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갑작스럽게 많이 받았던 질문이 있다. ‘포켓몬 고-가 왜 인기인가요?’라는 질문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받으면서 당황했던 것은, 그들의 질문이 ‘왜 인기가 있는 지 모르겠다’로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겐 당연하지 않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 게임이 인기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포. 켓. 몬. 이잖아!
물론 이 정도로 붐을 일으킬 줄이야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른들은 모르는 포켓몬 세계, 벌써 스무 살입니다
이해는 한다. 많은 어른들은 피카츄는 알아도 포켓몬스터는 모른다. 포켓 몬스터를 알아도 피카츄… 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게임, 또는 게임에 기반을 둔 애니의 역사는 생각 이상으로 길다. 첫 출시가 된 것이 1996년이었으니, 벌써 20년이나 된 셈이다.
단순히 오랫동안 만들어진 게임인 것만도 아니다. 출시하는 게임마다 적어도 2400만 장 이상(포켓몬 블랙/화이트), 최고 4600만 장(포켓몬 적, 녹, 청, 피카츄) 팔아치우는 게임이다. 이런저런 비판은 있지만, 게임의 재미도 상당하다. 우리 현생 인류의 인생 중에 꽤 많은 시간이 이 게임을 하느라 사용되었을 것이다. 특히 일본과 북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잘 모르겠다면 지금이라도 한번 구해서 해보길 바란다. 가장 최근 버전은 ‘포켓몬스터 오메가 루비/알파 사파이어’이고, 11월에 최신작인 ‘포켓몬스터 썬/문’이 출시될 예정이다.
위치 기반 게임에 딱 어울렸던 포켓몬 게임 시스템
물론 그것만으로 ‘포켓몬-고’의 인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원작이 높은 인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게임으로 나왔다가 망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하지만 이번 ‘포켓몬-고’는 위치 기반 게임으로 나왔다. 그리고 원래 오리지널(?) 포켓 몬스터 게임은 – 이제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 위치 기반 게임에 아주 잘 어울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포켓 몬스터’ 게임은 주인공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모아 육성하고, 다른 트레이너/몬스터들과 배틀을 붙으며 모험을 하는 게임이다. 아재들의 어린 시절 방학 숙제였던 ‘곤충 채집’과 유사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수집/육성/모험의 요소가 잘 버무려져 있다. 이 게임 시스템이 ‘포켓몬 고’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포켓몬 고’를 즐기는 플레이어(트레이너)들은 현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주치는 몬스터들을 포켓볼로 포획해 싸워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상상하던, 현실 포켓몬스터다!
그러니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 여길 수 밖에.
커뮤니케이션을 팀 배틀로 바꾼 나이안틱랩스(Niantic Labs)
오리지널 포켓몬스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것에 있었다. 간단히 말해, 혼자서는 모든 몬스터를 다 모을 수가 없다. 다른 유저들과 몬스터를 교환하는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몬스터들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같은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끼리 함께 모여 어울리며 같이 게임을 즐길 수가 있었다.
포켓몬 고-도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잘 사용했다. 아이템을 사용해 몬스터 출연 확률을 높이면, 그 몬스터를 잡으러 여러 사람이 싫든 좋든 같은 장소에 모인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때론 뜻하지 않게 강제 정모(?)가 열리기도 한다. 어쩌다 말이 통하면 몬스터를 교환하기도 하고, 당연히 사용자 간 그룹도 생긴다. 같이 몬스터를 잡을 수도 있다. 별로 생산적이지는 못한 활동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작은 것들이 모두 삶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여기에 더해, 닌텐도로부터 라이선스를 얻어 이 게임을 개발한 니안틱랩스-는 자사의 전작이었던 ‘잉그레스’를 개발한 역량(?)을 살려, 팀을 선택해 화끈하게 팀 배틀을 벌리며 서로의 영토를 따먹는 요소를 추가했다. 이 점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함께 나눌 신나는 이야깃거리가, 함께 놀 재밌는 미션이 생긴 것이다. 마치 축구팀이나 야구팀을 응원하는 것처럼.
20년간 훌쩍 성장한 포켓몬 유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지난 20년간 ‘포켓 몬스터’를 재미있게 즐기며 성장한 탄탄한 유저층이 자리 잡고 있다. 맞다. 어린 시절 포켓몬을 즐겼던 이들이 이제 커서 어른이 되었다. ‘포켓몬 고’는 사실 아이들이 즐기기 적당한 게임은 아니다. 알 하나를 부화시키기 위해 꽤 오랫동안 걸어야 하고,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할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응, 우리는 이제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어른이니까.
포켓몬 고가 성공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에 있다. 지금과 같은 ‘포켓몬 고’붐이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포켓몬 유저층 자체가 탄탄하긴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켓몬 고’ 붐의 뒤에는 분명히 밴드 왜건 효과도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게임 자체는 꽤 오래갈 것이다. 처음에는 추억과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한번 습관이 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되어 버리면, 그 관계 때문에라도 쉽게 버리기 어렵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포켓몬 고’를 AR로 재미를 살린 위치 기반 게임(LBS game)이지, AR 게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위치 기반’ 요소를 빼버리면 게임 자체가 존재하지 못하지만, ‘AR’ 요소를 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서 증강 현실은 옵션이다.
사실 ‘포켓몬 고’는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우리가 잘 알고 있던 기술을, 잘 알고 있는 게임 내용을 바탕으로, 잘 알고 있는 게임의 재미 요소와 잘 버무렸다. ‘포켓몬 고’가 강조하는 수집과 육성, 팀 배틀은 우리가 요 몇 년간 정말 징글징글하게 봐오던 모바일 RPG 게임들이 강조하던 재미 요소와 똑같다. 거기에 ‘포켓몬’을 베이스로 삼고, 위치 기반으로 게임을 즐길 뿐이다.
…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 온 게임이 탄생했다.
벌써부터 터닝메 카드로 이런 게임을 만들면 어떻겠냐-하는 얘기가 나온다. 구글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비슷한 게임을 내놔서 성공 시키자고 말하는 친구도 봤다. 하지만 그런 접근으로는 실패한다. 차라리 닌텐도 아미보처럼, 터닝메 카드 장난감에 QR코드나 NFC 태그를 심어 놓고, 그 태그를 통해 스마트폰 앱으로 장난감 정보를 가져온 다음, 테마 파크에 설치된 여러 적들과 싸워 새로운 터닝메 카드를 얻으면, 집에 돌아갈 때 그 터닝매 카드와 같은 장난감을 준다… 라면 현실성이 있겠다.
그래도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 증강 현실 게임을 자처하는 앱들이 여럿 나오긴 할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AR 요소를 추가로 집어 넣은 앱들도 더 많아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증강 현실이 아니라, ‘포켓 몬스터’ 같은 훌륭한 IP(지적 재산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가 말릴 수는 없겠지만, 포켓몬 고가 성공한 것은 결코 증강 현실 덕분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