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통제를 하는 것이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다(다큐프라임 – 칭찬의역효과)

어젯밤 페이스북을 읽다가 한 친구가 건네준 링크를 받았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칭찬의 역효과(링크)」. 2010년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학교란 무엇인가의 6부에 담긴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 글을 보면, 다큐에 나온 한 학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순간 머리에 뎅-하고 한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사실이니까요. 부모가 자식을 칭찬하는 이유는, 자식을 통제하고 싶어서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아이들을 맞추고 싶어서. 칭찬-보상의 매카니즘은 갑과 을의 관계가 분명합니다(동기부여, 모범은 일단 따로 떼놓기로 합시다). 거칠게 말하면 사육사-돌고래의 관계인 셈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가장 흔한 대답 역시 정해져 있습니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라고.

그런데 정말, 상대방을 위해서 그러는 걸까요? 오늘 한겨레 신문에 실린 정여울의 글(링크)에선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다”란 말은 부모의 과도한 기대를 사랑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일일 뿐이라고. 자식의 탁월함이 부모의 업적이 되어버리고, 그래서 부모는 기를 쓰고 자식에게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은 부모에 대한 부채감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바로 공의존(codependency)입니다. 타인의 요구를 자신의 욕망보다 중시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요구에 끼워 맞추는 심리. 어른이 된다는 것을 ‘자신이 해야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면, 한마디로 어른이 되지 못하는 아이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사람들은 칭찬을 갈망합니다. 같은 신문에 실린 정희진의 글(링크)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 공감, 수용받고 싶은 욕구는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칭찬받는 일만 하는 것은 꼭두각시 놀음. “나는 부모말 잘듣는 아이여서 행복할 수 있었다” 같은 이야기는 주위에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_-;;

맨 처음 링크한 ‘칭찬의 역효과’와 졍여울의 글은, 그런 의존적인 아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부모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내 말 들어”에서 “나는 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네 맘대로 해”로 태도를 바꾸는 것. 오케이. 여기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해봅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사랑을 받길 원합니다. 다른 이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으며, 다른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를 원합니다. 관심과 칭찬을 바랍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자신은, 이런 상대방의 기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그것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만 열심히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라이프 잡을 찾기가 과연 그렇게 쉬울까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떠오른, 어려운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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