 쓰라린 상처 입은 벗들끼리
오직 성실과 부지런한 노동만이
진실하고 소중한 가치임을 온 몸으로 일깨워
끈끈한 협동속에 하나가 되는 또다른 그대
좋은 벗들을 얻어라걸진 웃음 속에 모험과 호기를 펼치고
유격과 행군과 한따까리 속에 깡다구를 기르고
명령의 진위를 분별하여 행하는 용기와
쫄따구를 감싸 주는 포용력을 넓혀라
시간나면 읽고 생각하고 반성하며
열심히 학습하거라
달빛 쏟아지는 적막한 초소 아래서
분단의 비극을 깊이 깊이 새기거라그대는 울면서
군대 3년을 썩으러 가는구나
썩어 다시 꽃망울로
돌아올 날까지
열심히 썩어라이 못난 선배도 그대도 벗들도
눈부신 꽃망울로 피어나
온 세상을 환히 뒤흔들 때까지
우리 모두 함께
열심히 썩자
그리하여 달궈지고 다듬어진
틈실한 일꾼으로
노동과 실천과 협동성이
생활속에 배인 좋은 벗들과 함께
빛나는 얼굴로
우리 품에 돌아오라눈물을 닦아라
노동자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열심히 열심히
잘 썩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