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공무원 노조는 정부의 공무원 구조조정을 눈 앞에 두고, 강경하게 나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향후 있을 공무원 연금법 개정이나 임금 동결, 구조조정의 1차 희생자가 될 6급 이하 직원들로서는 뭉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단단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 와중에 툭 튀어나온 것이, 공무원 노조의 민중의례 금지다.
* 물론, 정부의 뜬금없는 국민의례 강화조치-와도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 미시마 유키오,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나…
이번 행자부의 조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두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국민이라면 국민의례를 해야하며, 다른 의례를 하는 것은 국가를 부정하는 행동이라는 것(민중의례는 반정부적 행동이다). 둘째는 국가의 녹을 받아먹고 사는 공무원들이 어떻게 국민의례를 하지 않을 수 있냐는 것(공무원은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
뭐, 다들 맞다면 맞고 틀리다면 틀린 말이다…-_-; 민중의례는 80년대 시민사회에서 고안해낸 반국가적(?) 의례절차인 것은 맞다. 애시당초 한홍구 교수의 지적대로, 국기에 대한 경례가 박정희 정권이 병영 국가로 바뀌어가던 시절, 국가주의적 통제정책을 펴기 위해 고안한 산물중 하나인 탓이다.
이로 인해 1971년부터 극장에서는 애국가가 상영되기 시작했고, 선생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외우지 않는 학생들을 적발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반국가사범을 색출한다며 학교에 들이닥쳤고, 한 학교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제적당하거나 자퇴했으며, 학생들을 조종했다고 지목받은 사람들은 징역살이를 했다.”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바탕으로 각성하기 시작한 시민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 강제적 의례를 거부하고, 다른 의례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5월 광주 영령’들을 기리는 ‘민중 의례’다. 5월 광주 영령들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죽어간 분들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민중의례는 기존에 있던 국가에서 강요한 의례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맞다.
….하지만 그 국가는, 바로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파쇼 국가다.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그 국가가 아니라.
국민의례를 거부하면 국민이 아닌가?
또 다른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그럼, 국민의례를 거부하면 국민이 아닌가? 공무원들이 민중의례를 하면 그들의 정체성이나 사상이 의심 받아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당연한 대답은 하나다. 국민의례를 거부한다고 국민이 아닐 수 없다(국가는 정치조직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민중의례를 한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을 의심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진짜 물어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들이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어떤 기독교 인들은 국민의례 자체가 우상 숭배라고 말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러면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지금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는 2007년부터, 다른 정치인들처럼 성조기를 가슴에 달지도, 국기에 대해 손을 올리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오바마 캠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성조기를 공경(revere)한다. 그러나 오바마 상원의원은 애국자는 눈에 보이는 상징 그 이상의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는 참전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미국민들에게 이 참혹한 전쟁에 관해 솔직히 말하겠다는 투쟁(fighting)”이라고.
…무려 현직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려고 하는 후보자의 캠프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실제로 유럽의 대다수 국가에서는 국가, 국기에 대해서 아예 학교에서 교육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맹세문 같은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야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는 일이 연방헌법에 위배된다고 대법원의 심판을 받은 것이 1942년, “지난 7월에는 양키즈 스타디움에서 godbless america가 방송될 때, 화장실 가려고 이동하다가 구장에서 퇴장 당한 한 야구팬이 구단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가 소송비를 포함하여 1만 2100 달러의 합의금을 받고 소송을 취하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필리핀에서도 지난 94년, “국민의례를 강요당할 수 있다는 발상은 현 세대 필리핀 국민의 양심과 조화를 이루지 않고 자유로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가 있다. 이는 한국의 현행 법체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례는 존중 받아야할 의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의무는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것은 당신들, 국가주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으면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는 간다. 애시당초 박정희가 이렇게 말했었다. “국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바로 애국이며 우리는 국기를 통해 올바른 국기관을 확립해야 한다(조선일보 1972년 5월 3일자)”. 그들의 마음은 아직도 1970년대에 머물러있으며,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박정희가 곧 국가다.
…하지만, 지금은 2009년이다…-_-;;
한국이 금메달 딸 때만 보여주니 잘 보지 못하는 장면이지만, 올림픽에서도 시상식에서 국가를 따라부는 사람은 있어도, 가슴에 손을 얹고 경례를 하는 사람은 아직, 한국 밖에 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국가가 흘러나올때도, 정치인들은 경례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서서 국가를 듣고만 있는다. 그렇다고 누가 뭐라 그러는 사람도 없고, 그게 자연스럽다.
애시당초 근현대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의례들은 ① 공동체들의 사회통합이나 소속감을 구축하거나 상징화하기 위해서 ② 제도, 지위, 권위 관계를 구축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서 ③ 사회화나 신념, 가치체계, 행위 규범을 주입하기 위해서-다.(관련글_만들어진 전통)
그 의례들은 대부분 상징과 노래와 의식(절차), 그로 인해 재현되는 기억(역사)으로 나타나나며, 사회운동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자가 지향하는 바에 맞는 의례를 만들게 된다. 민중의례>도 그 가운데 하나였고, 지금은 많이 정형화된,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의례가 되었다.
… 그런데 그걸 공무원 노조가 관례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대체 뭐가 문제가 되는지를 잘 모르겠다. 애시당초 공무원은 국민의례를 따라야 한다-라고 정해져 있지 않는 이상, 국가 공식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닌데, 공무원 노조 내부 행사에서 행해지는 의례에 대해, 왜 행안부가 끼어들어 참견하는지 모를 일이다.
공무원은 공무원이지 국가의 노예가 아니다. 인민복의 미학을 강요하지 마라. 모두가 똑같아져야 한다고, 아니면 반정부주의자라고 색깔 칠하지 마라. 오히려 진짜 위험한 것은, 모두가 똑같아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당신들이다.
언제까지 1970년대에 살 것인가.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흘러나오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기립해 경례를 하고, 저녁때 국기 하강식만 되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다.
… 그러니까,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애쓰는 퇴행 현상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돌아가고 싶다면 혼자서 가라. 괜히 남 끌어들일 생각하지 말고. 공무원 노조는 민중의례를 하면 되네 안되네 같은 엉뚱한 논란 불러일으키지 말고. 그냥 공무원 노조가 민주노총에 들어간 것이 싫다고 하고 끝낼 일이지 별 트집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