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Z와 아이언맨은 같은 아이디어에서 태어났다. 그렇게 말하면, 다들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슈퍼 로봇과 강화 슈트가 어떻게 같아? 에이, 그게 말이 돼?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농담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둘은 형제다. ‘인간 증폭기(Man Amplifier)’라는 아이디어에 태어난, 형제.
마징가Z의 쇠돌이(…)는 평범한(?) 고교생이지만, 로봇에 타면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다(고 할아버지 박사님이 말한다). 아이언맨의 능력은 슈트가 결정한다.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기도 하고 갈아도 입는 그 슈트가, 아이언맨 자신이나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이 기계를 입어 능력을 증폭한다. 그게 바로 인간 증폭기다.
‘웨어러블 로봇 슈트’도 마찬가지다. 외골격 로봇, 강화 외골격 슈트, 어시스트 슈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역시 ‘인간 증폭기’란 아이디어에서 태어났다. 입는 형태의 로봇이다. 움직임을 컴퓨터로 제어하니까 로봇인데, 사람이 입는 장비니 슈트라고 부른다.
음, 아직 전원을 쓰지 않는 패시브형 웨어러블 로봇 슈트, 다른 말로 어시스트 슈트가 대세이긴 하지만, 겉으론 비슷하게 보이니 뭉뚱그려 웨어러블 로봇 슈트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감안하자. 사실 이 아이디어도 시작은 패시브 형태로 시작했으니까. 큰돈을 노리고(?) 온갖 미래지향적 아이디어가 난무하던, 빅토리아 시대에.
생각보다 오래된 꿈, 웨어러블 외골격 슈트(엑소슈트)
미안하다. 빅토리아 시대라고 얘기했지만, 첫번째 인간 증폭기는 영국 사람이 고안하지 않았다. 걷고 뛰고 달리는 것을 보조하는 컨셉의 기기였는데, 1890년 러시아에 살고 있던 니콜라스 양-이라는 사람이 처음 생각해 냈다고 한다. 가스백을 이용해 사람의 움직임을 돕는 장치로,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사실 대부분 몰랐기에 큰 의미는 없다. 이런 형태의 인간 증폭기에 대한 특허는, 이후에도 몇 건이 더 등록되기도 했다.
인간의 움직임에 맞춰서 반응하는 외골격 장치의 아이디어는, 1950년대, 그러니까 NASA에서 우주복을 개발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주복을 개발하고 있던 나사는, 딱딱한 재질을 가진 우주복을 쓰기 쉽게 만들기 위해, 강화외골격을 붙이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중단한 적이 있다.
연구는 중단됐지만 SF 작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1959년 로버트 A. 하이라이가 고전 명작 SF 소설 ‘스타쉽 트루퍼스’를 출간하고 큰 인기를 얻으면서, 강화 슈트는 많은 소설, 영화, 게임에서 미래 군인의 기본 아이템이 됐다. 물론 그 전에도 다른 SF소설에서 우주 공간에서 착용하는 장갑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스타쉽 트루퍼스 같은 영향을 주진 못했다.
1960년대 중반엔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진짜 인간 증폭기가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제품이 GE에서 개발한 ‘하디맨(hardiman)’ 이다. ‘인간 능력 증폭기’라고도 불린 이 장치는, 당시 개발되고 있던 머니퓰레이터 기기를 인간이 직접 입는 형태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물론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이후 개발된 다른 장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디맨의 인기(?)에 힘입어 다른 제품과 연구 성과도 공개됐지만, 실제로 쓰기엔 너무 크고 비싸고 무거웠다. 꿈과 희망이 넘쳤던 시대는 이쯤에서 막을 내리고, 웨어러블 로봇 슈트 연구는 죽음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거기서 끝이 난 줄 알았지만…
영화, 꿈을 이어가다
현실에선 죽었지만(?) SF 영화에선 아이디어가 살아남았다. 사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웨어러블 로봇 슈트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영화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좋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 속 웨어러블 슈트는 역시 아이언맨이다. 위 사진 속 슈트는 헐크 버스터. 헐크 잡으려고 만든 특제 거대 슈트로,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떡대형이다.
영화 에일리언 2에서 시고니 위버가 최종 병기로 사용했던 외골격 로봇도 유명하다. 건설 중장비처럼 생겨서 왠지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생긴 장비였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주인공들이 입었던 외골격 전투복도 기억에 남는다. 외계인의 습격에 맞서 모자란 힘을, 슈트의 힘을 이용해서 보충하며 싸운다.
이처럼 웨어러블 로봇 슈트라는 개념 자체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와 현실은 한참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이 문제. 하지만 21세기에는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일정 부분 상용화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다르파, 인간 증폭기를 되살리다
민간 차원에서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웨어러블 로봇 슈트 연구는, 21세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재개된다. 미국 방위 고등 연구 계획국, 다르파(DARPA)에서 외골격 장치에 대한 연구 지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판단했다. 군용이 중심이긴 하지만 연구는 크게 군사용/ 재활용 양쪽 쓰임새를 아우르며 진행됐다.
https://youtu.be/BCOctcoVQFY
위 영상은 수트엑스에서 개발한 피닉스-라는 외골격 장비다. 다르파에서 지원을 받은 UC버클리 대학의 연구팀이 독립해서 만든 기기로, 허리 아래가 마비된 사람들을 걷게 해 준다.
다르파의 지원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실패한 군용 외골격 ‘헐크’의 뒤를 잇는 탈로스(TALOS)도, 공개가 연기되고 프로젝트가 취소된다 어쩐다 하는 수난을 겪긴 했지만, 2019년 여름 드디어 공개됐다. 헐크는 반응 속도가 늦고 너무 무거워서 실용화에 실패한 반면, 탈로스는 전체적으로 크게 가볍고 유연하게 만들어서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였다.
그 밖의 다른 웨어러블 로봇 슈트들
외골격 로봇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는 크게 군사용, 작업용, 의료용으로 나눌 수가 있다. 사실 비슷한 제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사코스사에서 만든 엑소스2(XOS2)라는 이름의 외골격 슈트는 뇌 신호를 읽어내 착용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구현해 내는 것이 특징이다. 외골격 슈트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외골격이 사용자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굉장히 피곤하게 느껴진다는 점인데, 이 기기는 뇌 신호를 읽어서 움직임에 걸림돌이 없다고 했다. 쌀 반가마니 정도의 무게를 한 손에 들 수가 있다고.
일본에서 만든 할(HAL)은 의료용이자 작업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외골격 슈트다. 피부를 통해 뇌 신호를 파악해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전신용과 하반신용이 따로 나와 있으며, 정밀하게 슈트를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 2016년부터 일본 의료보험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그밖에도 우리나라에서도 현대 자동차 및 방위사업청 등 여러 곳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실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제품도 상당히 많다.
앞으론 어떻게 진화할까? 개인적으로 예전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RC)가 로봇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처럼, 2016년 10월에 열린 사이보그 올림픽 사이배슬론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대회에선 로봇 의족을 의지해 달리거나, 외골격 로봇을 입고 장애물 달리기를 하거나, 뇌로 조종하는 컴퓨터 게임 등의 경기가 열렸었다.
기술 발달과 함께 뇌파를 탐지해 외골격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좀 더 가볍고 부드러운 재질을 사용해 이용자의 부담을 줄이는 기기들이 곧 선보이지 않을까? 일단 2017년~18년쯤에는 새롭게 진화한 외골격 로봇들이 선보일 예정이기 때문에, 계속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
이상, 지난 2016년 12월 YTN 사이언스 출연 방송 내용이었습니다(약간 손봤습니다.). 올린다 하고 못 올리고 있었네요(예, 올해 말까지 옛날 글 정리기간입니다.). 이후,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놀랍게도, 2017년부터 웨어러블 로봇 슈트 산업이 쑥쑥 크고 있습니다. 우린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2020년에는 더 많은 제품을 만나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2019년 11월 방송 내용)에서 하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