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다시 글로 쓰겠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의 편린만 몇가지 정리해 둡니다.
○ 진보의 핵심은 관용(똘레랑스)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여러가지 핵심이 있을 수 있지만, 관용은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태도 중의 하나, 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보통은 생산력을 우선시 할 것인가 삶의 질을 우선시 할 것인가, 인권을 우선시 할 것인가 효율성을 우선시 할 것인가,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인가 다수의 편의를 우선시 할 것인가, 이런 여러가지 관점에 따라 진보라 불릴 수 있는 것이지, 관용을 핵심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관용은 진보/보수 모두가 갖춰야할 태도입니다.
○ 조선일보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것이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조중동을 보지 말자는 것은 단순히 조선일보가 우리한테 나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안된다, 라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실질적인 한국 사회의 지배 세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 개인적으로 가끔 조선일보를 보다가 느끼는 것은, 이 건 상당히 위험하지 않나-라는 생각입니다. 언론이 언론으로서 기능한다기 보다는 어떨때는 선전 선동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 나쁜 환경에 계속 노출되면, 싫든 좋든 영향을 받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상식일텐데요? 인간의 견해나 주장은 ‘자기 혼자만의 단독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주변의 생각과 이야기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에 있어서 제대로 고민하여 좋고 싫고를 결정하기 보다는, 주변의 의견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견해를 택하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삶을 살아가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니까요.
○ 정보나 기사의 질이 조중동이 더 나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질적으로 꽤 큰 차이가 벌어진다,라고 할만하진 않습니다. 사실 몇몇 섹션을 제외하면 거기서 거기인 것이 사실입니다. 기획기사의 질은 예년에 비해서 많이 떨어졌고요(사실 이런 면에서는 훨씬 열악한 상황에 있는 시사저널의 기사들이 낫습니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가 등장한 다음에 조선일보의 논조가 그들을 따라서 바뀌었다, 라는 주장도 있는데 별로 설득력이 있진 않습니다. 당장 오마이뉴스의 등장과 한겨레 신문의 창간이 10년 가까운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70년대 80년대 기사만 봐도 조선을 충분히 선동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신경질적이진 않았지요. 🙂
○ 개인적으로 조선일보 반대 운동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최소한 그 운동의 결과로 ‘조중동’이 절대 진리인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고, 그들의 영향력도 (여전히 막강하긴 하지만) 여러 신문 가운데 힘이 쎈 신문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불러온 것만 해도 큰 결과입니다. 그들을 절대악- 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불릴만큼의 악행-을 하는 역할을 현대사에서 해 온 것도 사실이구요. 이런 역사적인 인식 없이 이건 다양한 의견의 하나고 정보 질도 좋으니 읽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라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시각이 아닐까요?
○ 마지막으로, 조중동을 보든 말든 그것은 분명히 개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개인의 결정에 주제넘게 간섭하려고 한다면 그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잘못된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문제지 그 운동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성원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조중동을 보지말자는 운동은 그들을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행세하고있는 권력에 대한 싸움입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