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 독서법, 책 읽는 당신의 감성을 만족시킬 공간

V3 백신, 아니 이젠 전 대통령 후보 예정자(?)로 유명한 안철수 아저씨는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책을 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책을 통해 책이 아닌 나를 읽는 기분이 든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 따라 책에서 항상 다른 것들이 보인다.

이 말을 듣고 아하-하고 무릅을 치실 분들도 계시고, 대체 무슨 소리 하는 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답니다. 가끔 책을 읽다보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응? 너는 별로 아는 것이 없구나? 그럼 내가 이만큼만 보여줄께. 응? 와- 꽤 많이 성장했구나. 그럼 이제 이만큼을 보여줘도 되겠네-라고 책이 말을 하는 기분이랄까요.

…내가 아는 만큼만 보여주는 참 신기한 물건, 그것이 바로 책입니다.

사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그 책에 담긴 내용을 읽으면서, 어느새 그 정보를 머릿 속으로 편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책에 담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그 정보를 머릿속에 다시 재배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받아 들이니, 결국 자기가 아는 만큼 더 보이고 덜 보이게 되는 것이죠.

오늘 이야기할 정보를 만들어내는 책 읽기의 기술, 그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편집’이란 단어입니다.

독전-독중-독후의 프로세스

지난 글에서 살짝 이야기한 독전(讀前)-독중(讀中)-독후(讀後)의 프로세스, 다들 기억나시나요? 책 읽기 전과 책 읽은 다음까지 모두 한 덩어리의 독서로 봐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가지를 하나의 프로세스로 취급해야 하는 이유는, 읽기 전에 책을 고르는 과정과 책을 읽은 다음 정리하는 과정이 독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이 부분을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준비 과정이 있는 것처럼 책읽기에도 마찬가지로 준비 과정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어떨 때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서점을 산책할 때 어떤 책 디자인에 먼저 손이 가시나요? 책을 펼치면 어느 부분을 먼저 살펴보나요? 어떤 때에 주로 책을 읽으시나요?

이런 부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독전-의 핵심입니다. 여기에는 책 표지 디자인, 종이 감촉, 대형 서점을 좋아하는 지 소형 서점을 좋아하는 지 헌 책방을 좋아하는 지의 여부, 아무렇게나 펼쳐든 페이지를 먼저 살피는지 저자 약력을 먼저 보는지 목차를 먼저 살피는 지의 여부, 이런 것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 독전의 과정이 바로, 자신이 어떤 책을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지를 알아가는 과정. 모든 사람의 입맛이 다르듯 책을 대하는 취향 역시 모두 다릅니다.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고 싶어하지 않듯이, 몸에 맞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억지로 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그리고 이런 부분이 간과되면, 독서는 즐거운 경험이 아니라 괴로운 경험, 하나의 억지스런 사치에 불과하게 됩니다. 책만 사놓고 안읽고 쌓아두거나, 책을 읽어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이렇습니다. 이럴 때는 망설이지 말고 그냥, 포기하셔도 괜찮습니다.

집에 북-빠를 만들어 보자

독전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책 읽을 장소를 만드는 일입니다. 물론 주로 지하철에서 읽는다! 라고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솔직히 권하고 싶은 독서 형태는 아닙니다. 그냥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모르겠지만, 지하철 같은 대중 교통 안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못 읽을 것은 없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긴 있습니다(가벼운 소설, 자기 계발서 같은 경우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그럼 어쩌면 좋을까요?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집은 좁고 읽을 책은 많은데. 카페나 도서관, 아니면 내 방이나 사무실 책상… 등등, 책 읽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 장소에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밤늦게까지 하는 단골 카페가 집 근처에 있다면 좋겠지만. 게다가 집에 들어가면, 할 일은 또 뭐가 그리 많은지.

그런 분들은 집에 작은 북-빠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들, 홈 빠가 뭔지 아실 겁니다. 집에 설치해 놓은 나만의 술먹는 장소지요. 좋아하는 술을 가져다 놓고, 좋아하는 안주와 함께, 가볍게 와인 한잔씩 즐기기 좋은 장소입니다. 물론 제대로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공이 들어가지만…

그런 식으로 집에다, 작은 책 읽는 전용 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푹신한 소파 하나 방 구석에 가져다 놔도 좋습니다. 지금은 좀 춥겠지만 베란다는 어떨까요? 많은 분들은 식탁을 이용하시기도 합니다. 어디라도 괜찮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라면- 그리고 읽을 책 몇 권을 가져다 놓을 작은 공간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책 읽을 공간이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나만의 북 빠-인 것이죠. 다만 컴퓨터등 관심을 뺏길 다른 기기들은 같은 자리에 없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커피 한 잔 올려둘 테이블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감성, 독전에 가장 필요한 것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충 눈치채셨을 겁니다. 독전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딱딱하게 말하자면 책읽는 환경, 실은 어떤 감성-에 관계된 부분을 말합니다.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긴 책을 어떤 향기 속에서 어떤 질감을 느끼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릿 속에 일어나는 뇌내 편집은, 어떤 연습 없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풍부한 지식이나 독서량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구요. 머릿 속에서 정보와 정보의 충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그 와중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분출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를 갖춤과 동시에, 그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충돌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얘기를 하다보니 왠지 조금 어려워졌나요? ^^ 요약하자면 자신의 마음에 맞는 책을 찾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 이야기랍니다. 그리고 그런 준비들이 바로, 다음에 이어질 독중의 기술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독중과 독후의 기술은, 다음 글에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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