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술이 지진에 대처하는 방법

꽤 오래 전, 지진을 겪은 적이 있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경기장 밖에 서 있는데, 몸이 중심을 못잡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 좋은 것을 먹어서 현기증이 난 건가 싶었는데, 그게 지진이었다. 그때 처음 한국에 살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최근 일어나는 여러 지진들을 보면, 더 이상 우리도 지진에서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지진은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다

 

지진이 정말 무서운 것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 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1960년대~70년대 일본에서는 지진 예측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범국가적으로 추진한 적이 있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에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지진 예측 기술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론은 ‘어렵다’였다. 그 이후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서울대 김규범 교수팀이 대지진 한 달 전에 예측 가능한 시스템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물론 큰 틀에서 예상은 가능하다. 세계 지진 학자들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다음 대지진이 일어날 장소가 네팔이라고 이미 경고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특정되지 않은 예상만큼 힘든 것이 있을까. 이번 경주 지진도 언젠가 발생할 줄 알았다. 특히 2004년 울진 지진, 2007년 오대산 지진 이후 진도 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계속 됐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을 뿐.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평소에 지진이 와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지진이 발생했을 때 최대한 빨리 파악해 대처할 시간을 벌고, 지진 발생 이후 빨리 피해 상황을 파악해 복구하는 일 뿐이다. 물론, 2016년 한국에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서울은 세계에서 재난에 가장 취약한 도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시스템을 갖출 생각을 지금도 안하고 있는 듯 하다.

 

… 다시 말해 생각지도 못한 재난이 지금 당장 일어난다면, 이곳은 문자 그대로 ‘헬조선’으로 변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밝혀진 동일본 대지진의 안타까운 상황

 

그렇다면 IT 기술을 활용해서 빠르게 대책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른 재난 대책 상황과 마찬가지로, IT 기술을 지진 대책에 활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재난이란 것이 예측 불가능 한데다, 하나가 터지면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IT 기술을 활용하자! 라고 생각해서는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 대책은 사회 인프라, 방재 시스템, 방재 조직등 다양한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그 가운데 IT 기술이 활용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2006년부터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진 발생 후 경보 시간은 굉장히 짧아서, 최근엔 발생 5초에서 10초 사이에 지진 경보를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난 동일본 대지진때는 2만명이 넘는 사망 추정 실종자가 발생했다. 왜?

당시 사망 추정 실종자들은 대부분 쓰나미의 피해자들이었다. 하지만 쓰나미가 육지에 도착한 것은 지진 발생 40분 후.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이 짧지만 있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일본 과학자들은 ‘프로젝트 311’이란 팀을 만들어 희생자들의 휴대폰 GPS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러자 슬픈 사실이 몇가지 밝혀졌다.

쓰나미가 도착했을 때 침수 지역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숫자는 약 52만명. 이들은 대피를 안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근처 대피소에 피신해 있었다. 다만 이 대피소가 쓰나미를 피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뿐. 도시 교통 구조의 문제도 밝혀졌다. 평소 교통 정체가 일어나던 구간에선 피신 나온 차들이 갇혀서 꼼짝할 수 없었던 상황이 발생했고, 이들은 그대로 쓰나미 속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지진 대처를 도와주는 IT 기술들

 

실제 재난 상황에선,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IT 기술을 이용해 기적을 만들 수도 없다. 다만 재난 대처를 용이하게 해주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재난을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용도로도.

 


ゆれくるコールのうた

 

예를 들어 일본인들의 필수앱 취급을 받는 ‘유레쿠루 콜’은, 지진 발생 이후 자신이 있는 곳까지 몇 초 안에 어떤 강도의 지진이 올 지를 알려주는 어플이다. 이를 통해 짧지만 지진을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가 있다. 몇 초의 시간 안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아래 영상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일본 초등학교 아이들의 지진 훈련 영상이다.

 


Earthquake early warning drill in Tokyo school

 

건물 밖으로 대피하거나 책상/식탁 밑에 몸을 숨기기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그 전에 지진 경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겠지만(이 시스템도 고베 대지진 이후에야 전국에 설치됐다.). 동일본 지진 이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이유다.

 


MyShake earthquake app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지진을 빠르게 감지할 수 있다는 앱도 나왔다. 권영우 유타주립대 교수 연구팀이 참여해 UC 버클리, 도이치 텔레콤 연구소 등과 함께 만든 ‘마이 셰이크’라는 앱이다. 스마트폰에 이미 내장된 센서를 이용해 지진을 감지하는 앱이다. 앱이 지진을 감지하면 지진 관리 시스템에 통보하고, 시스템이 빠르게 분석해 진도와 지역을 탐지해서 인근 지역 사람들에게 통보하는 형식이다.

 

미국 지질 조사국(USUG)에선 스마트폰 GPS 정보를 이용해서 지진 경보를 내보내는 기술(쉐이크 얼럿)을 개발중에 있다. 수천대의 휴대 전화 gps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지진일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과거 지진 사례에서 맞아 떨어졌지만, 민감도가 낮아서 현재 기술로는 규모 7.0 이상의 대형 지진만 경보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보다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

 

한국에도 ‘지진 정보 알리미’라는 비슷한 앱이 있긴 있다. 실제로 별 쓸모가 없어서 문제지. 스마트 빅보드라는 재난 안전 시스템도 가동 중이지만, 이번 지진에서는 어떻게 활용됐는 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국에서 대피소를 알려주는 앱은 있지도 않고, 지진이 났을 때 안전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일단 2020년까지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하니,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 밖에도 지진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은 많다. 인터넷이 끊겼을 경우에 대비해 무선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이동식 차량/무인 항공기, 로봇과 드론을 이용한 재난 복구 지원 시스템, 재난 발생시 스스로 가스를 잠그거나 불을 끄는 스마트홈 기술이 개발 중이거나 상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일본 같은 경우엔 개개의 회사별로 재난 대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당장 우리가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은 뭐가 있을까? 일단 재난 상황시 SNS 등을 이용해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 좋다. 재난 상황시 휴대폰이나 특정 메신저들은 먹통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인터넷은 그 자체가 재난이 발생해도 살아있도록 설계된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쉬이 망가지지 않는다.

 

구글의 퍼슨 파인더는, 재난 시 연락이 안되는 사람을 찾을 때 유용하다. 실제로 여러 재난 상황에서 검증을 거쳤다. 이와 비슷한 기능으로 페이스북에선 ‘체크인’이란 기능을 제공한다. 그 밖에 다른 재난 대비 앱은 한국에선 별로 의미가 없지만, 대한 적십자에서 제공하는 ‘응급처치’앱은 깔아둘 만 하다. 위급시 간단히 응급처치를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재난을 대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평상 시에 시스템을 구축해 두고, 그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고, 개개인이 재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재난 앞에 기적은 없다. 우리는 분명 위험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위험을 줄이고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쉽지는 않다. 일본조차도 항상 최고의 지진 대비책을 만들어 뒀다고 자부했었지만, 고베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앞에 처참히 무너져야 했다.

당장 지진이 발생했을 때, 즉시 지진 경보를 발령하고 경보를 받자마자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회와, 지진 발생 10분 후에 경보가 도착하고 진동을 느껴도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무서워하는 사회는 분명히 다르다. 이제부터는 달라져야만 한다. 빨리 빨리와 효율성만 외치는 시대를 이제는 끝내야만 한다. 안그래도 우리는, 이미 인공 재난에 수차례 부딪혀 좌절한 적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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