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어느새 35년쯤 되어갑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제가 중견 작가 -_-인 것은 아니고, 다만 우연하게 장롱에서 발견한 아버지의 펜탁스MX를 보고, 집 앞의 후지칼라에서 사진 잘찍는 법이라고 씌여진 조그만 팜플렛을 스승 삼아 사진를 찍는 재미에 발을 들여다 놓게 된 것이죠. -_-;;;
음, 좀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제가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던 카메라는 국민학교 6학년 시절, 그러니까 85년에 선물로 받은 삼성카메라 ‘윙키’라는 물건이었습니다. 음, 기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꽤나 재미있었어요. 그 구조는 요즘의 토이 카메라에 버금가는 물건이었지만,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찍는다-라는 맛을 알게해 준 물건이었지요(덕분에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모습을 저는 거의 다 기억합니다.).
하지만 펜탁스MX는 자동 카메라 와는 전혀 다른 맛이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뭐라고 해야할까요- 이때는 아웃포커싱이니 뭐니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그저 광량이 충분하게 찍는다-라는 것만 조심하면서 다녔던 시절이었지만, ‘무엇’을 찍으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 카메라였답니다.
프라모델 로봇(아마, 은하표류 바이팜 시리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을 앞에 놓고 뒤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조그맣게 보이는, 원근감을 이용한 트릭 -_-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카셋트 테잎의 테이프를 풀어서 막킹보드와 함께 접시에 담는, 뭔가 아트한? -_-;;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멀쩡한 백조 인형에 노끈을 칭칭감아서 사진을 찍고는 ‘What is love?’라는 유치찬란한 제목 -_-을 달아주기도 했었습니다. .. (물론, 지금 보면 왠지 SM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ㅡ_-)/~
그리고는 셀프 사진을 찍었습니다. ^^
일기를 쓰듯이, 지금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 그게 벌써 35년전의 일이 되었군요.
저 사진에 나오는 카메라는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낡고 관리가 안되서 흉해 보이기는 하지만, 2년전까지 분명히 사진이 찍히던 물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에 달려있던 50.4 렌즈는 지금도 제 펜탁스 ist-ds에 물려서 쓰고는 합니다. 먼지와 곰팡이가 많아서 절대 사진이 쨍-하게는 안나오지만, 그래도 특유의 낡은 맛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실은 저 렌즈 때문에 DSLR도 펜탁스를 사게 되었습니다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진을 찍습니다. 먹고 살기에는 도움이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은, 아직은 내가 급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음을, 천천히 주위를 돌아다보며, 내가 사는 거리를 탐험하듯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 예,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내일도 변함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