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인생이 뭔지 아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가 되서야 바르게 살려고 애쓴다는 거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는 그걸 몰라. 원칙을 무시하고, 기본을 외면하지. 남들이 다 반칙하는데 나만 안 하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진짜 바보인 줄도 모르고 말이오.
– 지금 알고 있는 걸 서른에도 알았더라면… 中
1. 한 친구와 차를 마시다 세월호 사건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가 그런다. 아침에 소식 듣고 울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또 소식듣고 울고…그랬다고. 그 친구만 그랬을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울었다. 아침에 울고, 저녁에 울었다. 잘못도 없는 사람들만 울고 또 울고 있다. 그렇게 가슴에 상처를 쌓은 사람들이 거리에 한 가득이다.
…언제가 되어야 이렇게, 어이없어서, 불쌍하고 미안해서 우는 일이 사라질까.
그리고 그제야 알게된다. 우리가 많은 것에 무심하게 살았던 것을.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먹고 살기에 바빠서 그러려니-하고 지나쳤던 많은 것들이, 언젠가 우리 일상을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2. 아직도 우리는 ‘먹고 사니즘’과 계속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로 대변되는 70/80년대 개발성장 시대의 레파토리. 먹고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해도 된다는, 한때는 생존을 위한 기본 명제였던 천박함. 내 이익을 위해 인간으로서 도리를 저버려도 괜찮다는 짐승의 목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한번 뒤집어졌다가 ‘부자 되세요’라는 말과 함께 다시 치고 올라온 그 이름. 요즘엔 ‘복지’라는 화두에 맞서고 있는 그 이름.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겉만 화려하게 포장된 사상누각. 속은 텅빈채 어떻게든 그럴듯하게만 보이려는 욕망.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 없이, 겉핥기식으로 쌓아올린 가짜들의 나라.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분명히 보고 있다. 사람이 빠진 성장은, 편의를 위해 대충대충해도 책임 지는 사람이 없는 시스템은,절망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돈의 논리로 합리화된 많은 것은, 결국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3. 또 금방 잊을거에요. 한 친구는 그렇게 말한다. 잊지 말자- 잊지 말자-라고 계속 글을 올리는 친구의 타임라인 역시, 사람들이 금방 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우리 매번 그러지 않았냐고. 사고가 나면 분노했다가, 결국 다 잊고, 다시 새로운 것에 즐거워하고 분노하고 그러지 않았냐고.
어쩔까. 그게 사람이다.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불에 안타는 재질로 지하철 의자를 바꿨더니, 겨울에 앉을 때 춥다고 징징대는 것이 또 사람이다. 남들의 고통은 금방 잊으면서, 자기가 불편한 것에는 금방 짜증을 낸다. 맞다. 그게 사람이다. 그렇게 감정도 적응을 한다. 적응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변하는 것들은 있다. 버스 한귀퉁이에 사고나면 깨고 나오라고 망치가 놓여진 것도, 지하철 문을 수동 개폐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뒤늦은 반성이 낳은 결과들이다. 그렇지만 너무 슬프다. 미리 미리 막을 수는 없었을까. 꼭 사고가 나야 그런 것들이 변하는 것일까.
그 뿐만 아니다. 우리는 가끔 파렴치해지기도 한다. 버스에 놓여있는 그 망치들, 놓은지 얼마안돼 끈으로 묶인 채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자꾸 가져간다는 이유로. 그게 사람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자꾸 사람이 미워지기도 한다.
4.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땅에 머무르고 있는 이상 이 땅에서 소리라도 지르며 살아가는 수 밖에. 처리되지 못했던 재해 관련 법안들, 빨리 처리되게 하자. 책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묻고, 잘못을 했건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사과를 받자. 안전에 대한건 어떤 비용이 들어도 양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자. 그래서 관료들이 윗사람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눈치를 보게 하자.
…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이제 질린다. 이런 소리 누군들 못할까. 나 같은 놈이 이제와서 할 소리는 아니다. 하려면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해야했다. 내가 못하면 다른 누가 하게 만들어야 했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이 나라가 싫어졌을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다. 니가 왜 미안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미안하다. 괜히 미안하다.
너희들이 태어나 살아갔을 시간, 나 역시 같이 살아있었기에.
5. 앞으로 어른들이 해야할 일은,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미리 막는 것. 정부 정책 변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안전한 쪽으로 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의지하거나 기대하지 말고, 그렇게 되도록 강제하는 것. 방법은 아직 딱히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예전에 지자체 선거 끝나고 그 당선자들의 동향에 관심 가졌던 것처럼, 찾아보고, 글을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별로 폼나지도 않고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삶의 1%라도 그 일을 위해 비워둘 것.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을 후원할 것.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시민단체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말했다. 다음엔 우리,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더라, 어디 빠에 갔는데 재미없었더라-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그렇게 희희덕 거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맞다. 그렇게 희희덕 거리며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말, 평화는 비싸다.
그래, 평화는 값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