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옥 갈께, 딸은 천국 가…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사서 새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 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 께 딸은 천국 가.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비설’이라는 작품이 있다. 4.3 사건 당시, 산에서 도망가는 어머니와 아기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동상이다. 예전에는 그 동상을 볼 때 마다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을 생각했었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하는.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이야기가 생각날 것 같다. 엄마가 지옥 갈 께, 딸은 천국 가…라는 엄마의 편지가.

그 마음을 어찌 알겠다고 아는 척이라도 할까. 내가 지옥에 갈테니 너는 천국에 가라고 말하는 마음을. 그래서 어떤 시인은 그리 썼다.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고. 혼자 밥 먹는, 혼자 우는, 혼자 죽는 사람으로 살다 죽어야겠다고. 그래도 좋으니까, 침묵하지 않겠다고. 그것은 같은 사람,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기에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

 

 

 

살자. 부끄러우니, 부끄러운 채로 살자. 바다 위에 머리만 남아 떠 있던 배를, 그 풍경을 잊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수백명이 갇혀 있었어도 구하지 못했던 세상을, 다시 되풀이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중에, 행여 만나게 된다면, 그 아이들이 보지 못했던 세상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때보다 어떻게든, 조금은 더, 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아무도 너희를, 잊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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