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전 이글루스 최대 떡밥중 하나였던 문중 사건, 그 사건을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개인이 어떤 사건을 당했을 경우, 그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뭔가 문제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나, 언론에서 이런 일들을 별로 비춰주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서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노동법 넣어야 한다니까요.)
예를 들어, 지난 문중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했다면, 먼저 경찰을 찾아가거나 성폭력 상담소를 찾아가서 상담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아는 오빠들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했고… 결국 아직까지 서로를 블로그 글로 고발하거나 고소 크리를 날리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죠.
이번 사건의 경우도, 희주님이 블로그 칵테일의 해고 통보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왜 먼저 관할 노동청에 문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블로그에 (개인이 당한) 부당한 사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결국 “여론 재판”을 하고자 하는 성격을 가집니다. 하지만 여론 재판은 “법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나 “여론을 만들어서 해결절차로 상대방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이지, 그냥 나 억울하다- 정도의 호소는 대부분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사건의 쌍방 당사자 모두, 상당히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만 합니다. 물론, 이것도 성공리에 여론화되었을 경우의 일이지만…
2. 얼마전에 읽었던 「세상을 바꾼 서른 두개의 통찰」에서 대부분의 벤처 기업가들이 똑같이 얘기하는 것이 두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소송에는 가급적 걸리지 말라, 다른 하나는 첫번째도, 두번째도, 세번째도 사람이다-라는 것. 그들이 그렇게 강조한 이유는, 사람 하나 때문에 조직이 성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을 분명히 봐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뽑는 것은 굉장히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어떤 면에선 철저히 조직을 위해서 다뤄져야만 합니다.
“하늘이님의 공개 사과문“에도 나와있지만,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감성적인 자세가, 조직이라는 시스템의 운영에서는 “방만함”이나 생각지도 못했던 함정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결국 “기업”에 가족이란 것은 환상입니다. … 특히 묘하게 가족이데올로기가 강하고, 그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로 되어있는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로 올블로그가 망할 것이다, 또는 망해라-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결국 올블로그는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재밌는 읽을거리를 찾을 수 있는 기능을 보여주는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블로그로 더 많은 독자들이 유입되도록 도와주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 많은 소통과 관계맺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블로그가 살아남고 못하고는 오직, 올블로그의 실력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3. 이건 잠깐 딴소리.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뭐든지 해도된다-라는 의견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음. 뭐든지 해도 된다는 기업이 아니라 깡패라는 소리고… 기업이 “왜 돈을 벌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거세된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살까요? … 기본적으로, 그것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기 때문입니다.
4. 고소 크리 날리라고 선전선동하시는 분들…은 이제 안계시겠죠? 희주님 자신이 안한다고 했으니까. 그렇지만, “고소고발도 가능합니다. 생각해보세요.”라는 말과, 대신 “노동청에 고발해 버렸음. 잘했지?”하는 말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대신 고발하신 분에게 하고픈 말은… “낄데 안낄데는 좀 구분하고 처신하시길”
무엇보다, 이 사건의 경우, 실질적으로 고소고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은, 채용 통보후 취소했을 경우의 판례에 대한 정보(관련링크_노무관련 자료실)를 가지고 충분히 고소고발 가능하다-라고 말하시는 것 같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희주님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봤음을 입증하거나, 명백한 피해를 끼쳤다고 법원이 판단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개인적으론 고용 관계 자체가 성사될 지가 조금 의문입니다.) 채용을 통보하고 취소하기까지 걸린 시간동안, 희주님이 받은 명백한 피해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 비용은 얼마정도가 될까요? 그 비용이 과연 변호사를 고용해서 민사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들어갈 유형/무형의 비용을 감안해도 괜찮을 정도의 비용이 될까요?
소송이 시작된 다음 응원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소송 관련해서 조언을 해주는 것도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소송비용 한푼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소송걸어서 피해보상 받아내라-라고 선동하는 것은, 정도에 지나친 일입니다.
…무엇보다, 무슨 일이 생기든 “법에 기대 의지하려는” 자세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운하 건설은 합당하다고 법원에서 판결내리면 그대로 따를 건가요? 솔직히 전 많은 분들의 이 자세가 제일 의문이었습니다.
5. 어떤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왜 이런 공격이 발생했을까? 라는 질문에-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문제여서 그럴거다-라는 이야기를. 예, 동의합니다. 예전 글에서 몇몇 분들이 지적해주셨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정치학자라면, 정치적 효용성의 잣대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말 그대로,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는 해석.
…뭐, 알고보면 이제껏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이런 일들에, 블로그가 있었기에 이 정도의 이슈라도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접하게될 다른 기업들도, 조금은 더 채용 문제에 신경을 쏟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상기시켜준 것이 있다면, “계약서를 작성하기 이전엔, 아무 것도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뻔한 진실. 이건 우리가 사회가 점점 불확실과 불신의 사회로 나가고 있다는 반증이고…
6.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대충 (개인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 가급적 사회적 시스템에서 제공해주는 “기관”들을 제대로 활용하자. 공적으로 대응하자.
- 앞에도 썼지만, 계약서를 작성하기 이전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아니다.
-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인사 관리는 아무리 신경을 써도 나쁘지 않다.
- 리스크 보다는 리스크에 대처하는 자세가 그 사람의 깊이를 가늠하게 만든다.
-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해도 좋지만, 그들을 믿거나 도와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자.
- 죽었다 깨어나도 내 앞가림은 결국 내가 해야하는 것.
- 내가 했다고 다 내 말이 아니다. 내 손을 떠난 글이 어떤 파도를 만나 어떻게 커질지 모른다. 조심, 또 조심.
7. 그렇지만 대체 무엇이 남았을까요. 블로그 논쟁에서 잠깐 사이에 결론을 기대하는 것은 우습지만… 솔직히 이 건에서 희주님이 처음 원했던 것은 “채용 취소에 대한 사과”라기 보단 “채용 취소 철회” 쪽이었겠지만… 그건 블로그에 글 올리는 시점에서 이미 물건너간 일이고… 올블로그는 이제 하루라도 빨리 조회수 문제에 대한 시스템적 오류를 해결해야 할 듯하지만…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하겠지만… 그게 그리 쉽게 잡힐 문제였으면 지금까지 질질 끌지도 않았을테고… (예비)노동자의 입장에서, 채용 취소 통보를 당한 분에게 힘을 드리고 싶지만… 뭔가 껄끄러워 편들기도 애매하고… 보다 지혜로운 해결책이 모색됐어야 했겠지만… 역시 공격이 발동된 이상 그건 물건너간 일이고… 희주님은 사과를 받고, 서로 오해를 풀었다고 했지만… 앞으로 평판 조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숙제가 남았고… (이건 결국 실력으로 말할 수 밖에 없는 문제지만..)
결국 사람들은 내일이면 다른 일에 신경을 쓸거고, 이 일은 잊혀질거고… 하지만 개인에겐 싫든 좋든 계속 꼬리표처럼 이번 사건이 따라다니고 말테니 말입니다… 왠지 제 머릿속도 조금, 혼란스러운 느낌. 한편으론, 우리에게 정말 공동체가 붕괴됐긴 붕괴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씁쓸. 희주님과 블로그 칵테일 모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먼저 물어볼 사람이 정말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