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늦은 소식을 전할까 한다. 지난 9월 2일부터 7일까지 열린 유럽 최고의 가전 박람회, IFA 2016 이야기다. 56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에는 모두 1823 개의 기업이 참여했으며, 참석자는 약 24만명을 기록했다. 다루는 영역 역시 다양해졌다. 스마트 홈에서 스마트 카까지, 가상 현실에서 사물 인터넷 까지, IFA 2016 키노트는 가전 제품 전시회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열린 IFA의 모습을 보여줬다.
구성상으론 ‘글로벌 마켓’이란 이름으로 부품 전문 B2B 행사를 처음 열어서 외연의 확장을 꾀했고, 내용상으론 스마트홈과 스마트카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스마트라는 것은 ‘새로운 연결성’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번 IFA 2016에선 앞으로 사물과 사물이, 가전 제품과 자동차가 새롭게,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물었던 셈이다.
스마트카를 품은 IFA 2016
자동차 업체에서 공식적으로 전시 공간을 만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장 여기저기에서 자동차를 가져다 놓고, 스마트카 기술을 시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삼성 전자에서는 벤츠와 함께 디지털 자동차 키 기술을 홍보하고 있었고, LG전자에서는 폭스바겐과 함께 스마트홈 연동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 밖에 유럽의 스마트홈 전문 업체인 ‘디지털 스트롬’나 ‘베스텔’, 충전기 업체인 ‘메네키스’, 차량용 무선 결제 전문 업체인 ‘월드라인’등에서도 테슬라나 ZOE(조이) 같은 전기 자동차를 함께 전시하면서 기술 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어느새 자동차가 스마트홈 솔류션의 하나로 여겨지는 시대가 왔다고나 해야할까.
스마트홈, 슬슬 떠오르다
한편 올해 IFA는 스마트홈 제품들이 본격적으로 선보인 행사이기도 했다. 작년에는 비전을 제시한 정도에 그쳤다면, 올해는 많은 회사들이 실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홈 기술이 집중적으로 선보인 것은 15개 국가 40여개 업체에서 참여한 ‘스마트홈’ 전시장. 별도로 마련된 이 공간에서 조명과 실내 온도 자동 조절, 보안, 무선 통신, 융합 로봇 등의 다양한 스마트홈 기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스마트홈 제품들의 방향성은 비슷하다. 가전 제품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어서 스마트 기기나 인공 지능 제품을 통해 제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방향성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크게 전체 제품을 하나로 엮어 제공하는 풀 셋트 형태의 제품들과, 로봇이나 음성 인식 스피커등을 통해 다른 제품을 제어하는 인공지능 허브 형태의 제품들도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가전 제품에 대형 디스플레이를 장착해서 다양한 정보를 띄우는 형태로 발전한 제품들이 많이 선보였다.
먼저 삼성전자에서는 예전에 선보인 스마트 냉장고 ‘패밀리 허브’에 유럽 유명 요리사들의 레시피를 탑재한 유럽형 모델을 선보였다. LG전자에서는 전에 선보인 ‘스마트씽큐 센서’ 기술을 ‘스마트 씽큐 허브’로 개량해 내놓으면서, 미국 아마존의 인공 지능 서비스인 알렉사와 손을 잡았다.
소니에서는 예전에 발표한 ‘엑스페리아 에이전트’를 개량해서 선보였다. 음성 인식을 통해 가전 제품을 제어하는, 일종의 스마트 허브 기능을 가진 로봇이다. 특이한 것은 로봇 머리에 사람 눈 같은 애니메이션이 표시되어서 굉장히 귀엽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로봇 에이전트를 처음 사용할 때 가지게 될 부담감을 조금 줄여준다고 한다.
유럽 가전 회사인 지멘스는 IFA 기조 연설을 통해 냉장고나 세탁기 등의 생활 가전을 중심에 놓은 홈커넥트를 선보였다. 그와 함께 선보인 마이키(Mykie)는 ‘내 주방의 요정(My kitchen Elf)’이라는 의미를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다. 음성으로 레시피를 찾아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주방의 모든 가전과 연결되어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 하이얼의 유봇도 이와 비슷한 용도의 로봇이다.
눈에 띄는 다른 제품들
그 밖에 다른 눈에 띄는 제품들도 있었다.
Lenovo Yoga Book Product Tour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제품은 레노버에서 선보인 요가북-이란 태블릿PC다. 접었을 때 두께가 9.6mm, 무게가 690g 밖에 안되면서도 15시간이나 사용할 수 있는 10.1인치 크기의 제품인데, 특이하게도 물리적인 키보드를 버렸다. 대신 키보드가 있을 자리에 터치 패널을 장착해서, 필요할 때는 키보드 모양을 표시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펜으로 필기한 내용을 그대로 컴퓨터 안에 저장할 수도 있다.
모토로라에선 모토Z 플레이를 공개했다. 백커버 형태의 모듈을 교체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스마트폰보다 인기를 모은 것은 함께 공개된 핫셀블라드 트루줌 카메라 모듈이다. 모토Z 플레이에 이 모듈을 끼우면, 스마트폰이 1200만 화소의 광학식 10배줌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변신한다고 한다.
이번 IFA 2016은 가전제품들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다른 영역의 제품들과 어떻게 융합이 되고 있는 지를 보여줬다. 갈수록 스마트폰, 백색 가전, PC, 자동차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다. 모두 디지털화/스마트화 되고 있다고, 소프트웨어를 수행하는 기기(=컴퓨터)로 변해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진 않았다. 옛 것은 가고 새 것은 오지 않는, 과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