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작년 가을, 진짜 CEO의 시간 관리법에 대해 이야기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즘 트위터에서 쫌 날리시는, 이계안(@withkal) 이사장을 만날 자리가 있었거든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계안 이사장은 우석훈 아저씨와 함께하는 ‘2.1 연구소’의 대표이자 전직 제가 살던 지역구 국회의원, 전직 현대 자동차사장, 현대카드 회장이었던 분입니다.
그것도 빽도 연도 없이 평사원에서 시작해 CEO까지 올라간, 어떤 면에선 진짜 샐러리맨의 전설 같은 사람이죠.
이땐 마침, 「학교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진실」이란 책과 오디오 CD를 낸 다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나게 되자 대뜸 물어봤습니다. 이계안님은 시간 관리 어떻게 하시냐고. 그러니까 셔츠에 달린 가슴 포켓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폅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가 이 종이 한 장을, 회사에 들어간 때부터 지금까지 써왔습니다…”
에? 이 작은 종이 한 장으로 시간 관리를 하셨다구요?
2. 이계안님은 본인 스스로, 시간 버리는 것을 못 참는 타입이라고 합니다. 낭비 하는 것이 싫어서 자투리 시간도 안버리고 사용하는 타입이라지요. 또 본인 스스로 굉장히 일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고 고백합니다. 다른 사람이 사장자리까지 올라가는데 평균 30년이 걸리는데, 자신이 22년 걸렸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고요. 항상 2시간 먼저 출근해 일을 했기에, 일하는 시간만 따져보면 30년 일한 사람과 맞먹었을 거라고 말하시더군요.
다만 유일하게 시간을 버려도 괜찮다-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면, 걸을 때 뿐이라고.
책도 엄청나게 읽습니다. 그때그때 짬이 날만한 모든 곳에 책을 놓아두고, 시간이 나면 바로 책을 읽는다고 하네요. 흔히 말하는 다독술-타입입니다. 다행히 기억력이 좋아서, 짬짬이 읽는대도 책을 펴면 바로 예전에 읽던 부분이 기억난다고도.
하지만 진짜 CEO의 시간 관리 비결은, 바로, 자기 주도-에 있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써왔던 종이 한 장은 바로, 삶을 자기 스스로 이끌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3. 회사에 도착하면 먼저 자기가 오늘 해야 할 일을 쭈욱 적어본다고 합니다. 남이 일을 시키기 전에,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엔 자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과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일을 나눕니다. 할 수 없는 일을 위임, 또는 도움을 청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정보의 중심에 섰습니다.
정보의 중심에 서다니,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다름 아닌, 다른 이들이 뭔가 소식을 알고 싶거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보는 존재가 됐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잡무가 바로 텔렉스 정리(텔렉스는 예전에 쓰던 장치로, 전화선을 통해 신호를 받고, 받은 신호를 문자로 바꿔서 종이에 찍어주는 장치입니다. 일종의 원격 프린터라고 할까요).
당시엔 인터넷도 없고 외신도 늦었기에, 해외 소식을 받아보기 위해 텔렉스를 통해 정보를 얻었는데, 이 텔렉스 정리가 꽤 귀찮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신입사원의 몫이었는데, 이 업무를 자진해서 했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꾸준히 읽고 정리한 정보는, 정리한 사람을 ‘정보통’으로 만들어주고, 항상 새로운 정보의 중심에 설 수 있게 해줬습니다.
4. 알고보면 참, 너무 간단합니다. ^^ 한 명의 신입 사원을 CEO로 만들어줬던 것이 바로 종이 한 장이었고, 자기 주도적인 태도였다니. 어떤 거창한 꼼수나 비법도 아닌,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적고, 혼자서 못할 것 같으면 위임하고, 귀찮은 정보를 정리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끌어 왔다니
... 너무 간단해, 실망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알고 보면 세상은, 그런 간단한 일들이 밑바탕이 되어 굴러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재능을 타고난 무림 고수라도 기초가 쌓여있지 않으면 어떤 초식이라도 무용지물. 간단한 일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셈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도, 꼭 이와 같은 방법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거든요. 일의 종류도 달라지고, 그때그때 떨어지는 작업 지시나 직장 상사의 오더를 처리하고 있다 보면 자기 주도적인 삶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만 들립니다. 당장 텔렉스가 사라진 것이 몇 십 년 전인데요.. ^^
5. 그래도 기본은 중요합니다. 각자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응용해서 규칙, 또는 버릇, 또는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 그래서 자기 주도적인 삶의 태도를 찾는 것은, 지금 우리들도 결코 놓쳐선 안될 일일 겁니다. 어쩌면 복잡다단해진 세상에서, 세상에 끌려 다니며 살지 않기 위해 더욱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이계안님. 이때만해도 눈 나빠 인터넷도 잘 안하신다더니 어느새 아이폰에 적응하시고, 아이폰을 이용한 트윗질에 도사가 되셨습니다. 뭐, 뭔가 세상에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