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이폰3Gs였습니다. 서랍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본 김에 충전이나 시켜줄까-하고 충전 케이블을 연결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화면도 안 나오고(백라이트 고장), 터치도 안되고, 나중에는 아예 화면도 안 나옵니다. 가만 보니 배터리가 부풀었네요.
추억이 많아서 그냥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배터리가 부풀면 위험해서 보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폐기 결정. 그렇게 버리기로 하고 서랍을 다시 보는 데, 이번에는 아이폰4s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것도 문제가 생겼으면 어떻게 하지-하고 충전을 시키는 데, 어? 잘 켜집니다?
다만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건 제 폰이 아니라 제 동생 폰이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비밀번호를 모릅니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이거 해봐라 저거 해봐라 알려주는데, 다 틀립니다. 틀릴수록 5분 후, 10분 후, 1시간 후 뭐 이런 식으로 입력 시간이 길어지더니, 결국 완전 잠금(...).
결국 동생도 포기하고, 초기화에 들어갔습니다. 초기화가 잘 될까 걱정되어서 해킹 프로그램도 따로 준비해 뒀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아이튠즈 앱이 사라지고 애플 기기 앱으로 바뀐 후에도, 애플 소프트웨어에서 아이폰4s를 지원합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팩토리 리셋 완료.
완전 초기화를 하면 안에 있던 데이터가 다 사라지고, OS도 자동으로 최신 OS로 세팅됩니다(=강제 업데이트). 최신이라고 해봤자 iOS 9이지만... 장점은 최신이란 거고, 단점은 구형 OS에 비해 반응 속도가 확연히 느립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전에 쓰던 아이팟도 친구 줬는데요. 어쩔 수 없으니 설치 완료.
그런데 웃기게도, 2011년 10월에 선보인 이 낡은 폰이, 아직도 작동이 됩니다. 느리긴 하지만, 새로 아이폰을 샀을 때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초기 세팅을 마쳤습니다. 아이디도 원래 가지고 있던 애플 아이디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클라우드에 등록된 데이터를 대부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처음엔 여기서 깜짝 놀랐는데요. 사실 14년 전 폰이면 아이클라우드 지원을 끊거나, 앱 구동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거든요.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지원 기간 끊긴 폰은 그냥 버리기 때문인데, 무슨 이유인지 아이폰4s에 있는 기본앱은 현재 아이클라우드 시스템과 그대로 호환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원이 끊긴 레거시 폰과 앱이어도, 일부러 끊지는 않고 있다는 거죠.
기본 앱은 당연히 다 지원하고-
느리지만 구글 검색도 할 수 있고, 웹페이지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느립니다(...). 꽤 느립니다.
제일 놀랐던 건 이거입니다. 아니 여기서 왜 애플 뮤직이 뜨냐고요. ㅋㅋㅋ. 애플 기기를 통해, 지금도 Mp3 파일을 전송해서 음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구형 아이폰의 음악 인터페이스를 감상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Mp3 플레이어로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 전체 용량이 16GB라, 많이 넣을 수는 없지만요(...).
심지어 사진도 그냥 찍힙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 사진 품질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간단한 기록용으로는 여전히 충분히 쓸만한 수준입니다.
앱스토어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앱스토어 화면에 있는 앱은 대부분 설치할 수 없지만, 예전에 사뒀던 구형 앱들은 내 아이폰 앱을 통해 다운로드하여 실행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다들 잘 돌아가고요. 현재 최신 버전을 지원하는 앱들도 구 버전을 다운 받을 수 있게 해줍니다.
식물 vs 좀비, 들어는 보셨습니까? 후후후.
생각보다 더 잘 돌아가서, 이거 그냥 서브 폰으로 다시 쓸까 했는데, 아쉽지만 쓸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제 '폰'이 아니에요. 아이폰4s는 3G 네트워크만 지원하는데, 사실상 3G 네트워크가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라... 이 폰을 폰으로 쓸 수가 없거든요. 예전에 폰이었던 MP3 플레이어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진짜 나온 지 14년 된 폰을 여전히, 필요한 일에는 다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무시무시하네요. 이때쯤 나온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예를 들어 갤럭시 S1)은 이젠 공짜로 줘도 안 가질(...) 것 같은데요. 다르게 생각하면 우린 이미 오래전에, 굳이 새 폰을 살 이유가 별로 없는 시대로 접어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3G 네트워크만 계속됐다면, 이건 그냥 '휴대폰'으로 지금도 쓸 수 있는 제품이란 말이니까요. 최신 게임도 못하고 카카오톡도 안되고 뭐 그러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솔직히 그런 기능이 안 돼도 상관없잖아요? 음악 듣고, 사진 찍고, 가끔 웹서핑하고, 이메일 답장하고, 통화하고 문자 보내고, 날씨 정보 보고-
그냥, 다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