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IT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최신 IT 기술이 널리 퍼지고 있는 분야가 있다. 패션? 아니다. 자동차? 아직 멀었다. 지금 최신 IT 기술을 빠르게 상용화 시키며 성장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농업이다. 이름하여 팜테크, 농업테크, 애그리테크 … 또는 농담 삼아 농테크. 물론 현실은 농담이 아니다. 농업 테크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다.
… 물론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 농테크를 요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농테크는 낯설 것이다. 가상 현실, 사물 인터넷, 드론, 무인 자동차는 친숙해도 농업이랑 IT랑 대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다는 말인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농테크는 이미 농업에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트렌드와는 다르게 농테크는 정말 인류가 필요해서 도입하고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김용 당시 세계은행 총재는 “10년 안에 물과 식량을 둘러싼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지야 않겠지만, 그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2015년 기준으로 지구 인구가 약 73억명. 하지만 인류의 식량 생산 능력은 1950년대부터 1990년 사이에 3배로 증가한 뒤, 그 다음부터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10억 명의 인류가 매일 밤 배고픈 채 잠이 든다.
기후 변화도 인류의 위기의식을 부채질했다. 2008년 아이티와 필리핀, 2011년 알제리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다. 2010년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가 대 가뭄을 겪은 이후 곡물 생산량이 35%까지 감소하고 수출을 제한하자, 이집트가 직격탄을 맞아 폭동이 일어나고 결국 정권까지 교체된 적이 있다. 조금 멀리 가면 1980년, 한국이 최악의 흉년을 겪고 쌀을 수입하려 하자, 곡물 회사 카길은 갑자기 쌀값을 2배 이상 올려 불러버린 적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안전한 식량의 필요성을 다시 되새기게 만들어 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투기 자본이 곡물 시장에 참가하면서 곡물 가격이 인위적으로 왜곡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결국 농업 테크는 불안정한 곡물 시장 상황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기술이나 다름없다. 실리콘 밸리를 기준으로 할 때 실제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로, 2015년에는 46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조 3천억 원가량의 투자가 이뤄졌다고 한다.
…위기는 일찍부터 있었는데 왜 투자가 늦었냐고 묻는다면, 스마트폰 혁명으로 그때부터 센서 값이 헐값으로 떨어졌다고 대답할 수밖에. 2013년은 스마트폰 시장이 정점으로 치닫기 시작한 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
그렇다면 어떤 것을 농테크라 부를까? 크게 2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서 작물을 기를 수 있는 기술과, 사람의 노동을 줄이면서 효율적으로 식량을 가꿀 수 있는 기술로. 기본적으로는 보다 값싸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기술이 바로 농테크다.
농업 테크 분야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알려진 나라는 네덜란드다. 예를 들어 여기 하루에 호접란을 3만 개 정도 출하하는 7헥타르(축구 운동장 8개 반) 정도의 유리온실이 있다. 이 안에는 사람 대신 로봇부터 시작해 자동 운송장치, 검사 장치, 각종 센서 등으로 꽉 차 있다. 이 기기들을 이용해 자동으로 온실환경제어시스템을 운영한다. 시스템이 알아서 온실의 온도, 습도, 조명 및 영양 요소까지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직원은 30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최근에는 작물이 익었는지 자동으로 판단해서 수확하는 로봇도 개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처방(Prescription) 농업 붐이 일어나고 있다. 농기계와 농경지 이곳저곳에 센서를 장착해, 토질과 작물의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기 예보 등의 정보와 결합해 해당 지역에 알맞은 농사법을 추천해 주는 기술이다. 제공하는 정보는 토양 상태, 작물 성장 상황, 지난 시기 기후변화 도표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처방 농법을 일부분만 채택했을 경우에도 물 사용량은 50% 가까이 줄이면서도 수확량은 오히려 15% 이상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⅔ 정도의 미국 농민들이 이 시스템을 일부라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처방 농업 관련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이 다국적 농업 회사라는 것. 위 영상에서 보이는 클라이메이트 코퍼레이션 역시 세계 최대의 종자 업체인 몬산토(유전자 조작 종자로 유명한 그 몬산토)가 대주주다. 이들은 이미 세계 곡물 가격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중요 세력이기 때문에, 이들이 깔아놓은 네트워크에서 얻은 정보(예상 올해 작물 생산량 등의 정보)를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하지 말란 법이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정도의 대규모 사물 인터넷 네트워크를 깔고, 그렇게 해서 얻은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에는 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들이 아니면 딱히 할만한 사람도 없다. 어찌 보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있는 것이, 지금의 미국식 처방 농법인 셈이다.
식물 공장의 시대가 다가올까?
아예 안정된 환경에서 식물을 생산하는, 식물 공장은 어떨까? 영화에서 많이 보이던 식물 공장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연구가 시작된 것이 1960~70년대였으니, 5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다만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 작물이 단순하다는 이유로 남극 같은 극한 환경이 아닌 곳에서는 경제성이 없다고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
중국계 스타트업인 알래스카 라이프는 도시형 농장 사업을 꿈꾸고 있다. 핵심은 어디서나 식물을 키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일체화한 컨테이너형 식물 기르기 시스템 EDN이다. 일주일에 2시간 정도만 할애하면 최대치로 채소를 생산할 수 있고, 기존 농업 방식보다 아주 적은 량의 물과 에너지만 사용한다고 한다(물론 과대광고일 수도 있다. 수입 디젤 자동차의 교훈을 잊지 말자.).
일본의 스프레드사는 아예 완전 자동화된 상추 공장을 만들었다. 사람이 씨만 뿌리면, 그다음부터는 모두 컨테이너 로봇이 알아서 재배하는 농장이다. 심지어 수확까지 모두 책임진다고 한다. 예상 가동 연도는 2017년부터지만, 이 밖에도 일본에는 이미 많은 식물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일본은 식물 공장을 상용화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미국의 에어로팜사에서는 3층 건물 높이의 세계 최대 규모 수직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약 2000평 규모에서 매년 1000t의 채소를 생산하는 중이다. 버려진 건물이나 공장을 재활용해 식물 공장을 만들고, 수경 재배 대신 물안개를 뿌려서 생장 시키는 방법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과연 이런 식물 농장은, 그동안 이야기됐던 비효율성을 벗고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물을 적게 쓰면서 비슷한 가격에 생산할 수 있다면, 가뭄이 심각한 지역에서는 환영받을 것이 틀림없다.
울지 말자 한국 농테크
다른 나라의 농테크가 이미 와 있는 미래라면, 한국 농테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고 봐도 좋다. 한국을 대표하는(?) 농테크는 스마트팜이다. 지난 2014년, 과학기술 기반 농업혁신 전략 보고회를 통해 2017년까지 영세 농가에 저가형 스마트팜을 보급한다는 계획을 제시한 이후 진행되고 있는 사항이다. 농업 진흥청 및 농림축산식품부, 전국 각지에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농촌 창조마을, 이동통신사 등이 연계된 이 사업은, 아쉽지만 아직까진 비닐하우스의 재배 환경을 확인해서 컨트롤 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스타트업 팜패스에서 내놓은 농업경영 관리 시스템과 환경 제어 기술들이 합쳐진 솔류션이다. 비닐하우스의 온도, 습도, 강우량등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더불어 생산, 출하, 소비 관리 등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단동형 비닐하우스용 스마트팜 솔루션 개발을 하고 있는 ‘유비엔’이나, 비파괴 당도 검사기를 만든 ‘해아림’등도 눈여겨볼 만 하다.
문제는 데이터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다양한 식물과 환경을 관찰해서 저장한 굉장히 많은 양의 데이터가 있고, 이를 실제 농업에 활용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공 지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만 좋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농테크에 성공하고 싶다면, 이 데이터를 얻고 저장하고 분석해서 어떤 표준화된 자료를 만드는 것에 대한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확산되고 있는 스마트팜 사업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했지만, 농테크는 이미 와 있는 미래다. 해외의 기계 자동화 농업 사례를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것들이 많다. 일단 농사를 짓는 땅 크기가 다른 만큼 기계들의 크기가 다르다. 사람보다 훨씬 큰 기계도 쉽게 볼 수가 있다. 게다가 그런 기계들이 점점 자동화되어 가고 있다.
예전에는 3명의 사람, 3명의 말이 필요했던 작업이 3명의 사람, 3대의 트랙터로 대체되었다면, 최근엔 3명의 사람과 1대의 트랙터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무인 자동차, 로봇 등 우리가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물 바깥의 농테크에선 이미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첨단 IT 기술이 결합되면서, 농업의 이미지가 바뀌고 농업에 종사하길 원하는 젊은이들도 점점 늘어가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차피 사양 산업이니 그냥 버려야만 할까?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