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진보는,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까-

Oerlikon Contraves GDF-001/009

작년 10월 18일, 와이어드의 보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에서 <Oerlikon GDF-005>라는 ‘대공포 로봇’이 작동 이상을 일으켜, 9명의 군인이 숨지고 14명의 군인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을 일으킨 로봇은 대공 요격용 로봇으로, 몇분동안 35mm 탄환 수백발을 난사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일은 이번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몇년전 XM151이라는 로봇 장갑차가 기관총을 난사한 사건도 있었다. 로봇 병기는 이미 상당부분 실용화되어 있으며, 미 국방성이 주최한 “DARPATech 2007‘에서는 다양한 살상용 로봇이 선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청소용 로봇 ROOMBA를 개발한 회사에서도 살상용 로봇(Kill-Bot)을 선보였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 SF 소설에서나 꿈꿨던 로봇 전쟁의 시대에 이미 돌입해 있는 지도 모른다.

이들은 분명, 아군의 인명 피해를 줄이고 적군의 생명을 효율적으로 빼앗기 위해 만들어졌다. 살상용 로봇의 존재 자체에 대한 비윤리성은 나중에 따져보기로 하자(사람을 로봇이 죽인다고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살상용 로봇에 장착된 기술에도 “오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이 “오류 가능성”은 계속 늘어나며,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NASA가 우주정거장에서 386 컴퓨터를 쓰는 것은 그들이 멍청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류가능성이 많아질수록, 기술은 가급적 충분히, 그리고 천천히 검토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기술은 충분한 검증 없이도 너무 손쉽게 산업에 쓰여진다. 뭐, 가전제품들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살상용 무기를 비롯한, 오작동시 수많은 생명을 뺏을 수 있는 기기들에도 너무 손쉽게 사용된다. … 뭐, 일반적으로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고, 가끔 발생하는 오류에 몇명이 죽는거야 어떻게 하겠는가-하는 사람들에겐 할 말이 없지만.

오류가 없는 기술적 진보라도, 꼭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진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감시 기술, 생체 기술같은 것들. 분명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연구되었겠지만, 연구 의도대로 기술이 사용되진 않는다. 아래 링크는 미국의 모닝쑈에 소개됐던 ‘자녀 감시 기술’ 동영상이다.

자녀 컴퓨터의 키보드를 해킹해 어떤 채팅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몰래 자녀들 핸드폰의 USIM 카드를 분석해 어떤 메세지를 보냈는지 분석(지운 메세지까지!!)하고, GPS를 몰래 아이들의 가방에 넣어 자녀의 위치를 추적하고, 마지막으로 침대에 시약을 한방울 떨어트려 딴 놈이 -_-;; 함께 누워있지는 않았는지 체크한다. … 뭔가 아이들의 비행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처럼 보이지만, 이 정도로 자녀를 감시하고 싶은 부모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과 상담을 먼저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자녀를 감시하고 싶은 사람이… 또는 연인이나 부하 직원을 감시하고 싶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상상하지도 않았을 일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감시와 통제의 욕망”을 부추기며 나타난다. 서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이, 어떤 윤리적 토론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상품이 되어 팔려간다. … 대체 어떻게 봐야만 할까.

실은,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아니, 이미 만연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생각없는 사회, 토론과 논쟁이 거세된 사회, 사회적 합의를 원하지 않는 사회 … 돈이면 다 된다고 말하는 사회라면, 뻔하고도 뻔한 일이다. 위 동영상에 소개된 제품들로 인해 생길 일들을 가상으로 한번 살펴볼까?

  • 올해부터 락이 해제된 USIM 카드가 휴대폰에 꼽힌다고 한다. 저 해독기를 수입해서, 한글화를 거쳐 파는 업체가 생길 것이다.
  • 부하직원의 컴퓨터에 키보드 스파이 장치를 달아놓는 사장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 침대에 시약 한방울 떨어트리고 어떤 놈이랑 잤냐고 묻는 연인이 생길 것이다.
  • 남편에게 선물하는 핸드폰 고리에 GPS를 달아놓는 아내가 생길지도 모르고…

…자, 이런데도, 과연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분명 꼭!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은 아니며, 인간의 욕구와 편의를 해결해 준다고 해서 좋은 기술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 그러니까 결론은, 그러니까, 이 나라에 더 필요한 것은 “당선자 말한마디에 전봇대를 뽑아버리는” 효율성이 아니라, 더 많이 논쟁하고 토론하는 문화라는 거다. 생각이 거세된 발전은, 철학이 없는 경제 성장이 우리에게 돌려줄 것은, 끔찍한 미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조금 딴 소리인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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