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해 들어가는 가상 현실 : 디지털 음악이 가져다준 새로운 경험 ②

* 지난 2006년(…) 대학원 문화지형연구 수업 레포트로 제출된 글, 두 번째입니다. 자료를 찾다가 발견해, 잊기 전에 백업해 놓습니다.

3. 음악을 통해 들어가는 가상 현실

지금 내 눈앞에는 작은 기계가 한 대 놓여있다. 흰색의 네모난 몸체에 까만 액정을 가지고 있다. 가만히 손으로 집어본다. 작고 가볍다. 신용카드 절반 정도의 크기다. 아이리버라는 회사에서 나온 U10이란 이름의 MP3 플레이어다. 용량은 2G, 대충 500여 곡의 노래를 담을 수가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CD 음반 수십 장 분량의 음악이 이 작은 몸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작은 기계의 친구들이 거리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워크맨이 제공한 개인화된 음악 환경

변화가 시작된 건 1979년이다. 이 해 SONY에서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WALK-MAN)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워크맨 이전의 음악은 모든 예술 장르 가운데 가장 사회적인 성격이 강했었다. 이전의 음악은 ‘어떤 장소’나 ‘의식’을 상징하거나,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음악은 언제나 공통의 체험을 만들어왔다. 사회적 기능의 부분으로서 수용적이든 거부적이든 청중을 어떤 동일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며, 자기 자신의 해석을 부여할 수 있는 음악과 자신을 일체시(Identifies) 하도록 만들었다(태초에 노래가 있었다, 쥴리에트 알빈, 김종해 번역, 오른 출판사, 1980, p139~p141 요약).

하지만 워크맨이 등장한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개인용 오디오 기기들은 우리에게 움직이는 음악 환경을 제공해 줬다. 움직이는 음향 환경은 우리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워크맨의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우리의 청각은 이 세계와 단절된다.

사진: UnsplashJusdevoyage

청각은 가상 현실의 열쇠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청각에는 마음이, 감정이 담긴다. 인간이 감각을 이용하는 비율은 연구자의 연구 결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시각과 청각이 가장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 청각은 일상적으로 세계에 열려있는 감각이다. 우리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귀에는 현실의 온갖 자극이 전달되어 온다. 우리는 그 자극을 인지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청각은 시각과는 달리 ‘보이는 것의 소리(가시 음향)’와 ‘보이지 않는 것의 소리(비가시 음향)’를 모두 잡아낸다. 그래서 청각은 “지금, 바로 여기”라는 현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광고에서 흔히 말하는 ‘시즐 효과(Sizzle effect)’가 바로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라면 광고의 후르륵 하며 먹는 소리, 음식 광고의 지글지글하는 고기 굽는 소리는 바로 가상의 맛봄으로 이어진다. 광고의 배경효과로 깔린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로 시작되는 텅 빈 공간에서 울리는 듯한 아나운서의 멘트를 듣고 공항 로비가 떠오르고, 공항 로비가 떠오르자 예전의 여행 출발할 때의 흥분감이 떠오르고, 그러자 못 견디게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는 식의 고백은 생각보다 많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용 오디오 기기는 현실이 들려주는 구체적인 음향을 삭제한다. 대신 우리가 선택한 음악이 그 자리를 메꾼다. 현실은 거세되고 감정은 살아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개인용 오디오 기기의 특징은 또한 ‘동시 청취’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일이나 공부를 하면서, 휴식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굳이 듣는 것을 멈출 필요가 없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출근길의 지하철에서도, 한밤중의 해변에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잠 못 든 새벽에도, 시끄러운 커피숍의 한복판에서도, 비행기나 배 안에서도.

게다가 청각이 원래 열려있는(수동적인) 감각인 탓에, 음악 역시 여러 예술 가운데 저항감이 가장 적다. 음악을 잘 듣지 않거나, 특정 소리나 특정 장르의 음악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음악 듣는 행위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글쓰기나 책 읽기, 미술 작품 관람이나 스포츠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라.).

불완전했던 개인화된 음악 환경

개인용 오디오 기기들은 이런 청각을 통제할 방법을 제공해 준다. 이제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 하나를 얻게 된다. 하지만 워크맨이나 포터블 카세트 등, 이제까지의 존재했던 아날로그적인 개인화된 음악 환경은 분명한 한계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휴대성의 문제다. 크기로 인해 휴대용이 아예 고려되지 않았던 LP는 제쳐두고라도, CD와 카세트테이프라는 저장 매체가 가지는 크기 때문에 개인용 오디오 기기의 크기 축소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기계들에는 CD와 카세트테이프를 돌리기 위한 구동장치가 내장되어야만 했다.

어느 정도의 크기가 휴대하기에 적당한가라는 질문에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답할 수 있다. 하지만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 크기의 기기들은 항상 가지고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휴대용 기기들을 포기하고 집에서 들을 수 있는 오디오 기기에 더 투자하거나, 큰 가방을 가지고 CDP와 각종 CD를 주렁주렁 가지고 다녀야만 했다.

사진: Unsplashmayte wisniewski

두 번째는 CD와 카세트테이프라는 매체 자체의 문제가 있었다. CD와 카세트테이프는 사람이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제어하는데 손이 많이 간다. 예전에 음악을 들었던 방법을 생각해보자. CD나 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고, 틀고 싶은 음악이 있는 위치를 찾고(테이프는 이 과정도 보통 생략된다. 대신 테이프를 처음으로 감는다.), 튼다. 이걸로 끝이다.

물론 훨씬 간편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서 듣거나, 여러 음악을 살펴서 듣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하나의 매체 안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았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듣고 싶은 CD나 테이프를 잔뜩 싸 들고 다니지 않으면, 그날 들고 나온 하나의 CD나 테이프만 종일 듣고 다녀야 했다. 게다가 CD는 언제 깨지거나 손상이 될지 몰랐고, 테이프는 언제 늘어나거나 자기 때문에 음질이 변할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예전의 개인용 오디오 기기들은 개인화된 음악 환경은 제공해 줬지만, 다른 이들과 음악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에 있어서는 과거의 집안 음악 감상 시절과 차이가 별로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음악을 듣기 위해서 음반 가게와 라디오와 빌보드 차트와 친구들의 이야기에 크게 의존해야만 했다.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은, 좋은 영화를 혼자 볼 때와 비슷한 쓸쓸함이 존재한다. 아무리 좋아해도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인간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하지만 이전까진 그 소통의 기회 자체가 막혀있었다. 음악과 정보는 만드는 이들이 쥐고, 우리는 그저 사서 감상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음악 듣기’ 자체는 개인화되었지만 ‘음악으로 소통’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끝났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면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나르시시즘은 거기에서 끝난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것이다.

4. MP3 파일은 어떻게 유령이 되었는가?

그러다 시대가 변하기 시작했다. 1987년 독일의 프라운호퍼 집적회로 연구소에서는 디지털 오디오 방송을 위한 압축 규격의 연구를 시작했다. 1991년에는 MP1, 2, 3의 규격이 확장되고, 1994년부터 CD에서 MP3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 사람들은 직접 CD에서 MP3를 만들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MP3를 듣고, 만들어진 음악 파일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MP3의 대중화에는 96년부터 시작된 월드와이드웹(WWW, 우리가 지금 인터넷이라고 알고 있는 서비스)이 보급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대표적인 컴퓨터용 MP3 플레이어 프로그램인 WINAMP가 97년에 공개됐고, 음악 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냅스터가 1999년에 공개됐다. 한국은 1999년부터 벤처기업 붐이 불면서 각종 인터넷 기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고, 가정마다 초고속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로 음악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포터블 카세트나 미니 콤포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누가 귀찮게 컴퓨터로 음악을 들어?”가 보편적인 정서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CD를 샀고, MP3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그걸 구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고, 사람들은 짝퉁 음반을 사는 기분으로 MP3로 음악을 구한 다음에 CD로 구워서 오디오에 넣고 들었다.

2000년이 지나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냅스터와 소리바다 프로그램은 MP3를 구하는 것을 쉽게 만들었고,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인터넷은 계속 빨라져서 노래 한 곡을 내려받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음악적 경험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시대는 “누가 귀찮게 CD를 사서 들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변해버렸다. 마샬 맥루한의 말처럼 “인간의 행위…를 형성하고 제어하는 것”은 바로 미디어였다( 미디어의 이해, 마샬 맥루한, 민음사, 2002, p37).

물론 새로운 미디어는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새롭게 등장하는 미디어가 살아남을지 어떨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냉정하다. 필요하면 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린다. 하지만 MP3는 음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악평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MP3를 택했고 그 MP3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편리함에 중독되었다.

그리고 이제 미디어가 사람들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미디어 환경이 다르면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음반 업계는 빠르게 무너져 갔다. 음반 가게는 사라지고 빌보드 차트도, 가요 순위 프로그램도 자취를 감췄다.

디지털 음악이 바꾸는 음악 경험

디지털은 참 많은 음악 경험을 바꿨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 가운데 무엇을 들을까 하고 고르지 않는다. 음악은 외부의 서버에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우리는 듣고 싶은 음악을 검색해서, 간편하게 선택하고(또는 내려받고), 들으면 됐다. 수천 곡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필요한 것들만 골라 듣기도 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친구에게 ‘좋았어’라고 칭찬만 하지 않는다.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서 바로 파일이나 링크를 보내며 들어보라고 한다. 사실 음악의 감동을 어찌 말로 설명하겠는가.

음악을 들을 때는 옛 곡과 신곡이 뒤죽박죽되어서 튀어나온다. 모든 노래는 우리의 의도대로, 친구가 미니 홈피에 설정한 순서대로,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배열한 순서대로 흘러나온다. 검색의 간편성, 수많은 곡이 쌓여있는 인터넷 음악 데이터베이스는 기억 속의 노래를 불러내기 쉽게 만들어준다.

이제 예전처럼 한 앨범을 만들 때 전체 앨범의 흐름과 정서를 고려하면서 앨범을 만드는 음악가들은 거의 없다. 음악 앨범은 사라지고 곡만 남은 시대가 되었지만, 아무도 슬퍼하진 않는다. 음악 CD나 테이프를 고르고, 케이스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고, 플레이어에 집어넣는 ‘의식(儀式)’적인 행동도 사라진다.

처음에는 음악 파일을 컴퓨터에 잔뜩 쌓아놓고 듣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내려받은 파일을 마치 재산처럼 차곡차곡 저장해뒀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다.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쌓여있던 디지털 음악 파일은 포맷 명령 한 번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허무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CD나 DVD로 열심히 백업해 두기도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너무 많은 정보는 없는 것과 같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정보, 그래서 되새겨질 수 없는 정보는 결국 필요한 때에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백업해 둔 CD를 옆에 두고도 새로 검색하고 새로 정보를 찾아서 새로 정보를 내려받는다.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음악 감상자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수없이 많이 늘어서 있는 음악 파일의 숲을 산책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유령이 되어 버린 음악 파일

이제 사람들은 디지털 음악 파일에 별로 미련을 두지 않는다. 굳이 지우지는 않지만 찾지도 않는 정보들은 컴퓨터 안에 자꾸 쌓여가고, 아예 내려받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필요하면 다시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500원을 내면 내려받을 수 있는 음악 한 곡은 내 아이디가 바뀌거나, 이동통신사가 바뀌거나, MP3 플레이어가 바뀌면 다시 쓸 수가 없다. 한 달에 오천 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내려받을 수 있는 음악 파일들은 매달 오천 원씩을 계속 내야지만 생명을 이어갈 수가 있다.

음악 파일은 이제 흘러가다 잠시 머문 유령 같은 존재가 된다. 현대에 들어와 음악이 ‘재생 가능한 상품’이 됨으로써 획득했던 물질성은 이로써 잠시 안녕을 고하게 된다. 너무 많은 음악 파일의 숲을 걷는 동안, 디지털 음악을 내려받아서 경험하고 소모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오히려 음악을 잃어버렸다.

소리바다와 냅스터 같은 P2P 프로그램들은 진보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가장 아날로그적인 디지털 기술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P2P는 그저 아날로그 시대의 불편함을 조금 줄여주는 기술이었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는 잘 발달한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쏟아져 나오는 음악은 오히려 음악을 선택할 기준을 잃어버리게 하고, 음악 사이트의 히트 순위 100 같은 플레이 리스트에 우리의 선택권을 맡겨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음악이 주는 경험”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 계속 됩니다. (레포트 1~4장 끝났고 5~6장이 남았네요.)

아래는 당시 시장 상황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붙였던 간단한 주석입니다.

* 디지털 음악이나 MP3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뜸 저작권 문제나 소리바다, 이통사와의 싸움을 먼저 기억한다. 맞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음반 업계 사람들은 아등바등했다. 그들은 음악 공유 프로그램인 소리바다를 겨냥했다. 음반 업계의 사냥이 시작됐다. 소리바다는 만신창이가 되고 이용자들은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소리바다는 2006년 6월부로 완전 유료 서비스로 전환됨).

집이나 사무실에서만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관심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빠르게 옮겨갔다. 굳이 음악 파일을 내려받지 않아도 충분히 음악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향한 음반 업계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거대 이동통신사들이 음악 콘텐츠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 포털 사이트를 만들고, 자신들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사이트를 이용해서 음악을 듣기를 바랬다. 이들은 시장의 많은 부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음반 업계는 반쯤 고개를 숙였다. 이들과 음반 업계의 싸움은 거의 타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6년 6월 현재, 수익배분율의 문제로 싸움은 다시 시작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죽어버린 음악 시장이 살아난 것은 아니다. 소리바다가 죽어도, 벅스가 죽어도, 유료 음원 다운로드 시장이 형성돼도, 음악 시장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었다. 시장은 여전히 죽어있는 듯 보이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시장 자체의 규모는 예전에 비해서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동통신사가 가져가는 몫이 훨씬 많아졌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논쟁의 한 귀퉁이에서, 사람들이 디지털 음악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 2003년 10월 미국 주피터 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PC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평균 70%가 넘었다. 18~24세의 사람은 93%가 PC로 음악을 들었다. 이들은 절반 가까이가 PC에 담긴 음악 파일을 CD로 구워본 적도, 음악 파일을 모아본 적도, 음악 파일을 P2P 사이트로 구해본 적도 있었다. 다만 MP3P로 옮겨 담는 사람은 8% 안쪽이었다. 이때는 아직 애플의 아이팟이 제대로 보급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2005년 4월까지 아이팟은 천만 개 이상이 판매됐다. 2006년에는 1억 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분간 CD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공짜 파일은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고,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 음악 사이트에서는 특정 저작권 보호 시스템(DRM)을 강요하면서 파일의 ‘보편성’이란 것이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다. 만약 내가 산 음악을 컴퓨터에서도, MP3 플레이어에서도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즐기고 싶다면, 아직은 CD를 사서 직접 MP3 파일을 만드는 것만이 대안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디지털 음악 자체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유령이다. 유령이 아닌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다만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서 디지털 싱글 음악을 몇 개 발표한 다음, 그 음악을 가지고 음악 CD를 발표하는 형태가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About Author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