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휴대폰은 지금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통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는 게 핵심 기능이고, 간단한 게임이나 휴대폰 전용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죠. 카메라도 달려있고 MP3 플레이어 기능도 있고 컬러 디스플레이도 있었지만, 지금 다시 보면 ‘저질’이었습니다. 그땐 그 기능만으로도 행복했었지만요.
그런 폰을 요즘엔 ‘피처폰(feature phone)’이라 부릅니다. 구식 폰의 외형이나 기능이 있는 휴대폰 또는 스마트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래는 스마트폰 보급 이전에, 3G 네트워크와 함께 선보인 ‘고급형 휴대폰’을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기억하는 모토로라 레이저폰이나, LG 블랙 라벨 시리즈 같은 폰이 그런 폰입니다. 그전에는 휴대전화를 Cell Phone(우리는 핸드폰)이라 불렀는데요. 피처폰은 통화와 문자만 하는 단순 휴대폰이 아닌, 다른 기능도 들어간 폰이라는, 나름 자부심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피처폰 시장
한국에선 쓰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폰이기도 합니다. 아이폰5와 갤럭시 S3가 출시된 2012년에는 피처폰 이용자가 2,200만 명에 달했습니다만, 더 많은 수익을 노린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의 합작에 떠밀려 사라졌죠.
2022년 6월 기준 피처폰 이용자는 약 160만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2022년 전체 휴대폰 가입 회선이 5,555만 정도 되니, 3%에 못 미치는 셈입니다. 2018년에는 6백만 명, 2019년에는 5백만 명 정도는 있었는데, 2020년과 2021년에 SKT와 LG U+에서 2G 서비스를 강제 종료하면서 이용자 수가 확 줄었습니다. KT에선 2012년에 종료했고요.
그런데 세계로 눈을 돌리면 좀 달라집니다. 스태티스타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전체 휴대폰 가입자는 72억 6천만 건 정도로 예상합니다. 이 중에 스마트폰 이용자는 65억 6,700만 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피처폰 이용 회선은 대략 6억 9천만 건 정도 된다는 말입니다. 모두 추정치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전체 휴대폰 사용자 중 9~10% 정도는 여전히 피처폰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실제로 카운터 포인트 리서치에서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20년 피처폰은 약 2억 8,000만 대가 출시됐습니다. 2023년 미국 시장에서도, 2%라는 견고한 시장 점유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요. 2022년부턴 손을 떼었지만, 삼성전자에서도 연간 천만 대가 넘는 피처폰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주로 인도에서 파는 제품으로, Guru와 Hero 시리즈가 있었죠.
피처폰 주요 소비자는 인도와 아프리카
2021년 기준 시장 1위는 인도 회사인 아이텔(iTel)이고, 2위는 노키아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HMD입니다. 그 뒤를 테크노(Tecno)나 삼성, 라바(Lava) 같은 회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회사들이 많다고요? 이 시장이 원래 그렇습니다. 이윤은 적지만 누구나 도전해 볼 만해서,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수십 개가 넘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실제 시장 점유율 1위는 기타 등등(others)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주로 누가 쓸까요? 2019년에 퓨 리서치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인도와 남미, 중동 및 아프리카 같은 지역입니다. 동유럽, 러시아 같은 곳의 수요도 꽤 큽니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고,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분석합니다.
인구로 따지자면 대단히 큰 지역들입니다. 아프리카만 해도 추정 인구도 13억 명, 인도는 14억 명이 넘으니까요. 그렇다고 북미나 동아시아 쪽 수요도 없는 건 아니라서, 나라마다 다르지만 2~5% 정도는 꾸준히 차지합니다.
피처폰을 왜 쓸까?
어떤 용도로 쓸까요? 우선 쓰던 제품을 계속 쓰고 싶은 소비자층이 있습니다. 사용법이 간단한 제품을 선호하는 분도 있고요. 특수 분야 수요도 있습니다. 농업이나 광업, 건설 현장에서 기본 기능에 충실하고 부서지지 않는 휴대폰을 찾기도 합니다.
세컨드폰으로 쓰기도 하고, 여행용 보조 폰, 키즈폰, 공신 폰으로 사용하기도 하죠.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그저 그게 특이해서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피처폰은, 스마트폰보다 나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가격이 저렴하고, 데이터를 별로 안 쓰니 비싼 사용료를 낼 필요도 없죠. 최저가 피처폰은 단돈 만 원만 주고도 살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싼 휴대폰은 650루피, 우리 돈으로 약 10,710원부터 시작합니다. 알뜰폰 천사 요금제를 선택하면, 받기만 할 경우 월 500원 정도에 폰을 쓸 수 있습니다.
2G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이미 망이 깔린 곳이 많은 데다 음영지역이 적은 특성이 있어서, 많은 나라에서 계속 쓰고 있습니다.
배터리는 어떨까요? 2016년 출시된 노키아 150은 26달러짜리 폰입니다. 배터리는 1,020mAh에 불과합니다. 다만 이 폰으로 하는 일은 통화가 전부란 걸 잊지 마세요.
통화 시간이요? 22시간입니다. 통화를 안 하면 얼마나 버틸까요? 최대 25일입니다. 충전하지 않고도 25일간 통화 대기 상태로 버틴다는 말입니다. OS 업데이트가 멈췄다고 이제 새 폰을 사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도 않죠.
게다가 피처폰은 일반적으로 스마트폰보다 훨씬 더 튼튼합니다. 못 믿겠다면 아래 영상을 한번 보세요. 2012년 노키아 휴대폰 내구성 테스트 영상입니다. 옛날에는 이랬습니다. 하하하.
피처폰, 힙한 아이템으로 떠오르다
인터넷이나 앱을 못 쓴다는 단점은 요즘 시대에선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고,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요. 영국에선 피처폰을 멍청한폰(Dumbphone)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BBC에서 보도한 내용을 보면, 소셜 미디어 앱을 쓰기 싫어 이런 덤폰을 쓰는 사람이 조금 늘었다고 합니다. 디지털 치료제인 거죠.
뉴요커에선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덤폰이 유행한다는 기사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안 팔리는 건 맞습니다
어? 그런데 저렇게 많은 인구가 사는 지역에서 쓰는데, 생각보다 피처폰 사용자가 적지 않나요?
맞습니다. 사실 피처폰 이용자는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4억 8천만 대 정도 나갔지만, 지금은 2억 8천만 대니, 시장이 줄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스마트폰 시장은 저물고 있지만, 피처폰은 부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죠.
2019년에는 향후 3년간 10억 개 이상의 피처폰이 판매될 것 같다고 전망하기도 했지만,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저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을 결합하면 어떨까요? 예, 실은 여긴 가격이 중요한 시장이라서, 비슷한 가격을 가진 스마트폰이 있다면, 그쪽으로 바꿔도 되거든요.
그럼 피처폰은 이대로 망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굳게 주장합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피처폰이라고 변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변했지요.
요즘 만들어진 피처폰은 스마트 피처폰입니다. 예를 들어 노키아에서 만드는 노키아 2729 플립 피처폰을 볼까요? 스네이크 게임, 라디오, MP3 플레이어가 되면서 와이파이 핫스팟 기능도 쓸 수 있습니다. 4G 네트워크도 지원하고, 왓츠앱과 페이스북, 유튜브, 구글 어시스턴트, 구글맵 앱도 쓸 수 있죠.
오래전 LG 피처폰이 그랬던 것처럼, 핵심 앱을 미리 탑재한 겁니다. 그런데도 가격은 11만 원. 디자인도 예쁩니다. 다만 기존 스마트폰과는 OS가 다릅니다. KaiOS 같은, 저가폰을 위한 운영체재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리눅스 기반으로 터치패널이 없는 저사양 기기를 위해 만들어진 OS입니다. 그래서 카카오톡이 안됩니다(응?).
피처폰에 대한 추가 지원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인도 정부는 저가 휴대폰 분야에서 자국 회사를 키우기 위해, 중국 휴대폰 판매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거기에 더해 피처폰에서도 은행 결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대로 지터벅 스마트3처럼 시니어 계층을 위한 디자인과 서비스를 결합한 폰이 나오기도 하고(지터벅은 오래전부터 시니어 커뮤니케이션 기기를 만드는 북미 회사입니다.), 지오폰 넥스트처럼 100달러도 안 되는 인도 전용(공략 대상이 인도 내 2G폰 사용자인데, 이것도 비싼 가격이라고 합니다. 아이텔 피처폰은 3~4만 원 정도입니다) 스마트폰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선 와디즈를 통해 비너제로라는 피처폰형 스마트폰이 펀딩에 성공했다가 출시를 포기하기도 했었죠(이유는 모릅니다.).
무엇보다, 도구에 끌려다니기보다 도구를 끌고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가 정한 규칙, 그들의 갑질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죠. 수는 적지만, 그런 적은 수라도 괜찮을 정도로 생산 원가가 많이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당장 피처폰이 다시 성장할 가능성은 적지만, 언젠가 흐름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라면, 미래가 가진 여러 가능성 중에 이런 흐름도 있다는 걸 알아둬도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