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토론에서, 당시 앨 고어 부통령은 어린아이를 가진 가정에서 적당한 탁아 시설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연방 정부가 탁아 시설을 늘이는데 예산을 투입해야 하고, 특히 좋은 직장을 찾아서 일하고 싶어하는 근로 여성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제의했습니다.
나는 그의 주장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그 주장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자 교수님은, ‘정부’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대신 ‘우리 납세자들’이란 단어를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앨 고어 부통령의 제안을 지지하고 있고, ‘우리 납세자들’은 근로 여성을 위한 탁아 시설에 보조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질문 했습니다. 첫째,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가지고 있고, 아이와 함께 집에 있고 싶기 때문에, 직장에 나가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을 포기했다고 가정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경우, 탁아 시설 보조를 위해 나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부과하는 것에 찬성하느냐고 교수님은 물었습니다. … 나는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교수님은 이런 질문으로 나를 다그쳤습니다.
“학생이 다시 마음을 바꾸고, 직장에 나기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래서 아이들을 맡길 탁아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당신의 그런 선택 때문에 생긴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모든 국민, 다시 말해서 당신 동네에 사는 사람을 비롯한 여러분의 이웃에게 모두 세금을 부과하는데 찬성합니까?”
– p121, Making the most of college, 리처드 라이트
맞아요. 단어의 선택은 엄밀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단어를 하나 바꾸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진실들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국회의원들의 ‘국민’이라는 말 대신에 ‘나에게 정치 자금을 대주는 사람들’이라고 바꾸면 그들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게 모두 너를 위해서야-“를 “이게 모두 나를 위해서야-“라고 바꾸면 확실하게 이해가 될 때도 있지요-
네티즌이란 말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네티즌이 피디 수첩을 공박했다- MBC 뉴스에도 광고 취소를 요구했다-라는 기사 제목을 ‘황우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바꾸면, 그리 화도 나지 않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아, 실은 그렇게 생각했더니, 정말 이해가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