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해보이는 그 제품이 실패하는 이유

업그레이드의 역설, 가치 사슬의 그림자

 

모든 성공한 기업은 흑역사가 있다. 아니, 흑역사가 있는 기업이 성공한 기업이다. 망할 뻔하다 성공하면 흑역사가 되지만, 실패하면 그대로 망해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그렇듯, 흔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기업은 없다. 대박 날 줄 알았는데 쪽박을 차기도 하고, 쪽박날 줄 알면서도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정말, 실패한 제품은 참 많다. 멀쩡한데 때를 잘못 만나 실패한 제품들도 있고, 다 좋은데 너무 비싸서 실패한 제품도 있다. 사실 괜찮은 제품인데도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 비싸서 망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가끔, 멀쩡한데 이상해서 실패한 제품도 있다.

… 그러니까, 지금부터 소개할 이 제품들은, 멀쩡한데 망했다.

업그레이드의 역설, 모토로라 ROKR E1

 

 

겉보기엔 멀쩡한데 못생겨서 실패한 제품이 있다. 모토로라 ROKR E1이 그렇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기 전에 발표된, 세계 최초로 아이튠즈를 사용할 수 있었던 휴대폰이다. 어찌보면 아이폰의 배다른 선조라고도 볼 수 있고, 실제 2005년 애플 공식 이벤트에서 발표된 제품이기도 하다.

출시 전엔 꽤 관심을 받았는데, 나오자마자 완전히 망했다. 쓰기도 불편하고 못생긴 폰을 아무도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대폰이라 생각하면 그냥 그런데, 아이팟과 비교하면 겉도(디자인) 속도(UI) 진짜 못생겼던 제품.

당시 사람들이 원한건 전화기 기능이 들어간 아이팟이었는데, 모토로라는 자사 휴대폰 인터페이스에 아이튠즈를 구겨 넣었다. 아이팟이 아니라, 아이튠즈를.

가만 보면 이상하다. 어떻게 이런 제품이 실제로 나올 수 있었을까? 당장 내부 결제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상한데, 이해못할 일은 아니다.

업그레이드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문제가 있다. 디지털 제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다. 많은 스마트 기기는 매년, 기본적인 기능은 크게 다르지도 않은 제품에,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해서 신제품이라고 내놓는다. 때로는 신제품을 내놓기 위해 기능을 추가하기도 한다.

ROKR E1을 만들던 모토로라는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 아이폰처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단순히 기존에 있는 휴대폰에, 아이튠즈로 음악을 넣고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한 거다. 사람들이 왜 아이팟에 열광했는 지도 모르고.

… 스티브 잡스가 이 제품을 보고 화가 난 덕분에,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면 해피엔딩이긴 하지만(므흣).

 

 

만든 사람도 실패할 줄 알았다, MS KIN

 

반대로, 엉뚱한 관점으로 접근해서 실패하는 스마트 기기도 있다. 2010년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내놓은 KIN 스마트이 그렇다. 쿼티 키보드와 윈도우 CE 시스템을 탑재한 이 폰은, 하드웨어 명가인 MS에서 직접 만드는 첫번째 스마트폰이라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가격도 2년 약정일 경우 50달러 정도로 저렴한데다 사각형의 매우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이 제품을 개발하는데 들어간 돈만 해도 약 10억달러. 하지만 시장에선 정말 처절하게 실패했다. 어느 정도냐고? 판매 두달만에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왜? 이 제품은 스마트폰이면서 스마트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폰이 저렴해도 기본적인 기능은 갖춰야 한다. 이 제품은 그런 균형을 잃어버렸다. MS와 협력 관계에 있는 다른 제조사를 배려(?)하느라, 구형 OS를 달고 나왔다. 앱스토어도 없었다. 게임도 없었다. 오피스도 없었다. SNS 서비스를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사실 나올 필요가 없는 폰이었다. 갑작스럽게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하고, 그걸 애플과 구글이 순식간에 과독점하자 불안했던 마음은 알겠다. 그렇지만, 성급하고 무리한 대응이었다.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스마트폰에 꼭 필요한 기능까지 무시했다.

… 들리는 말로는 내부 직원들도 이 제품이 실패할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알면서도 다들 말 못했다고.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다

 

 

아이패드용 영상 통화 장치도 있었다. 아이투아이라는 기기다. 간단히 아이패드를 끼우기만 하면, 손대지 않고 편리하게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옛날 SF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생겼다. 그렇지만 … 누가 이런 걸 책상에 올려놓고 싶어하지?

뭐,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다. 나중에 상단에 조명장치를 추가해서 2세대까지 나오긴 했다. 지금은 아이패드를 이용한 모바일 비디오 스튜디오 장치로 태세를 전환했다. 비디오 녹화용 앱을 개선하고, 그 기능을 지원하는 하드웨어 장치로 판매하고 있다.

 

2009년에 출시된 트위터픽(TwitterPeek)이라는 제품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름대로 트위터만 할 수 있는 트위터 전용기기였다. 한번 충전하면 3~4일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쿼티 키보드가 달려있어서 트위터를 하기도 편했다.

당시에는 트위터가 굉장히 인기가 높았다. 게다가 한번만 돈을 내면 평생 트위터를 통신 요금 걱정 없이 이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두 가지 제품을 들고 다니기 보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처리하길 원했고, 덕분에 망했다. 평생 트위터 무료라던 제품은, 2010년에 단종되면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아무리 멀쩡하고 좋은 제품이라도,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망하고, 그 댓가는 망하기 전에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다 져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줬달까.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다

 

잘 알려진 실패작도 있다. 가장 유명한 실패작이라면 역시, 구글 글래스와 세그웨이다.

 

 

구글 글래스는 AR 웨어러블 안경 붐을 일으킨 기기다. 처음에 발표됐을 때는 그만큼 신선했고,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는 느낌을 줬다. 문제는 … 구글 글래스가 꼭 필요한 이유를 못찾았다. 더불어, 이 안경을 착용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 못했다.

나오기도 전에 말이 많았는데, 가격도 비쌌다. 유일하게 구입할 수 있었던 개발자 버전 가격은 1500달러(세금 제외). 이 가격에 팔았는데, 판매 7개월 후에 단종. 2017년 산업용 버전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가격이 1700달러에 달했다. 사서 쓰라는 건지, 베타판을 테스트 해 달라는 건지도 알 수 없는데.

기술에 집착해서, 기기를 사용할 사람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내가 쓰긴 정말 좋은데, 니가 쓰니 왜 이리 불만이 많아? 라고 개발자들이 말하는. 연구실 바깥으로 나온 기술이나 제품이 살아남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은 실전이니까. 구글 글래스는 그래도 아직 살아있으니 운이 좋은건가.

 

 

 

그리고 마지막, 세그웨이다. 사실 이 글은 세그웨이를 위해 쓴다. 2020년, 드디어 생산이 종료됐으니까. 다들 잊었겠지만, 세그웨이는 출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처럼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그런 기기라고 알려졌었다. 최고 시속 20km에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으로, 사람이 걷고 생활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나와보니… 그냥 서서 타는 전기 스쿠터.

세그웨이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비싼 가격도 비싼 가격이지만, 이 제품을 타고 있으면 사람들이 게으름뱅이 보듯 쳐다 본다거나, 돈 자랑하는 것처럼 봤다. 다시 말해, 너무 튀었다. 대중교통과 연동해서 움직이는, 21세기 도시 생활 스타일과도 맞지 않았다.

세계는 넓고 실패작은 정말 많다. 누구나 자기만의 흑역사를 품고 있다. 하지만 실패 없는 삶이, 실패 없는 기업이 어디 있을까. 많은 실패작이 없다면, 성공작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작을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실패는 우리 모두 한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 가가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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