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말 기묘한 기계를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물건. 작은 화면에 큼직한 키보드, 그리고 전화선 연결 단자까지. 처음엔 워드 프로세서 같은 건가 싶었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텍스트텔레폰(Text Telephone)이라고 불리는 장치다.
텍스트텔레폰은 1990년대 스웨덴에서 만든, 청각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전화기다. 전화선으로 연결하지만, 일반 전화처럼 음성을 주고받는 대신, 키보드를 이용해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단, 상대방도 같은 기기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만약 상대방이 일반 전화기만 사용할 수 있다면? 그런 경우를 위해, 교환원이 개입해서 문자→음성, 음성→문자로 바꿔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던 삐삐의 선조격으로 보이기도 한다.
낭만적인 기기지만, 나중에 휴대폰과 문자 메시지가 대중화되면서 사라졌다. 문자 전송이 휴대폰에서 바로 가능해졌으니, 굳이 별도의 기기가 필요 없어진 탓이다. 게다가 개인이 직접 구매하는 제품이라기보다는, 정부나 기관에서 청각 장애인에게 보급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시장 자체도 크지 않았다.
재밌게도, 이 제품은 기계식 키보드를 탑재했다. 요즘은 기계식 키보드가 마니아들 사이에서나 인기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의 키보드가 기계식이었으니까. 사실 요즘 사람들이 극혐하는 돔형 일반 키보드가 당시에는 혁신이었다. 키보드 가격을 크게 낮췄으니까.
이렇게 생긴 문서 입력기 겸 메신저가 다시 나와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이미 나왔다. 프리라이터나 이은규님의 마이크로 저널이 그런 제품이다. 가격이 비싸서 쓰는 사람만 쓰는 매니악한 기기로 여겨지긴 하지만.
... 하기야, 21세기에 타자기나 워드 프로세서를 찾는다면, 매니악한 것이 맞긴 하다.
https://www.tindie.com/stores/unkyulee/
매니악하긴 한데, 확실히 생산성(?)은 높아진다고 한다. 특히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다고. 얼마 전엔 풀스크린이 대세였던 차량 대시 보드에서 다시 버튼을 도입하겠단 얘기가 나왔다. 사진기나 카세트 같은 전용 기기를 다시 찾는 사람도 늘었다.
모든 것을 가상으로 통합해서 생긴 불편에, 사람들이 다시 전용 기기로 분화되는 상황이다. 이럴 때 이런 기기나 나와 준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는 글을 적다가, 타자기로 친구와 이야기도 나눈다니, 꽤 솔깃하지 않은가?
스펙 및 출처 :
Texttelefon(Typ: PT-200)
Modell: B/SE CE Kompis
Polycom Technologies
Box 2011, S-183 02 Täby, Sweden
https://imgur.com/a/polycom-texttelefon-kompis-zwU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