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이 영화 재미있다며 보라고 권합니다. 놉(Nope)이라는 영화입니다. 찾아보니 공포 영화라서, 공포 영화 안 본다고 했더니 UFO 영화라고 합니다. 사람이 UFO랑 싸워서 이기는 영화라고. 너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봤습니다. 결론은…. UFO(?) 영화이긴 한데,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너 잠깐 이리와 나랑 얘기 좀 하자.
▲ 영화를 이끌어가는 세 사람, OJ, 엔젤, 에메랄드
왜 잘 봐 놓고 화를 내는 걸까요?
친구가 한 말이 참이면서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짜증나죠. ㅎㅎㅎ. 스포일러라서 말할 수는 없고요.
친구만 속인 건 아닙니다. 영화도 잘 속이네요. 인트로에 뭔가 등장하기에 무슨 중요한 내용인가? 했더니, 유니버설 로고 뜨고, 제작사 로고 뜨길래 아 요즘은 특이하게 자기소개 영상 만드네- 그랬다가, 보다 보니 그게 진짜 사건…
뭘 속였을까요? 일단 장르입니다.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눠서 진행되는데요. 서스펜스 코미디 드라마 같은 초반, 공포 스릴러 느낌 나는 중반, 괴수 액션 영화 같은 후반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 장르가 SF 서스펜스 코미디 호러 액션 영화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공포가 빠지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공포 영화라고 하기엔 좀 밋밋합니다. 실제로도 저는 괴수 액션 영화… 쥬라기 공원에 가까운 즐거움을 맛봤거든요. 호러가 아니라고 하기엔, 공식적으로 호러 영화구요. (솔직히 크게 무섭다거나 고어한 부분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저는 공포 영화라고 생각하고 쫄면서 봤던 건 사실입니다. 아, 중반 쯤에 깜짝 놀란 부분이 하나 있긴 합니다. 초반에 코미디나 뭐가 좀 빵빵 터지지 않아서 지루한 부분이 있는데, 알고 보면 집중해서 봐야 하는 부분이라… 이것도 이해는 합니다.
▲ 가장 심약해 보였으나 가장 강철 멘탈이었던 OJ
또 뭘 속였을까요? UFO 입니다. 왜 제가 좋아할 거라고 한 건지도 알겠습니다. 괴수물 로봇물 뭐 이런 큰 거 나오는 영화 좋아하니까요. 그렇지만 그 UFO가 그 UFO가 아니고 그 괴수나 그 로봇이 영화에 나오는 UFO가 아닐 뿐.
…다 보고 나니, 친구가 한 말, UFO(?)랑 사람이 싸워서 이기는 영화-라는 걸 이해하게 되어서 문제입니다만.
재미있는 건, 보고 나서 엔딩이 잘 이해가 안 돼서 다른 사람 리뷰를 검색하게 됐는데, 검색하고 나니 또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는 겁니다. 다시 보기 서비스로 봤을 때 좋은 점이죠. 몇 번을 다시 봐도 이득이란 느낌이 드니(…).
영화 보고 궁금증이 생겨 다시 보게 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이긴 한데요. 리뷰 보고 나니 궁금증이 배로 늘었습니다. 이거 의외로 복잡한 구석을 많이 숨긴 영화였더라고요(전 조던 필 감독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공포 영화 안 봅니다.).
▲ 놉의 진 주인공 에메랄드
예를 들어 감독은, 이 영화를 스펙터클에 대한 영화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정말 그래 싶은데, 본 사람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우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가 스펙터클을 소비할 때 그 스펙터클도 우리를 먹이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 영화는 그런 스펙터클을 제공하면서, 그 스펙터클을 소비하려는 사람을 비판하고 있지만.
기왕 스펙터클을 제공할 거, 어디 저기 황량한 말 농장 말고 도심 한가운데 등장하거나, UFO랑 군대랑 대치하고 그러면 재밌을 거 같은데, 그럼 마이클 베이 영화가 됐겠죠. 사실 UFO 입장에서도 도시는 위험합니다. 소화 시키지 못할 것 투성이니까요. 다시 보면서 내가 작은 건프라를 하나 삼켰다면 얼마나 괴로웠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끔찍하더군요. UFO 심정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 그런데, 왜 자꾸 UFO가 뭐를 먹는다고 얘기하냐고요? 그게- 그렇습니다. 여기 나오는 UFO 특징이 그래요. 우리가 아는 그 UFO가 아니라서, 아무 정보도 없었던 저는 정말…. 뒤통수를 한 대 맞았습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했는데, 조던 필 감독이 원래 그런 감독이래요.
▲ 이 안에 감독과 주연 배우들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이런저런 해석이 많은데, 저는 현대판 오즈의 마법사-라고 생각합니다. 돌풍에 휘말려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가 갖은 모험을 하고, 도로 캔자스로 돌아오는 오즈의 마법사 말이죠. 놉에선 아버지에게 상처 받아 말 목장을 떠났던 여자 주인공(키키 파머, 에메랄드 헤이우드 역)이, UFO를 발견하고 갖은 고생을 한 끝에 물리치고, 가족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요(Nobody fucks with Haywood, bitch!). 아예 오즈의 마법사를 모티브로 삼은 장면이나 대사도 많았고요.
물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시 보면 또 다른 게 보일 거예요. 조던 필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아무튼, 평소에 안 보던 스타일 영화를 보니 신선하기도 하고, 아 영화가 원래 이런 맛도 있었지-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마지막 부분 해석은, 따로 글 하나 쓰고 싶을 정도로요.
아무튼 재밌습니다.
요즘 영화 다 매너리즘에 빠졌다, 뭐 신선한 거 없을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문제는 다시 봐도 괴수 영화 같긴 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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