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8월 15일 거기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 사망한 동료의 시신을 발견한 한 병사는 발견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하였다.“나무에 기댄 채로 앉아있는 동료를 발견했다. 철모를 옆에 벗어 둔 채 앉아 있어서 나는 그가 피곤하여 잠이 든 줄 알았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보니 그는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발견된 사망자가 무려 13명이었다.

한 병사는 이렇게 회고 하였다.“그들이 왜 죽도록 뛰었을까 ? 맞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낙오하면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동기 병 모두가 빳다를 맞아야(구타를 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공포가 그들을 죽을 때 까지 달리게 한 것이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발견될 당시 이미 부패하고 있었고 사흘 후 그들의 영결식이 이어졌다. 영결식 날은 하늘도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여 비를 뿌렸다. 분노한 유족들은 “내 자식을 살려내라 !” 

며 통곡하며 혼절을 거듭했지만 이 사건은 전혀 외부로 알려지지 조차 않았다.

원문보기 : http://blog.ohmynews.com/phosarang/129294

79년 8월 15일, 원래 쉬는 날이었지만, 한 사단장의 취임 기념으로 400명의 부대원들이 군장 10km 구보를 했다. 그 가운데 13명이 사망했다. 그 사단장은 나중에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제5공화국을 만든 주범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광주에 공수부대를 보내 시민들을 사살할 것을 지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몸서리쳐질만큼 끔찍한, 폭력의 시대.
제발,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에 침묵했던 사람들이, 그 시대에 ‘동의’했다고 말하지 마라. 그들이 그 시대를 ‘그리워’한다고 말하지 마라. 나쁜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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