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e스포츠 대회는 언제 열렸을까?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붐을 이뤘던 2000년 언저리가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이 컴퓨터 게임으로 실력을 겨룬 건 생각보다 오래됐다. 1972년 10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우주전쟁! (Spacewar!) 올림픽’ 이 시초다.
개인용 컴퓨터도 없던 시절, 컴퓨터 마니아 20여 명이 모여 열린 이 대회는, 잡지 롤링스톤에 기사가 실리면서 알려졌다. 이때만 해도 디지털 게임이 스포츠가 되고, 2021년 기준 시장 규모 약 11억 달러에 시청자만 7억 명이 넘는 산업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80년대엔 미국과 일본에서 게임 대회 붐이 일기도 했다. 아케이드 게임장(오락실)이 인기를 얻고 가정용 게임기가 많이 팔리던 시절이다. 1980년 개최된 아타리 스페이스 인베이더 대회에는 최초로 1만 명 이상의 게이머가 참가했다. 82년부터 84년까지 방영된 ’스타케이드(Starcade)’는 게임으로 경쟁하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차츰 성장하던 디지털 게임 스포츠는, 1990년대 들어와 꼴을 갖추게 된다. 1991년 등장한 ‘스트리트파이터 2’는 대전 격투 게임 열풍을 불러왔고, ‘닌텐도 월드 챔피언십’이나 ‘블록버스터 비디오 월드 게임 챔피언십’ 같은 상업적 세계 비디오 게임 대회가 열렸다.
90년대 말에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에 맞춰 인터넷으로 대전하는 퀘이크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FPS 게임이나 워크래프트 같은 RTS 게임 장르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최초의 게임 리그 PGL(Professional Gamers League, 1997)과 CPL(Cyber athletic Professional League, 1997). 최초의 프로게이머 데니스 퐁이 등장한 건 덤이다.
한국, e스포츠를 시작하다
처음부터 디지털 게임을 겨루는 대회는 존재했지만, 스포츠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많은 게이머는 게임 대회를, 그저 게임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상업 이벤트로 여겼다. 실제로 그런 대회가 열린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90년대에는 게임 대회를 보려면, 그 게임 대회에 직접 참가하거나, 아니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나 DVD를 사거나 빌려서 봐야 했다.
반전은 90년대 후반, IMF 위기에 처한 한국에서 일어났다. 정보통신 사회로의 전환을 위기 탈출 기회로 여겼던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관련 사업을 장려했다. 피시방 같은 쉽게 쓸 수 있는 인터넷 인프라가 전국에 깔렸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e스포츠란 말이 처음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소규모 게임 대회도 많아졌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1999년에 프로리그와 한국e스포츠협회(당시 21세기프로게임협회)가 만들어졌다. 프로게임단도 이때 생겼다. e스포츠 전문 방송국인 온게임넷과 MBC 게임도 개국했다. 2004년 부산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결승전에선 10만 관중이 모여 게임을 즐겼다.
* 여담이지만, 이때 해외 게이머들은 e스포츠란 단어를 들으면 꽤 비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에 뭐든 ‘e’를 붙이며 인터넷이 되는 제품이란 걸 강조하던 시절이었다. 해외 게이머들은 한국이 스포츠도 아닌 걸 스포츠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가 e스포츠 역사에선 중요하게 다뤄진다. e스포츠란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게임 제작사가 아닌 제삼자가 게임 방송을 시작했고, 그걸 수십만 명이 보고 이야기하며 팬이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게임 대회가 그저 게임 판매 이벤트가 아니라, 광고주들이 투자할 만한, 게이머들만의 잔치가 아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속속 대형 게임 대회가 열렸고, 게임 제작사가 직접 게임 리그를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전문 프로 게임 리그와 협회, 게임 전문 방송국 및 e스포츠 중계가 성장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트위치 같은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류가 되고 있다. 네트워크 속도가 빨라지면서 동영상 콘텐츠가 성장한 탓이다.
메타버스 시대의 e스포츠, 어떻게 바뀔까?
실시간 스트리밍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는 방법을 크게 바꿔놨다. 심지어 스트리머의 숫자가 게임의 인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e스포츠는 정식 스포츠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부가 행사로 e스포츠 대회가 열렸고,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정식 종목으로 편입됐다. 2021년 IOC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상 올림픽 시리즈’가 도쿄 올림픽 사전 행사로 열리기도 했다.
앞으로 e스포츠는 어떻게 성장할까? Newzoo에선 2022년 e스포츠 트렌드로 블록체인과 NFT 같은 참가자 보상 프로그램 채택, 5G 네트워크로 강화되는 모바일 e스포츠 시장, 경계가 흐려지는 전통 스포츠와 e스포츠, 개방되는 스트리밍 게임 중계, 더 인터랙티브해진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등을 들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흐려지는 전통 스포츠와 e스포츠의 경계’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게임 대회 흐름이 바로 ‘가상 스포츠’라서 그렇다. 코로나로 실제 대회 개최가 막히자, 주요 스포츠 이벤트 주관사는 ‘F1 e스포츠 가상 그랑프리’, ‘#StayAtHome MotoGP™’, ‘아이언맨 VR 프로 챌린지’, ‘가상 투르 드 플랑드르’ 같은 가상 이벤트를 열었다. 일본에서 만든 Hado는 아예 AR 기술을 응용한 새로운 스포츠다.
코로나19 덕분에(?), 현실과 가상이 함께 쓰이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e스포츠도 이제 다른 단계로 올라갈 시간이 됐다. 기존 게임 대회가 변할 거라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기존 e스포츠 대회는 인기 있을 것이며, 당분간 핵심 종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요 매출이 특정 게임과 스폰서쉽에서 발생하는 지금 상태에선, 분명히 한계가 있다. 짧은 선수 수명도 문제다. 몇몇 게임이 폭력성과 사행성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스포츠 입장에선 용납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더 스트리밍하기 좋고 중계하기 좋은 e스포츠 게임이 나와야 한다. 가족이 함께 즐기고 응원할 수 있는 e스포츠가 되어야 한다. 최근 KT와 픽셀스코프가 제휴해 5G 기반 AI 무인 스포츠 방송중계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처럼, 거꾸로 기존 스포츠를 디지털 전환해 e스포츠에 가깝게 만들 수도 있다. 미래에는 홀로포테이션 기술을 적용해 떨어져 있어도 함께 게임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아마, e스포츠와 스포츠의 경계는 이미 사라지지 않았을까?
- KT 엔터프라이즈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