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월, 애플카 출시 소문을 듣고 기고했던 글입니다.
애플은 언제부터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전 애플 아이팟 부문 부사장이었던 토니 파델의 인터뷰를 보면, 아이디어는 아이폰 발표 이후에 바로 나왔던 듯하다. 토니 파델과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나 아이폰이나 다를 바 없는데, 만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고 한다. 잡스가 살아 있을 때 뉴욕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자기에게 좀 더 에너지가 있었다면 애플카로 디트로이트를 접수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플 이사회 구성원이었던 미키 드렉슬러는 대놓고 ‘스티브의 죽기 전 꿈은 아이카를 디자인하는 거였다’라고 털어놨다. 그럴 만도 한 게 잡스는 BMW Z8, 내쉬 메트로폴리탄 컨버터블, 포르쉐 911과 944, 928을 비롯해 폭스바겐 트랜스포터, 피아트 650 쿠페 등 다양한 차량을 수집했던 자동차 애호가였다. 마지막엔 벤츠 SL55 AMG에 안착했지만.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바로 개발이 진행되진 않았다. 당시 애플은 컴퓨터 회사였고, 아이폰을 비롯해 아이패드 등 새로운 기기를 개발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사라진 아이디어가 다시 등장한 시기는 애플이 아이폰에 차량 관련 기능(카플레이)을 추가했다고 발표한 2014년이다. 그즈음 테슬라는 전기차의 애플이라 불리며 커가고 있었고, 구글은 자율주행차 영상을 공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던 애플 CEO 팀 쿡은 애플카 개발을 지시하게 된다. 포드 엔지니어 출신 아이폰 개발자 스티브 자데스키를 부사장으로 임명하고, 코드명은 ‘프로젝트 타이탄’이라고 붙였다. 당시 출시 목표일은 2020년, 개발에 참여한 직원은 약 천여 명. 추가 보너스를 제시하며 테슬라 등 타사 직원을 빼내오는 바람에,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듣기도 했다.
2020년, 우리는 애플카를 만나지 못했다. 6년이 흘렀지만 새로 나오는 소식이 똑같다. 곧 애플카가 출시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다. 로이터에선 애플이 자동차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고, 2021년에 공개하고 2024년에는 나올 거라고 한다. 막상 나온다고 하자 2023~25년에 애플카를 볼 수 있을 거라 말했던 애플 분석가 밍치궈는 의견을 바꿨다. 빨라야 2025년, 실제론 2028년이나 되어야 나올 거라고 한다.
지난 몇 년 간 이런 소문이 여러 번 나타났다 사라졌다. 생각보다 애플카 개발이 쉬운 일이 아닌데다, 타이탄 프로젝트 책임자가 바뀔 때마다 개발 방향도 바뀌고, 개발자도 바뀐 탓이다. 이쯤 되면 베이퍼웨어(나온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실체가 없는 제품)라고 불릴 만도 한데, 다들 그렇게 여기진 않는다. 잡음이 무성하지만, 애플이 연구를 멈추지는 않아서다. 실제로 애플에서 일하던 중국인 직원이 애플카 관련 기밀문서를 훔치다 적발된 사건이 2018년과 19년, 연달아 일어났다.
... 그리고 무엇보다, 애플이 진짜 혁신적인 자동차를 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애플카를 기대하는 이유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면 뭐가 다를까?
애플이 만든 제품은 다른 회사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쓰기 쉽다. ‘그냥 들고 쓰면 된다’가 애플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복잡해지긴 했지만, 제품 상자를 열고, 설명서를 읽을 필요도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기기를 만든다. 애플이 만든 트렌드로, 예전 전자 제품 상자에는 두꺼운 설명서가 항상 함께 들어 있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완전한 융합’도 특징이다.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들어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거기서 느껴지는 쾌적한 사용 경험은, 애플 생태계를 이용자가 떠날 수 없게 만든다.
‘높은 제품 완성도’도 특징이다. 제품을 만지고 사용하면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은, 초기에 다른 값싼 경쟁 제품과 애플 제품을 차별화하는 요소였다. 단순히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만들지 않고, 디스플레이 색 정확도가 같은 고급 기능이나 그런 기능에 걸맞은 앱까지, 꼼꼼하게 잘 갖춰져 있다.
이런 노하우가 자동차 제작에 투입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의 기대는 거기에서 시작한다. 높은 완성도를 가진, SW와 HW가 제대로 융합한, 쓰기 쉬운 자율주행 전기차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니까. 공개된 애플카 관련 특허를 가지고 상상한 모습은 이렇다.
우선 애플카는 모든 곳을 터치해서 조작할 수 있다. 창문은 큰 화면에 가까우며, 다양한 콘텐츠를 스마트 기기에서 직접 이 화면에 전송할 수 있다. 실내 온도는 자동으로 조절되며, 스마트 기기에 들어간 사용자 정보와 연동해서 더 알맞게 바꿔주기도 한다. 조명도 자동으로 바뀐다. 예전에는 이동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이 실내였다면, 앞으론 움직이면서 일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영화를 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운전석 대시 보드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로 바뀐다. 기존 HUD처럼 속도나 방향 같은 단순 정보만 표시하지 않고,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주차할 위치를 기록할 필요 없이 자동차가 건물과 통신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주차 요금도 자동으로 정산할 수 있다. 충전을 위해 차에서 내려 귀찮게 직접 케이블을 연결할 필요도 없다. 충전 장소에만 도착하면, 충전기가 알아서 케이블을 연결해 충전하게 된다.
여기서 하나 빠져 있는 기능을 볼 수 있다. 바로 자율주행 기능이다. 탑승자나 운전자를 위한 편의 기능은 가득하지만, 자율주행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애플이 자율주행 관련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꽤 많은 자율주행 관련 특허를 가지고 있다.
관련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고, 테스트 차량과 드라이버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애플카가 ‘완전 자율주행차’가 되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특정 구간을 반복 운행하는 공공 교통수단이라면 모를까,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완전자율주행 자동차는 과장된 꿈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문만 무성했지 아직 상용화된 제품이 없다.
애플카, 출시되긴 할까?
왜 애플카가 나오기를 바랄까?
애플로선 비교적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아이폰 중심으로 짜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한다. 최근 에어팟 같은 보조 기기나 구독 서비스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아직 애플은 아이폰 회사다. 제품 가격을 올려 수익은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부분이 있다. 중국 판매량만 떨어져도 매출이 무너진다.
전기차 산업이 성장세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테슬라와 중국 정부가 만든 전기차 시장은, 탄소 절감 시대를 맞이해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전기차가 네 바퀴가 달린 스마트폰에 가깝다면, 관련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애플이 넘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다른 많은 미국인처럼, 애플 주요 간부도 모두 자동차 애호가다. 잡스뿐만 아니라 예전에 디자인을 책임졌던 조너선 아이브, 마케팅을 책임졌던 필 실러, 인터넷 소프트웨어 담당 부사장 에디 큐까지.
애플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이폰을 출시해 스마트폰 시장을 폭발적으로 확산시키고, 아이패드를 출시해 태블릿PC 시장을 만들었던 것처럼, 전기차 시장을 제대로 넓혀주길 기대하기도 한다. 이용자들도 좀 더 제대로 된 차를 기대한다. 꽉 막힌 출근길을 좀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차, 스마트폰과 잘 붙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차, 보험료/수리비/과태료/연료비/각종 세금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차를. 물론 모두 애플이 제대로 된 차를 내놨을 때나 가능한 거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자동차 제조는 IT 기기 제조와 매우 다르고, 혹자는 아이폰이나 자동차나 본질에서 같다고 말한 에피소드가, 얼마나 자동차 산업에 대해 무지한 지를 보여주는 거라고도 한다. 벤츠 그룹 CEO는 애플카에 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만들겠다고 하면 무슨 생각이 들겠냐고.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할 때 드는 생각도 비슷하다고.
하지만 처음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도, 당시 MS CEO였던 스티브 발머 같은 이는 단호하게 ‘아이폰이 의미 있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기 어렵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애플카가 정말 나올지는 누구도 모른다.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크지만, 아이맥-아이팟-아이폰으로 핵심 제품을 바꿔 가는 것과 아이폰에서 애플카로 넘어가는 건 크게 다르다. 그래도 로이터에서 보도한 대로, 2021년 차량을 공개하기라도 한다면, 그 파급력은 상당히 클 것이다.
- 결국 애플은 아무 것도 공개 못하고 애플카 사업을 접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