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 : 디지털 음악이 가져다준 새로운 경험

* 이 글은 지난 2006년(…) 대학원 문화지형연구 수업 레포트로 제출된 글입니다. 자료를 찾다가 발견해, 잊기 전에 백업해 놓습니다.

1.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스타벅스의 풍경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주위를 둘러본다. 비가 오는 저녁, 스타벅스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재잘거리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멍하니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앉아있는 남자, 건너편 의자에 발을 올리고 책을 읽고 있는 여자. 창밖으로 우산을 쓰고 바삐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른한 음악 소리가 귓가에 퍼진다. 다시 한번 커피를 입에 머금는다. 나른한 음악과 커피의 쓴맛이 함께 느껴진다. 무엇인가, 알 듯 말 듯 한 기억이 되살아날 듯하다. 순간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몸을 떨기 시작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을 뽑고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음악이 사라지자 수다스러운 사람들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내게 몰려든다. 나만의 세계는 그렇게 사라진다.

‘디지털 음악’ 문제가 ‘듣는 사람’ 입장에서 제기된 적이 없다

음악은 우리 감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감정을 증폭하거나 전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개인용 오디오 기기들은 음악을 통해 개인에게 미화된 경험, 일종의 가상 현실을 제공한다. 그 작은 기계들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을 어느 정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왜 거리에서 음악을 듣고, 일상생활에서 배경 음악을 깔고,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디지털 시대는 그런 문화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바뀌고 있는 문화는 다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어쩌면 쓸데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누군가는 음악을 만들고, 누군가는 음악을 듣는다. 잘 들을 수만 있으면 됐지, 아날로그이든 디지털이든 무슨 상관이랴. 음악이란 원래 시간을 담는 예술이라서, 매체가 어떤 것이든 큰 상관이 없다.

그동안 제기되었던 CD를 MP3 파일로 만드는 것의 적법성, 디지털 음악과 아날로그 음악의 음질 비교, 무료로 음악 파일을 공유했던 소리바다 프로그램, 인터넷 음악 듣기 사이트인 벅스 문제, 음반 시장의 몰락과 디지털 음원의 수익 배분 문제 등은 모두 “듣는 사람”들과는 크게 상관없는 “만들고 파는 사람들”의 문제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디지털 음악’의 문제는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제기된 적이 거의 없다. 음악을 듣는 개개인은 기획서나 시장예측 보고서의 숫자 1에 불과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디지털 음악 듣기’라는 행위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는 한 번쯤 짚어볼 만하지 않을까?

이 글은 그런 의문에 대한 짧은 고민을 적은 글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 음악 듣기’라는 문화를 통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슬쩍 엿보고자 한다.

2. 듣는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풍경과 음악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거나, 마음이 먹먹해져 어쩔 줄 모르던 기억이. 한 친구는 그런 경험을 “음악이 눈물이 되어 흘러가는 것이 보”이는 것이라 말하고, 다른 한 친구는 “심해 깊은 곳까지 꺼져 들었다가 떠오르는 느낌”이라고도 한다.

음악이 어째서 사람에게 이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일까? 네틀(Nettl, 1975)은 애당초 음악이 원시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처음에는 음악과 언어의 구별이 없었으며, 소리를 통해 의사소통해오다 차츰 언어와 음악으로 구별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구조적이며 시간에 의한 예술이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순간, 사람에게 어떤 반응을 끌어내게 된다. 음악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간의 감각은 생각 이상으로 잘 분리되지 않는다. 음악은 보통 인간의 시각, 촉각, 그리고 운동감각을 자극한다고 알려져 있다.

몸은 음악에 반응한다

음악을 듣는 경험은 먼저 몸의 반응을 불러온다. 음악을 들으면 혈압, 맥박수, 호흡, 피부 반응, 뇌파, 그리고 근육 반응 등이 변한다. 이런 신체의 변화와 변화를 가져오는 요소들에 관한 연구는 지난 수십 년간 지속해서 연구됐다(음악 치료학, 최병철, 학지사, 1999, p68).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음악이 사람의 생리적인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일정한 형태의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는다.하러와 하러(G. Harrer & H. Harrer, 1977)는 이에 대해 “음악에 대한 자율신경 반응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어서 개인마다, 나이, 성별, 몸의 컨디션, 심리적 상태 등에 따라 달리 나타나게 되며 특별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대한 개인별 선호도나 취향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같은 책, p70)”고 설명한다.

실제 음악을 느끼는 두뇌 감각은 림빅 시스템(시상하부, 뇌하수체, 해마상융기, 편도성과 기본 신경절을 포함하는 뇌의 부분. 지각 정보가 대뇌 신피질에 연결되기 이전에 이 림빅 구조를 거치게 된다.)과 밀접히 연관된다. 림빅 시스템은 정서의 두뇌라고도 할 만큼 사람의 정서 생활을 통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소리와 음악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모든 문화권 속에서 표현되는 음악은 음정, 세기, 음색 등이 선율과 리듬의 구조 속에 조화되어 시간에 의해 나타내어지는 소리의 모임이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어떤 조직된 리듬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 또한 리듬 이외에도 폭넓은 음역, 세기, 음색, 그리고 멜로디를 통해 화성악인 구조로 표현되는 음악은 말을 포함한 다른 소리와 구별된다. 문화적인 구조를 통해 음악이 인간에게 지각되는 경험의 형태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음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음악은 미적 경험이자 표현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음악이 심리적인 면에서 어떻게 사람의 정서적인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는 음악 미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개스턴은 “음악치료”에서 “사람은 미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미적인 경험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을 조절시키는 최고의 장치이다”라고 하였다.

개스턴은 미적인 경험을 궁극적으로 창의적 활동을 위한 사람의 신체 생리적인 필요이며, 주변 환경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기능으로 보았다. 음악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음악을 통해 어떤 정서가 자극되면, 사람의 마음은 그 정서에 연결된 여러 가지 것들을 한꺼번에 기억해 내는 것이다.

사람은 음악을 통해 이야기한다.

동시에 음악은 구조적으로 잘 짜인 현실이다. 우리는 자신의 문화적 기반을 통해 음악에 반응한다. 결혼 행진곡을 들으며 결혼식을 떠올리는 것은, 교가를 함께 부르며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것은, 민중가요를 부르며 투쟁의 의지를 함께 다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은 음악을 통해 이야기한다. 음악을 통해 소통하기도 하며, 음악을 위해 소통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음악을 부름으로써 순식간에 하나의 집단으로 뭉칠 수도 있지만, 최영미의 詩(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中)처럼 개인을 집단에서 분리해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메리엄(A. P. Merrian, 1964)은 음악적인 행동이란 사람과 내면,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즉, 사회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음악이 가치를 나타내거나 그 시대나 세대가 지닌 심리적인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계속 됩니다. (레포트 1, 2장 끝났고 4~6장이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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