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7이 발표됐다. 사실 스펙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루머대로 나왔으니 루머를 확인했을 뿐이다. 새로운 색상이 추가되고, 이어폰 단자가 없어졌으며, 방수가 되고, 카메라와 디스플레이가 더 좋아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진짜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어떤 것이냐고? 누구나 봤지만 왠지 모르는 척하는 것 같은, 세 가지 부분을 정리해 본다.
카메라가 무섭게 진화할 가능성
만약 아이폰7을 고려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번엔 무조건 아이폰7 플러스를 추천할 것 같다. 7플러스에 달린 듀얼 카메라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애플이 인수한 ‘링스’란 카메라 모듈 회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7 플러스를 사야 한다고 얘기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인수 당시 링스가 가지고 있던 기술이 바로, 아이폰 카메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링스는 ‘어레이 카메라’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이 기술은 여러 대의 카메라 모듈을 통해 받은 정보를 조합해,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그렇게 하기 위해 찍는 대상의 정보를 입체적으로(3D)로, 카메라에서 대상까지의 거리 등을 확인해 저장한다. 이미지가 아니라 공간을 담는 셈이다.
이번 이벤트에선 애플이 듀얼 카메라를 이용한 ‘배경 흐림(아웃포커싱)’ 기능을 곧 선보이겠다고 얘기했다. 지금은 배경 흐림뿐이지만, 이 기술의 활용도는 상당히 높다. 배경과 찍히는 대상의 정보를 분리해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배경만 없애거나, 빠르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능해진다. 증강 현실에 활용하면 훨씬 자연스러운 증강 현실 화면을 보여줄 수가 있다.
인수 당시 링스가 가졌던 기술이 진짜고, 그걸 아이폰에 실용화시킬 방법을 찾았다면, 앞으로 아이폰 카메라의 진화는 꽤 기대해도 좋다. 다양한 활용뿐만 아니라, 인수 전 링스는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수준으로도 DSLR 급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링스가 주장했던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볼 수가 있다.
https://www.scribd.com/doc/261875793/LinX-Imaging-Presentation
애플 생태계 확장을 위한 3번째 전략, 콘텐츠
이번 아이폰7 발표 이벤트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등장해 ‘슈퍼 마리오 런’을 소개하는 순간이었다는 우스개도 있었다. ‘포켓몬 고’를 통해 구글과 밀접히 연결된 것 같았던 닌텐도가, 이번엔 빠르게 애플과 손을 잡은 것이다. 아이팟 터치 발표 때만 해도 서로 라이벌로 여겨졌던 두 회사였는데, 어른의 사정은 이들이 손을 맞잡게 만들었다.
물론 닌텐도가 앞으로 발표할 게임은 ‘슈퍼 마리오 런’만이 아니다. 닌텐도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는 2017년 3월까지 명작 SRPG ‘파이어 엠블렘’과 ‘동물의 숲’이 추가로 발매될 예정이라고 밝혔고, 이들 게임은 애플 독점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등장이 중요한 것은, 애플 생태계 확장을 위한 3번째 전략, 콘텐츠 확장 전략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밀접히 연결된 사업 모델을 가진 회사다. 애플 생태계 확장은 애플의 수익과 직결된다. 이를 위해 그동안 애플은 4천 개가 넘는 API를 개방하고, IoT, 스마트홈, 스마트카, 스마트 헬스 등과 관련된 독자 플랫폼을 공개했으며, 아이패드 프로, 애플 TV, 애플 워치 등을 통해 다양한 기기로의 확장을 꾀했다.
그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원래 계속 기반을 다져야 나중에 뭔가 툭-하고 튀어나온다. 기반을 다지지 않고 어느 순간 얻어 걸리는, 갑툭튀하듯 이뤄지는 성장은 없다. 있어도 금방 무너진다. 콘텐츠는 특히 더 그렇다. 애플 뮤직의 경쟁사 플랫폼 개방, 콘텐츠 제작사 인수 시도 및 자체 TV 시리즈 제작에 이어, 자체 플랫폼을 고집했던 닌텐도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그런 이유다(물론 닌텐도도 전략 변화가 필요하긴 했다. 애플과 닌텐도가 뭘 주고 받았을지 솔직히 궁금하다.).
현재 애플의 수익 구조에서 콘텐츠 서비스 매출은 약 12% 정도를 차지한다. 아이폰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앞으로 애플의 경쟁 상대는 구글이나 삼성 뿐만 아니라, 아마존이나 스포티파이, 소니, 넷플릭스까지 포함될 것이다. 닌텐도 합류는 애플이 콘텐츠 확장 전략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아이폰7은 기존 아이폰 사용자를 위한 것이다
이번 아이폰7 발표를 보고 나서 유독 많이 나오고 있는 분석이 있다. ‘혁신은 별로 없지만 기존 애플 사용자들은 아이폰7을 살 것이다’라는 얘기다. 다들 이번 아이폰7의 예상 구매자를 기존에 아이폰 사용자로 보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아이폰 6s부터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굳이 잘 쓰던 폰을 버리고 아이폰으로 넘어갈 만한 매력적인 기능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아이폰7도 가만히 보면 아이폰6SE라고 불려도 할 말 없다. 애플 본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하드웨어적인 몇몇 변화(터치 홈버튼, 이어폰 잭 삭제 – 터치 홈버튼은 고장이 잦아서, 이어폰 잭 삭제는 공간이 부족해서)를 제외하면, 아이폰6를 지금 산다고 해도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6s의 포스 터치나 라이브 포토가 킬러 기능이 아니었던 이유와 같다.).
애플도 새로운 유저 유입보다, 기존 사용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방수 기능’은 일본 소비자들이 주로 원하던 기능 중 하나고, 일본판 아이폰에만 ‘펠리카(일본에서 사용하는 스마트 교통 카드)’ 기능이 탑재된 것도 한 예다. 아이폰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의 중국 적용은, 2014년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휴대폰 보조금 지급 축소 정책으로 인한 중국 판매량 감소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일본과 중국은 애플의 중요한 시장이자, 최근 아이폰 시장 점유률이 떨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시장을 위해, 대놓고 개별 국가들을 위한 특별한 정책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애플 답지 않은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이 또 팀 쿡의 애플이다. 커넥티드 에드-라는 교육 기관 지원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도, 최근 미 교육용 시장에서 구글 크롬에게 크게 밀려나기 시작한 상황이 반영된 것일테고.
에어팟도, 블랙 컬러도 관심 없었다. 그것보다 이번 발표회에서 슬쩍 맛만 보여준 애플의 큰 그림이 더 관심을 끌었다. 지난 5월, 팀 쿡은 이번 아이폰7에 ‘혁신적인 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이폰7에 그런 진화가 담겼을까?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진화가 이뤄질지도 모를, 그런 단서는 여기저기 남겼다.
애플은 앞으로, 링스의 기술을 적용한 카메라와 그를 응용한 증강 현실 앱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디바이스와 콘텐츠 생태계 확장도 계속 추진할 것이다. 정책적으로 개별 국가별 시장 감소에 대한 대응도 계속 이뤄질 것이다. 이번 아이폰7은 그런 변화를 위한 바닥 다지기라고 생각한다. 진짜 변화는, 진짜 혁신은, 내년 아이폰 10주년에 발표될 아이폰7s에 담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