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7, 남자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

얼마 전 만난 한 친구가 그럽니다. 남자들은 너무 잰다고. 특히 나이들어도 괜찮은 남자들은 더 그러는 것 같다고. 누구 관심있는 사람 있냐고 슬쩍 떠볼까도 생각했지만, 남자의 마음을 알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실 재는 것이 맞을 지도 몰라요. 이 사람이 과연 내 사람인가, 우리 가족에게 잘할 사람인가, 그렇게 눈에 콩깍지가 씌이기도 전에 먼저 인연을 저울질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자건 여자건, 사람은 다 사람이 무섭습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섵불리 아무에게나 손 내밀 수 없거든요. 나이든 사람들이 더 그렇습니다. 모태 솔로…로 살아온 사람이 아닌 이상 사랑도 했고 상처도 받았고,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그냥 인연따윈 필요없이, 지금이 더 좋아…라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구요.

…그래서 잰다기 보단, 상대방의 호감을 알고 있거나, 내가 호감이 있어도, 별 반응이 없다는 것이 정답-이겠죠.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솔로 생활의 연속…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먼저 닫아버리는 마음, 거기에 익숙해져 버린 마음- 이렇게 엇갈린 마음의 해답은, 과연 어느 곳에 있을까요? 게다가 그 마음, 나도 모르고 있다 알아버린 거라면?

마음이 엇갈릴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사실 응답하라 1997에서, 시원이는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그 아이의 독백처럼, 윤제란 시원이에게 가장 쉬운 관계-와 다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형이 다가온다고 했을 때, 별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한마디로, 신경도 안썼다는 말).

관계에는 난이도가 있다.
내게 윤제는 그 중 가장 쉬운 레벨의 단계.
설명하기도 의지하기도 쉬운,
그러 그런 소꼽 친구의 관계였다.

그런데 그 관계가, 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다만 시원이가 개무시-_-했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하지만 선택이 이뤄지고 나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세 사람의 관계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내 어떻게 하까…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우리 형, 나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한 우리 형이고….
다른 한 명은 니… 닌데…

시원이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요? 변하지 않을 줄 알았을 거에요. 그만큼 쉬운 관계였으니까요. 윤제는 시원이가 원한다면 뭐든 따라와줬으니까요. 그런데 윤제가 이제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무섭다고 전화했더니 한걸음에 달려와줬던 윤제가, 언제든 그 자리에서 기다려 줄 것만 같았던 윤제가,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사내 새끼가…
짝사랑하는 가시나한테
구질구질하이
여기 있는 걸 다 털어놨다는 것은…

다시는 안 볼 생각인기다…

그리고 그 순간에야, 시원이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정말 윤제가 떠날 것을 알게되자, 있으면 좋은 사람과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깨닫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연애는 잔인해요. ‘니 멋대로 해라’의 복수의 말처럼, 잔인해지지 않고 어떻게 한 사람만을 좋아합니까?

그 남자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

사실 연애를 할 때 제일 비참해 지는 순간은, 그 사람의 그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입니다. 연애는 약속.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약속.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된다는 말.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줘서 꽃이 되는 일. 그런데 그 관계가 부정당할 때, 부정당하는 상대방은 비참해 집니다.

…그건, 그 관계의 부정이거든요.

▲ 내가 그냥 아는 여자니?
이런 비참한 기분, 당해본 사람은 압니다.

짝사랑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름이 불리고 싶은 마음이야, 연애든 짝사랑이든 어디 갈까요.

내 니 좋아하잖아.
니 억수로 좋아하거든.

그래도 여자로 보이더라.
고등학교 입학실날 난생 처음… 니가 이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 니 주변에서 계속 티냈다.
니 좋아한다고….
내 좀 좋아해달라고…

근데 니 모르데…

결국 선택받지 못한 마음은, 그 마음을 포기하게 됩니다. 남자란 그렇습니다. 이름이 불리지 못할 바에야 사라지는 것을 택합니다. 남자가 그런 말을 할 때는, 날 지금 붙잡아달라는 말입니다. 아니면 나 진짜 떠날거라고.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상대방은 항상 늦게야 깨닫습니다. 정말 내가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이러나한 것은, 관계의 뒤틀림을 바로잡는 것은, 이렇게 관계가 이젠 뒤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원이는 현명한 선택을 합니다. 바로,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바라 보는 것.

▲ 남의 시선, 그저 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그러기 위해 감정을 속이지 않는 것.

모두를 갖고 싶다면 모두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건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가장 간단한 인생의 규칙을 모른다면, 그 어떤 것도 내 곁에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원이는 윤제가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형과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선택을 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니까 그저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사람의 부름에 응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몇 년이 지난 후라도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었을 겁니다. 내가 정말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마음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기에. 맞아요. 사람은, 사랑은 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도 무의미해요. 당신이기에 내 이름을 불러주길 원합니다. 그저 너니까. 그냥 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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