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그리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내 청춘의 그림자 같았던 그의 노래가 듣고 싶은 밤

 

1. 탄핵 소추 가결 소식이 들려온 시간, 페이스북의 한 친구가 영상 하나를 올렸다. 오늘은 이 노래를 듣고 싶다며. 무슨 노래인가 해서 보니,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축배를 들어라’는 곡이다. 아, 그렇지. 이 노래, 좋지-하다가, 그만 혼자, 눈물을 글썽, 거려 버렸다. 아아 맞아, 이 노래, 좋지. 참, 좋았지…

 

한잔은 내게, 한잔은 버림받은 세상에
한잔은 그리운 그 사람에게
서글펐지만 희미한 희망으로 버텨온 어둠의 시간들아 잘 있거라

뜨겁게 빛나는 우리 젊음과 청춘에, 잔을 높여라
아낌없이 마셔라

축배를 들어라 오늘을 위해서
내일을 향해서 축배를 들어라

– 축배  中

 

 

 

2. 누구에게나 그런 노래가 하나쯤은 있을 거다. 왠지 이 노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라고 여겨지는 노래가. 그래서 힘들고 서글픈 날이면, 입꼬리로 겨우 웃으면서 한 번씩 불러보는, 그런 노래가. 내게는 달빛요정의 노래가 그랬다. 한때는 반짝이고 싶었다가 이제는 비루해진, 평범한 30대 남자의 마음을 담은 그런 노래.

 

달빛요정의 노래는 그랬다. 멋지게 살고 싶다는 꿈을 접은 지는 오래. 가끔은 누군가 나를 보며 흉을 볼 것만 같고, 지나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게 되는, 어쩔 수 없이 평범해진 나 자신을 거울로 비추는 듯한 노래.

 

슬퍼하기보다는, 원망하기보다는, 꿈꾸다 날개 잃고 떨어진 새의 모습 그대로, 그냥 조용히 지켜보며 말을 건네는 듯한, 그런 노래. 간교한 위로도 아니고, 하나마나한 충고도 아닌, 그냥 나는 이래, 그냥, 그래-하고 말하는 것 같은. 그래도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그냥 그런 내 자신을 붙잡고, 그저 그래도 좋으니, 우리, 살자-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노래.

 

비릿한 피맛이 나던 노래. 언젠가 얻어터지며 쓰러졌을 때, 혓바닥 안에 가득 고이던 피맛, 살다가 그런 것을 다시 느낄 때마다, 입꼬리로 웃으며 부르던 노래.

 

꿈이 없이 살 수도 있어, 꿈만 꾸며 살 수도 있어.
나를 지워가면서, 세상에 나를 맞춰가면서.

느리다고 놀림받았지, 게으르다 오해받았지,
그런 나를 느껴봐, 아직은 서툰 나의 마구를

꿈을 향해 던진다. 느리고 우아하게
찬란하게 빛나는 나의 너클볼
나는 살아남았다, 불타는 그라운드
가장 높은 그곳에 내가 서있다.

– 너클볼 콤플렉스 中

 

 

 

3. 몇 년 전 겨울이 시작될 무렵, 당신은 떠났다. 당신은 떠나고, 나는 가끔 당신 노래를 부르면서도, 당신을 잊고 지냈다. 맞아, 적당히 맞춰가며 세상을 살고 있었다. 이미 긴 겨울은 시작됐다고. 살아남으려면, 움츠려야 한다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도 아니건만, 안부를 전할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졌고, 졌고, 또 졌었다.

 

그리고 오늘, 작은 승리를 맛봤다. 끝난 것은 아니다. 겨우 한 고비 넘겼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으면서, 당신 노래를 들으면서, 당신 생각이 났다. 당신이 조금, 그리웠다. 당신이 있었다면, 오늘 같은 날 신나게 노래를 불렀을 것만 같은데. 전투형 달빛요정으로 변신한 당신이, 어딘가에서 신나게 기타를 치고 있을 것만 같은데. 아아, 다른 사람들도 신나게 술잔을 들면서, 축배를 들었을 것 같은데. 당신이 없어서, 참, 아쉽다.

 

긴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자리에서 내려간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늘상 똥은 싸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더라. 그래도, 우리는 오늘, 작은 승리를 맛봤다. 그리고 또 달려가겠지. 어차피 인생에 의미가 없는 거라면,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만들 수밖에 없는 거라면, 스끼다시 내 인생이라 해도, 살기 위해 살기 보단, 뭐든, 달려봐야지.

 

난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고 멋진 사람도 아니야

내게 선택의 기회 따윈 없어
떠난다면 보내줘야만 했었어

모두들 나에게 고마워해야 해
이제는 행복해졌을 테니

– 나를 연애하게 하라 中

 

 

 

4.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 노래는 언제나 내가 기댈 가로등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나운서가 예뻐서 TV 뉴스를 보고, 고기반찬을 좋아하고, 허구헌날 사랑타령이나 하는 나이 값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참, 고맙다. 당신 노래가 있어서. 당신 노래는 어쩌면, 내가 당당해지는 무기, 세상이 한판 붙자고 다가와도, 피하지 않을 무기.

 

자꾸 비루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당신 노래를 흥얼거리며 버틴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마음속에 역전 만루 홈런 하나쯤은 품고 사는 법이니까. 내 인생의 영토가 주공 1단지까지 뿐이라고 해도, 달려야지, 마을버스처럼. 이 작은 승리마저 내 승리가 아니란 것은 안다. 그럼 뭐 어때. 어차피 스끼다시 인생이라면서, 달려야지.

 

오늘은 당신 노래를 들으며 일한다. 언젠가 구름 너머에서 행여 만날 일이 있다면, 술 한잔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좋겠다. 다시 한번 당신, 참, 고맙다. 좋은 노래를 남겨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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