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데, 저는 게으릅니다. 정말 게으릅니다. 그래서 항상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고, 귀찮고 귀찮아서 귀찮은 일들을 어떻게하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을까 생각합니다. … 물론 건망증이 심해서 금새 까먹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사람이 1등급 귀차니스트이니 그 사람이 사는 장소라고 해서 다를리 없습니다. 제가 집이나 사무실에서 어떤 환경을 유지하며 살아왔을지,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예, 저 같은 사람을 위해 옛부터 이런 말이 전해져 왔지요.
“여기가 사람사는 곳이여 아니면 돼지 우리여…”
그런데 막상 요즘 제 방이나 제가 일하는 곳을 보면, 이 사람이 과연 게으름뱅이가 맞나 하실 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제가 무지하게 부지런하고 꼼꼼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시기도 합니다. 깨끗하게 정리정돈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응? 방금 지저분하다고 하지 않았냐구요? 사실입니다. 여기 그 증거가 있습니다.
흐트러진 환경 = 흐트러진 머리
…끔찍하시죠? 하지만 일부러 어질러 놓은 것이 아닙니다. 십년 전에 찍은 제 방 사진이랍니다. 사실 정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할 일도 많고 즐길 것도 많은데 시간과 청춘은 짧습니다. 책과 자료는 나날이 쌓여가는데 방은 비좁기만 합니다. 어쩔 수 있나요, 그냥 있는데로 살아가는 수 밖에요.
그런 제가 변한 것은 한참 아프고 난 이후였습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좀 심하게 아팠는데, 그래도 일은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니 작은 것 하나까지 다 짜증이 나고 피곤한 겁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제가 원하는 물건이나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사실.
컴퓨터 안이나, 컴퓨터 밖이나. 그만큼 끔찍하게 방치되어 있었던 제 공간과 그만큼 끔찍하게 뒤엉켜 있었던 제 머릿속. 몇 시간이나 헤매도 필요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그때 써야했던 원고는 머릿속 기억만으로 날림으로 써야했습니다.
정리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때쯤이었던 같습니다. 더이상 이렇게 살다간, 그냥 잡동사니 더미에 묻혀 죽어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일도 엉망으로 할 것 같았고. 그런데 그 정리법이란 것이 한편으론 납득이 가면서도, 한편으론 해괴한 겁니다. 뭐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지만, 아무튼 그때 배운 많은 것들은 저 같이 게으른 사람들이 쉽게 써먹을 수 없는 방법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정리방법은 없을까요?
글쎄요. 모두에게 맞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여러가지 방법을 테스트하다, 저에게 맞는 몇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모든 물건(자료)에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여기에 한 문장만 더 덧붙이자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습관이 가장 중요해요.”
하루 5분이면 충분한 정리정돈법
자- 그럼 실전에선 이런 원칙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우선 책상을 정리해 주세요.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조리, 큰 가방이나 서랍에 처넣어주세요. -_-!
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리정돈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리에서, 그 자리가 보듬을 수 있을 만큼의 물건만 채워넣는 것이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필요한 물건만 그때 그때 찾아꺼내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꺼낸 물건만 책상위나 서랍에 보관하시면 됩니다.
보통 이렇게 쓰다 일주일~한달 정도가 지나면 꼭 필요한 물건만 책상과 서랍에 자리잡게 됩니다. 의외로 꽤 많은 물건과 자료가 쓰지도 않는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에요.
응? 그럼 나머지 짐보따리는 어떻게 하냐구요? 보통 3개월~6개월 동안 한번도 쓰지 않는 물건은 앞으로도 쓸 일이 거의 없는 것들입니다. 버리거나 나눠주세요. 컴퓨터로 백업한 다음 폐기하셔도 괜찮습니다. 책상위에 뭔가가 쌓인다 싶으면, 보통 1년에 한번이나 사무실 이사할 때 한번씩, 다시 정리하는 것도 권장합니다.
참참, 그렇게 필요해서 꺼낸 물건에는, 항상 자리를 정해주셔야 합니다. 한 가지 물건에는 하나의 자리를. 사무용품이 있는 자리, 사진액자가 있는 자리, 메모지가 있는 자리, 노트북이 있는 자리, 어댑터나 자료가 놓여지는 자리…
스마트폰용 거치대나 스탠드를 제가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확하게 그 제품이 있어야 할 곳을 지정해주거든요. 책상 맨 윗 서랍이나 작은 바구니도 사랑하는 물건중 하나입니다. 아침 출근할 때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그 안에 담아(쏟아)놓고, 퇴근할 때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가방에 집어넣고 나오거든요.
응? 가방을 왜 쏟아놓냐구요? 아, 아직 이야기를 안했군요… 전 시각적인 사람(= 외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제 시선이 닿는 곳에 물건이 있지 않으면 까먹어 버립니다. 이런 제게 가장 위험한 곳은 서랍장 맨 밑 서랍의 깊숙한 안쪽과 바로 가방 안-입니다. 정말로 금방 까먹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가방은 사용할 때가 아니면, 항상 텅비워놓는 것이 신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방을 비우거나 채울 때, 조금씩 책상을 정리해 줍니다.
깨끗한 책상 = 깨끗한 머릿속
사실 이렇게 가방을 비우고 채우는 시간을 만든 것은, 일상의 흐름속에 어떤 정리 시간을 끼워넣기 위함입니다. 습관은 일종의 프로세스거든요. 어떤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이 취하는 반복적인 행동. 그것이 바로 습관입니다.
이빨을 닦고 세수를 하는 사람이 있고,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아무튼 자기도 모르게 순서를 정하고 되풀이하며 일을 처리하는 과정. 그런 일상의 흐름 속에 ‘정리하는 짧은 시간’을 만들어 넣기 위해, 제가 일부러 선택한 방법이랍니다.
그럴 듯 한가요? ^^ 그런데 모든 일이 이렇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엔트로피 법칙. 큰 힘을 들여 한번에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했다고 해도, 습관이 수반되지 않으면 흐트러지는 것은 아주 잠깐입니다. 생활을 정리정돈하기 위한 일상적인 습관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어떤 정리정돈법도 다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로, 보다 게을러도 상관없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아시겠지만 프로세스를 정리해 놓으면 모든 것은 쉬워져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찾기 위해 힘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오로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위해서만 신경쓸 수가 있습니다. 물론 매번 같은 프로세스만 따라가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재미없는 삶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자, 그럼- 지금까지 힘겹게 글을 읽지 않으셨을 분들을 위해, 딱 두 문장으로 다시 요약해 드립니다.
- 모든 물건에게 그것이 있을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 하루에 두번, 가방 속 물건들을 다 꺼내놓거나 집어넣으면서 자리를 정리정돈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이걸로 끝!
* 소셜 LG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