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에 대한 아홉가지 짧은 이야기


1. 예전에 북 콘서트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그때 참가했던 소설 ‘컨설턴트’의 임성순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세상은 시스템에 의해 굴러간다고.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그 시스템에 맞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작은 것일까. 영화 ‘설국열차’ 역시 마찬가지다. 묻는다. 대체 니까짓것이 뭘 할 수 있겠냐고.

2. 설국 열차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몇몇 CG가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이 정도 퀄리티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돈이 좋은건지 봉준호 감독의 솜씨가 좋은건지 모르겠다.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은 헐리웃 영화라 여기고 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전승결. 처음부터 숨쉴 틈을 안주고 몰아치다 조금 느릿한 분위기로 들어가다, 마지막에 다시 몰아친다.

3. 기는 아주 짧다. 프리퀄 애니메이션이 공개되어 있으니 미리 보고 가도 좋을 듯 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공개된 메이킹 영상을 보면 다시 한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원작과는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나서, 원작을 읽어보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4. 신기할 정도로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이게 배우의 힘일까. 별 것 아닌 조연들조차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대사가 없는 캐릭터까지. 송강호와 고아성은 잘 넣었다고 생각한다. 두 배우 때문에 이야기결이 조금 더 풍부해졌다. 대신 끝나고 생각할 부분이 너무 많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디테일한 부분이 죄다 은유적으로만 표현되어서.

5. 엔딩은 호불호가 갈릴듯 하다. 상당히 독특한 설정의 이야기인데, 어설픈 헐리우드식 결말이 된 듯 하기도. 학살자 토미노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원작의 결말이 맘에 들었던 것도 아니다. 뻔한 SF식(?) 결말이었으니까. 결말만 수정해서 감독판이 새로 나와주길 희망한다.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6. 악당의 주장이 너무 설득력있다. 고뇌하는 주인공이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마더’ 같은 묵직함은 없었다.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기에 찾아왔던 그 묘한 가슴 무거움. 나라도 그랬을 것만 같은 삶의 모순. 하긴 너무 한국적인 정서여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라나. … 그러고 보니 원작의 ‘마더’도 여기선 다르게 처리됐구나.

7. 어떤 면에선 잔혹동화판 WALL-E. 하지만 WALL-E보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 꼬리칸 사람들은 리얼한데, 잘 사는 사람들은 뭔가 로봇들 같다는 것(조연과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사도 거의 없다. 그야말로 NPC). 이쪽은 월-E가 차라리 더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건 원작도 비슷하고, 원작이 70년대에 기획되어 80년대에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해 줄 수 있을라나.

8.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만 허무하게 죽는다. 그나마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대부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9. 이정애 작가의 만화중에, 동물을 위해 자신의 팔을 내준 수도사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만화가 자꾸만 생각났다. 이 영화, 참 단순해 보이면서도 할 얘기가 많은 영화다. 그런 세계관을 만들어낸 원작자들과, 그 세계관을 이렇게 영상으로 만들어낸 봉준호 감독에게 찬사를.

P.S.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춥게 느껴집니다. 설국열차를 즐기라고 일부러 냉방을 쎄게 틀었나 의심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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