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원피스의 해적선, 버버리 트렌치코트, 갤럭시S 스마트폰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방수다.
배의 방수 역사는 길다. 기원전 5000년부터 뗏목이나 원시 목선에 동물 뼈로 만든 아교와 역청질(아스팔트와 비슷한 물질, 공식명칭은 비튜멘(Bitumen))을 발라 방수 처리를 했다고 한다.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개버딘이란 소재를 써서 만들어진 군용 방수 코트로 태어났다. 가볍고 방수가 잘되면서도 보온력과 통기성이 뛰어나 곧 일상복으로도 사랑받게 된다. 갤럭시S 스마트폰은 ‘갤럭시 S4 액티브’부터 방수 방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잠깐, 그런데 스마트폰은 어떻게 방수를 하는 걸까? 선박처럼 뭔가를 바를 수도 없고, 버버리 트렌치코트처럼 방수 소재로 케이스를 만들어도 소용없을 텐데.
애당초 물과 전자 기기는 상극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피처폰을 썼을 때는 세면대나 변기에 휴대전화를 떨어트려 망가트리는 일이 많았다.
스마트폰은 더하다. 물에 빠트린 적도 없는데 침수 라벨이 변색되었다며 무상 수리를 거부하는 일을 당해본 사람이 꽤 많다. 노트북 컴퓨터는 어떻고? 마시던 커피가 실수로 쏟아지는 바람에 기기를 망가뜨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목욕 문화에서 태어난 방수 스마트폰
IT 기기 방수 기술은 이런 아찔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준다. 이런 기술이 처음 대중화된 곳은 일본이다. 일본에선 피처폰부터 방수가 기본 사양이었으며, 최근 팔리는 스마트폰도 대부분 방수가 된다.
왜 그럴까? 비가 많이 와서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일본 여성들은 목욕할 때도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2012년 파나소닉 책임자 타로 이타쿠라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목욕 문화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덕분에 2013년, 소니에서 첫 번째 (마개 없는) 방수 스마트폰을 선보였다(소니 엑스페리아 Z, 최초의 방수 피처폰은 카시오 캔유 502s, 러기드폰은 모토로라 Defy 다).
방수가 대중화된 때는 2016년이다. 갤럭시 S7과 아이폰 7이 방수를 지원하면서, 방수 기능은 특화 기능이 아닌 확실한 대세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전부터 방수가 되는 전자 기기는 있었다. 설명할 때나 이름에 러기드(Rugged)라는 말이 들어가는 제품은 꽤 물에 강하다. 일부는 미 육군 납품 규정(MIL-STD-810G)을 충족시킬 만큼 튼튼한 기기로,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컴퓨터, 스마트 워치 등이 있다.
러기드는 아니지만 간단한 방수가 지원되는 제품도 있다. 전자시계는 대부분 생활 방수가 된다. 야외에 설치되는 디지털 사이니지(옥외 광고 디스플레이) 같은 제품에도 기본적으로 방수 처리가 되어 있다. 캠핑용 스피커나 배터리, 스포츠 이어폰, DSLR 카메라와 렌즈도 생활 방수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내 스마트폰도 방수가 될까?
내 스마트폰이 방수되는지 알고 싶다면, 스마트폰 사양을 확인해봐야 한다. 사양에 IPxx 방수 방진 등급을 지원한다고 표시되어 있으면 방수 방진이 지원되는 기기다.
IP(Ingress Protection) 등급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정한 국제 표준 규격(IEC 60529 : 2001)으로, 첫 번째 숫자가 먼지 등에 대한 보호 수준(최고 6등급), 두 번째 숫자가 방수 등급을 나타낸다(최고 8등급). 0이면 보호가 아예 안 된다는 뜻이고 숫자가 커질수록 잘 막아 준다.
예를 들어 스마트 기기 사양에 IP67라고 적혀 있다면, 방진은 6등급이고 방수는 8등급으로 최고 수준 방진 방수 기능을 갖췄다는 말이다. 데이터가 불충분할 경우 X로 표시한다. 방진 테스트 없이 방수 테스트만 했을 경우 IPX7 이런 식으로 하게 된다.
생활 방수가 된다고 적혀 있는 기기도 있다. 방수 4등급 정도 되는 제품으로, 이런 제품은 IP등급 대신 영어로 Water Resistant이라고 적어 놓기도 한다. 약한 비가 오거나 세수할 때 끼고 있는 정도는 괜찮다는 의미다. 앞서 말한 전자시계, 캠핑용 스피커나 스포츠 이어폰 같은 제품에서 쓴다.
완전 방수 제품은 Water proof라고 쓴다. 보통 방수 7등급 이상 제품이다. 7등급일 경우 15cm~1m 깊이의 물 밑에서 30분 정도 버티는 테스트를 통과했고, 가장 좋은 8등급 제품은 1m 이상 깊이의 물에서도 버텼다고 보면 된다. 이 정도면 우리가 일상에서 액체를 만나는 대부분 상황, 음료수를 마시거나 비를 맞거나 땀을 흘리거나 세수를 하거나 수영을 할 때 스마트폰을 지켜주기에 충분하다.
방수가 만능은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방수가 되는 걸까? 방수 제조 기업은 크게 테이프 기법과 나노코팅 기법으로 나뉜다. 대부분 고무 패킹으로 틈새를 메꾸고 방수 테이프와 접착제를 이용해 봉인하는 테이프 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는 계속 얇아지는 데 그 안에 방수 기능을 구현해야 하기에 꽤 어려운 작업이다.
나노 코팅 기법은 모든 부품에 나노 코팅을 해 얇은 박막을 만들어 방수하는 기법이다. 테이프 기법보다 간편하지만, 방진 없이 방수 기능만 쓸 수 있고 내부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리 방수가 잘 돼도, 물과 스마트 기기는 상극이다. 방수 기능은 갑옷이 아니라 보험이라 봐야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여러 상황에서 맘 졸이지 않아도 될, 폭우가 쏟아진다거나 가방이 젖었다고 스마트폰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그런 보험.
방수 기능을 믿고 바닷가에서 함께 물놀이를 한다거나, 일부러 음료수를 쏟거나, 수돗물로 씻거나, 세탁기에 넣지 말자. 다른 스마트 기기라면 고장 날 상황에서도 잘 버텨주기는 하지만, 소금물의 부식력이나 흐르는 물의 수압은 생각보다 세다. 운 나쁘면 유상 수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 불안하다면 지퍼백을 하나 가지고 다니면 좋다. 책을 비롯해 젖으면 안 되는 물건을 여기에 넣으면 맘 편하게 보관할 수 있다. 장마철을 비롯해 여러 물놀이 장소에서도 두루 유용하게 쓰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방수 기능이 있는 스마트 기기는 생각보다 쓸모가 많다. 한 때 갤럭시 S8의 가장 매력적인 기능으로 손꼽았다. 2017년에 일어난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고’ 때에는 뒤집힌 배 안에 갇힌 승객이, 방수 스마트폰에 의지해 견디다 구조된 일도 있었다.
일상의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 사람 목숨까지 건진 셈이다. 아직은 많은 스마트 기기가 제조 과정의 어려움과 제조 단가가 높아진다는 이유로 방수 기능 없이 나오지만, 앞으로 점점 방수 기능은 필수가 되지 않을까?
물론 러기드폰이라 주장하면서 방수도 지원하지 않는 유니허츠 타이탄 스몰- 같은 스마트폰도, 여전히 나오고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