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 맘대로 인셉션-노말 엔딩설 가설을 지지합니다.
많은 분들이 얘기하셨듯이, 인셉션-은 주인공 코브가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에 대한 영화입니다. 코브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랑하는 아이들과 헤어졌으며, 그것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어렵다는 작전- 인셉션을 실행하기로 합니다.
…어찌보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판 오딧세이아-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1박 2일 정도 머리를 싸매며 ‘이게 뭐야?’, ‘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뇌내 망상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하나 둘이 아니었고, 결국 다시 재관람을 결정. 다시 보다보니,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이 많이 풀리네요…
인셉션, 두번 보고 나서 알게된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꿈은 정확하게 5단계
프로이트 이론에 따르자면, 꿈은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선, 그 꿈을 또 다양한 단계로 나누죠. 그렇지만 림보의 위치가 궁금했습니다. 모든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돌아가는, 무의식의 바닥. 정확하게는 진짜 무의식이 아닌, ‘의식을 가진 상태로 인지할 수 있는 무의식’의 마지막, 그러니까 진짜 ‘꿈의 바닥’이겠지만요.
인지하거나, 알 수 있다면 그것은 결국 무의식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을 설계하는 이유도 어쩌면, 뭐가 일어날지 모르는 무의식 세계를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림보는, 어떤 꿈을 꾸더라도 못깨어나면 그곳으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그곳은 누가 꾸는 꿈도 아니에요. 그래서 처음엔, 설원 기지에서 코브와 아리아드네가 림보로 진입할 때, 둘이 설원 기지에서 자살 -_-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꿈기계-를 이용해서 진입하더군요.
….그렇다면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영화속에서 꿈은 ‘현실’-‘꿈’-‘또 꿈’-‘또또 꿈’-‘림보’의 5단계로 설정되어 있다고요. 그러니 ‘또 또 꿈’에서 꿈 기계를 작동시켰을 때, 림보로 다가갈 수 있었다구요..
2. 코브와 멜은 어떻게 림보에 갈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코브와 멜은 어떻게 해서 림보에 갈 수 있었을까요? 영화속에선 꿈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니 가게 됐다- 정도로만 나오는데…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 속에서 꿈은, 정확히 5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꿈을 꾸는 사람 숫자가 필요한데… 코브와 멜은, 딱 둘이죠.
물론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강력한 진정제- 킥 조차도 먹히지 않을 만큼의 진정제가 작용하는 상황에서, 꿈 속에서 둘이 죽는 것. 코브와 멜은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강력한 진정제를 사용했고- 그로 인해 꿈의 밑바닥, 림보에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또는 그 밑바닥..에 가보고 싶어서 그런 방법을 썼을 지도 모르지요.
…애도 있는 사람들이 말입니다(둘이 뭔가 헤어질만한, 그런 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다만 여전히 남는 의문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꿈은 누구의 꿈이었을까-하는 것. 아마 꿈을 설계할 수 있었던 코브가 꿈을 설계하고 꿈을 꾸고, 그 꿈 속에 멜이 방문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이건 어찌되었건 영화 내용과는 상관없으니 패쓰-
3. 기억은 과거가 아니다
영화속에선 끊임없이, 코브가 멜을 기억의 감옥…에 가둬두려고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걸 목격한 아리아드네는 어이없고 황당해하게 되죠. 현실에선 까탈스러워 보이는 코브가, 실은 마음 속에 컨트롤 할 수 없는 죄책강믈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겨우 가두는 것에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꿈 속에서 멜-에게 당했던 적도 있구요.
영화속에서 코브가 꿈꾸는 것은 언제나 멜 뿐입니다. 멜은 코브가 꿈꿀 때만 그나마 착하게 나옵니다. 그 안에서 코브는 정말, 지하실에서 꿈꾸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께어나기 위해’ 꿈을 꾸지요. 하지만 그 기억은 과거이면서, 과거가 아닙니다. 그리고 코브는, 나중에 다시 림보에 들어갔을 때 알게되지요. 그 기억은 기억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기억은 결국, 자신이 꿨던 꿈이라는 것을.
멜과 함께 림보에 들어갔을 때, 그 둘은 그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함께 늙어갔었다는 사실을… 멜이 자신에게 던진 말은, 약속은, 모두 자신이 멜에게 했던 이야기였다는 것을… 멜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어떤 바램 때문에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 사실을.
그때서야 코브는 멜의 죽음을 인정하고, 진짜 현실- 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4. 멜이 끊임없이 림보를 그리워했던 이유
어쩌면 현실로 돌아왔던 진짜 멜-이 끊임없이 림보를 그리워했던 이유도, 림보를 현실이라 여겼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 지 모르겠네요. 코브의 인셉션-이 성공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인셉션은 그저 죽어야하는 이유-를 부여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오십년 넘게 살았는데, 갑자기 그 삶이 뻥이라고 한다면, 그걸 믿을 수 있을까요?
멜에는 정말로, 그 림보속 삶이 현실이었을 지도 모르니까요.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과 함께, 코브와 함께, 몇십년을 함께 늙어가며, 평온히 살아왔을 테니까요. 결국 멜도 ‘께어나기 위해’ 림보로 돌아가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코브의 인셉션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삶이 그쪽에 있었기에.
게다가 아리아드네가 결국 코브팀으로 돌아왔던 것처럼, 그 안에서 자신은 전지전능했었거든요. 전지전능하게 몇십년을 살아왔는데, 순식간에 비루한 인간의 몸이 되니, 과연 그 삶을 진짜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5. 꿈은 육체를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몇십년을 살아온 것은 코브도 마찬가지. 그런데 코브는, 왜 그 삶을 포기하고 현실로 돌아오려고 했을까요? 그 해답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영화 ‘아발론’에서 나왔던 ‘미귀환자’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속 대사로도 나오지만, 림보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폐인-식물인간처럼 현실에선 살아가야 하지요.
그러나 그것도 누가 돌봐줬을 때나 가능한 일. 꿈 상태에서 며칠을 더 버틸지는 모르겠지만…(단계마다 12배 정도로 계산해 봤더니, 림보의 50년은 현실에선 21시간 정도…로 나오네요.) 그 림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조만간, 죽습니다.
결국 코브가 무서워했던 것,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는 코브가 무서워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요. 단순히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싫었던 것이 아니라, 가짜여서 싫었던 것이 아니라, 어찌되었건 꿈은 꿈. 거기서 계속 살게되면, 조만간 자신은 반드시 죽습니다… 누가 돌봐준다면 모르겠지만, 그거야 림보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어쩌면, 늙어버린 자신이 싫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6. 감독은 의외로 친절했다
이렇게 영화가 가지고 놀 것들을 많이 던져주는 반면, 의외로, 감독은 친절-_-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결혼반지를 통한 현실과 꿈의 분리…는, 정말 친절한 징표였죠. 뭐, 그렇게 친절하게 던져주고 가지고 놀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 감독은 정말 악취미가 철철 흘러넘치는 감독인거구요.
다시 보면서 살펴보니, 진짜로 꿈에서는 결혼반지를 끼고, 현실에서는 결혼 반지를 안끼고 있더군요. 놀랐습니다. -_-;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꿈속에서 팽이는 쓰러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엔딩의 팽이는 살짝 흔들리는 것에서 끝나죠. … 현실이란 이야기입니다.
…이걸 코브가 꿈에서 깬 이후, 왠지 계속 꿈 속에서 걷는 것처럼 장면을 만들어놔서 헷갈리긴 하지만… 만약 꿈이었다면, 아이들 얼굴도 다시 볼 수 없었을 거에요. 그건 코브가 가진 원죄의식-같은 거니까요.
7. 사이토 급속 노화 현상에 대한 가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림보에서 보여준 사이토 급속 노화 상태. 그나마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짜맞추자면, 이렇게 됩니다.
1. 피셔 사망-코브와 아리아드네 림보 진입-아리다드네와 피셔, 킥을 통해 ‘꿈’으로 탈출
2. 코브 잔류. 그러나 이미 멜-의 칼질(?)로 인해 사망(실질적 자살)한 상태
3. 현실로 튕겨 나가야 하나 못하고 림보로 재진입
4. 그 사이 뭐가 어찌된지 모르지만 시간의 갭이 생겨, 현실에선 10시간 정도가 지난 시점에 림보 진입(약 30년 경과)
5. 무의식의 해안가에 도착. 사이토와 코브 재회- 현실 귀환
그것도 아니면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림보에서야 인간은 전지전능하니까, 사이토는 그동안 느낀 고통으로 인해, 림보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아주 늙은이로 여기고 그렇게 존재하게 된 것이다-지만, 왠지 그 전지전능함은 코브와 멜-의 상황으로 비춰봤을 때 ‘늙어감’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도 같고…
어쨌든 약효가 떨어져야 돌아갈 수 있었으니, 다른 코브팀도 1단계 ‘꿈’에서 일주일 좀 못되게 머물러 있어야 했을 겁니다. (원래 작전 기간이 10시간, 1단계 꿈에서 일주일이었음.) 그리고 림보는 생각보다 영역이 작아서, 림보에 떨어진 사람들의 무의식 영역은 겹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림보는 의식의 바깥에 있는 어떤 ‘광대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정말 가상 영역에 더 걸맞는 장소, 꿈에 들어간 서로의 무의식이 완전히 겹치는 밑바닥…이었다는 것이 더 적당하겠네요.
이상입니다. 그나저나, 오랫만에 재밌게, 뇌내 망상(?)을 즐길 수 있게 해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며칠간 인셉션 영화속 세계에서 신나게 놀다온 기분입니다. 아직 안보신 분들…이 이 글을 읽지는 않으시겠죠? 만약 보신다면, 한번쯤 보셔도 나쁘지 않을 영화 같습니다.
…게임 기획자가 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응?)
* 생각보다 액션 장면은 그리 볼만하진 않습니다.
* 디카프리오, 이젠 완연한 중견배우. 사이토 아저씨 은근히 멋짐.
* 아서와 아리아드네는 뭔가 러브 라인 생길 것도 같은데… 왠지 이 영화, 팬픽 쓰기 딱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