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진 분위기가 좋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매 분기 연속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써왔다. 2/4분기는 좀 다르다. 갑자기 위기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적 행진이 멈췄기 때문이다. 삼성이 내놓은 2/4분기 잠정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2분기 실적의 경우 전기 대비 매출은 4.23%, 영업이익은 5.37% 감소했고, 전년 동기 대비는 매출은 4.9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19% 증가했다”.
* 삼성전자, 2018년 2분기 잠정실적 발표 | SAMSUNG NEWSROOM
정확하게 말하자면 삼성전자의 위기가 아니라 삼성 스마트폰의 위기다. 사실 이 이야기는 2017년부터 나왔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을 멈췄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좋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다만 이번엔 더 안 좋게 보는 이유는, 갤럭시 s9 판매량이 부진해서 그렇다.
현재 예상되는 2/4분기 판매량은 약 800만 대 정도. 올해 판매량은 2012년 갤럭시 S3 이후 최저(3천만 대 이하, 2800만 대가량)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갤럭시 S3은 사실상 갤럭시 시리즈의 첫 제품이란 것을 감안했을 때, 시리즈 사상 가장 안 팔리는 모델이라는 말과 같다.
문제는 갤럭시 S9일까, 스마트폰 시장일까
갤럭시 S9이 그렇게 안 좋은 스마트폰이었을까?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혁신이 부족했다-라고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혁신’이란 말은 이젠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소비자를 유인할 만큼의 매력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잘못 만들지는 않았다.
음, 맞다. 실은 그게 문제였다. 좋았지만, 소비자들의 교체 수요를 이끌어낼 만한 매력은 없었다. 게다가 여전히 비쌌다. 따지자면 ‘스마트폰 2년 교체 주기’란 말은 ‘자동차 3년 타면 중고로 팔아야 한다’는 말처럼 업체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이젠 굳이 2년이 지났다고(=약정 기간 끝났다고) 바꾸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그들을 유혹하기 위해선 그만한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다른 문제는 세계 시장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8년 1/4분기 출하량은 여전히 세계 1위지만, 다른 업체와 비교하면 혼자서 작년 동기 점유율과 출하량이 줄었다. 현재 세계 3,4,5위 업체는 모두 중국 업체다(화웨이, 샤오미, 오포). 이들 점유율을 합치면 26.6%로 삼성보다 크다.
미국 시장(연간 1억 7천만 대 시장) 판매도 다른 때와 비교해 부진했지만, 그나마 북미/ 유럽 시장은 괜찮다. 인도에서는 샤오미에게 1위를 빼앗겼고, 중국 시장 점유율은 0.8%~1.3%대에 불과하다. 2014년 이전 20%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시장 대부분을 잃었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까, 세계 3대 휴대폰 시장 두 군데에서 중국 회사에게 완전히 밀리거나(중국), 밀리기 시작했다(인도).
내수 시장 기반으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 스마트폰
억울할 수도 있겠다. 중국 시장에선 중국 정부가 태클을 걸었다. 지난 2014년 고가 스마트폰에 보조금 지급을 금지한 규제는 영향이 컸다. 애플은 명품이란 이미지가 있어서 어떻게든 버텼지만, 삼성은 타격이 컸다. 비싼 폰을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은 가성비가 뛰어난 중국 스마트폰을 샀다.
중국 시장은 연간 4억 6천만 대 이상이 팔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마트폰 시장이다. 내수가 워낙 크니, 거기서만 팔아도 글로벌 순위에 끼는 것이 어렵지 않다. 최근 난립한 회사들이 정리가 되면서,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와 애플이 거의 과독점하는 시장이 됐다. 중국 회사 점유율을 합치면 76% 가 넘는다.
애플은 중국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2015년에는 분기당 150억 달러 넘게 매출을 올렸지만, 작년엔 한때 분기당 80억 달러 정도로 떨어진 적도 있다(2017년 말 180억 달러 회복, 매출 내 20%). 아이폰이 애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고, 아이폰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애플 CEO 팀 쿡은 중국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중국계인 ‘이사벨 게 마헤’를 애플 차이나 부사장으로 임명했고, 비난 여론을 무시하고 중국 정부가 원하는 일은 다 들어주고 있다.
우산을 잘 쓴 탓일까. 보호를 받는 동안 중국 스마트폰은 놀랄 만큼 좋아졌다. 가성비도 가성비지만, 만듦새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올해 들어 ‘지문 인식 디스플레이’, ‘노치 없는 풀 베젤리스폰’등 기술 모멘텀도 가져가고 있다. 폴더블 폰도 화웨이가 11월에 먼저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동남아와 인도(연간 1억 2천4백만 대 시장)등 저가형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약진 중이다.
결정은 인도가 한다
미/중 무역 분쟁은 중국 스마트폰 회사에겐 악재다. 공들이던 미국 진출이 꽉 막혀버렸다. 삼성 스마트폰에게 좋은 소식이다. 다른 상황은 여전히 그리 좋지 않다. 특히 인도 시장에서 샤오미에게 밀리고 있는 것은 뼈아프다. 13억 인구 중에 스마트폰 사용자가 절반도 안 되는, 성장 가능성이 그나마 남은 유일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중국 스마트폰은 인도 현지화로 승부를 걸었다. 자국 시장을 수입품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노력은 중국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 역시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제를 마련했다. 중국 회사들은 규제에 맞춰 부품 공장부터 조립 공장까지 공급망을 인도에 구축했다. 사실상 인도 회사로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말이다.
샤오미는 판매 정책도 변경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아우르며 직접 거래하는 파트너 가게도 늘리고, 잘 사는 도시뿐만 아니라 주변부 도시에도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 인도인 소득으로도 쉽게 살 수 있는 저렴한 스마트폰도 다수 내놓았다. 이에 대해 삼성도 공장을 몇 개 더 짓고, 저가형 스마트폰을 출시해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지구로 놓고 봤을 때’ 스마트폰 같은 고가 제품을 살 수 있는 소비자층은 한계에 달했다. 74억 인구 가운데 선진국 인구는 12억에 불과하며, 전 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은 65%에 달한다. 지난 20년간 이뤄진 인터넷 보급률이 이제야 51%(38억 명)가 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스마트폰 보급률이 빠르게 늘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국/중국 시장 점유율이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상, 세계 스마트폰 시장 순위는 인도 시장이 결정한다.
여전히 메모리 사업은 호황이지만, 그다음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서 공들였던 스마트폰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삼성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스마트폰 세계 출하량 1위를 지키며, 다음 먹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이젠 가장 좋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가장 잘 팔리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가 이긴다. 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겠지만.
*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 출연해 이야기했던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방송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6/28(목) 1부 “삼성 스마트폰 불안한 세계 1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