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17, 빌 게이츠의 전망이 맞았다

지난 1월 5일부터 8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CES 2017을 보다가, 2008년 빌 게이츠의 마지막 CES 기조 연설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아마, 제1 디지털 시대가 끝나고 제2 디지털 시대가 열린다고 했던가. 윈도 95 등장 이후 PC와 인터넷, 휴대폰이 전 세계에 보급되고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시대를 넘어서, 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그가 말한 제2 디지털 시대는 이랬다. 커넥티드 익스피리언스(connected experience)를 기반으로 한 사용자 자신의 진보가 이뤄지는 시대. 어디에서라도 고해상도 영상을 만날 수 있고,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에 접속된 상태로 이용하며, 다양한 하드웨어가 서비스를 기반으로 서로 연결되고, 음성 인식 기술과 태블릿 PC를 이용해 보다 자연스럽게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세상.

 

Never doubt the magic of software

 

C.A.R.+ : 이미 있던 존재들이 기지개를 켜다

이번 CES 2017를 나는 C.A.R +라고 정의한다. 크게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기보다는, 예전에 등장했던 변화가 계속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자리. 커넥티비티(Connectivity), 인공지능(A.I), 로봇(Robot)을 비롯해 가상현실 등 다른 것들이 함께한 행사.

융합보다는 몇 년 전 유행했던 ‘통섭’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자리. 1+1=2가 되던 시대를 지나, 1+1+1+1+1=1이 되는 스마트폰 시대를 거쳐, 1+1=미지수 x가 되는 시대의 확인. 다만 그 미지수 x 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꽃은 피고 있지만, 어떤 꽃이 가장 오래 피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C+A : 알렉사, CES를 지배하다

예를 들어 볼까? 이번 CES 2017에서는 아마존의 인공 지능 비서 알렉사가 탑재된 제품들이 많이 선보였다. 예전에는 아마존 에코에 머무는 기기 종속형 인공 지능이었다면, 이젠 에코라는 그릇을 버리고 수없이 많이 다른 기기에 깃들며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탑재되는 기기들도 다양하다. 아마존 에코와 비슷한 레노버 스마트 어시스턴트를 비롯해 포드 자동차, 스마트폰 화웨이 메이트 9, 가정용 로봇 링스, LG 스마트 인스타뷰 냉장고, 호퍼 DVR, 인시피오 와이파이 전원 스위치, 월풀의 가전제품, 스마트 헤드 샤워, 삼성 로봇 청소기까지. 원한다면 알렉사가 탑재된 제품들로 집 한 채를 꾸며도 될 정도가 넘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까?

알렉사가 인공 지능 도우미 시장에서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얘기할 수는 없다. 알렉사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아마존의 수익은 여기에서 나온다. 같은 이유로, 구글이나 애플 같은 회사들도 쉽사리 양보할 수가 없다.

알렉사도 완전하지 않다. 아직 사용이 불편하기도 하고,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다. 그러니 시장의 승자가 누가 될지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소니, 삼성, 애플을 비롯해 중국 텐센트, LG 전자, 도시바 등 독자적인 인공 지능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회사는 꽤 많다.

… 무엇보다 알렉사는, 아직도 영어 밖에 모른다.

 

A + R : 로봇, 드론, 커넥티드 카 – 대지에 서다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들은 이번에도 많이 나왔다. LG 전자에서 깜짝 선보인 여러 로봇들을 비롯해, 인간형 로봇, 홈 로봇, 기능형 로봇들을 상당히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날아다니는 로봇이라고 볼 수 있는 드론은 이미 주류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 주행차, 커넥티드 카들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컨셉 수준을 넘어서, 직접 시승할 수 있는 자율 주행 차량들도 선보였다. 자율 주행차의 수준? 음, 수준은 아직 논하기 힘들다. 그냥 타봤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위 영상은 엔비디아의 자율 주행차 BB8의 데모 영상이다. 실제 시승은 아우디에서 만든 자동차를 가지고 좀 더 제한적인 상황에서 천천히 이뤄졌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만들겠다’ 소리만 쳤던 자율주행차를 실제로 타볼 수 있었다는 단계까지 기술이 발전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으니까.

 

도요타 컨셉트 아이

 

 

물론 컨셉 발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년만큼 많은 자율 주행차 콘셉들이 CES 2017에서 선보였다. 그중에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도요타의 ‘콘셉트 아이’-라는 차량이다. 자체 개발한 인공 지능 기술을 탑재해, 사람과 차량이 서로 파트너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 : 차이나, 그리고 가상현실

CES 2017의 특징인 연결성, 인공지능, 로봇에 모두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플러스알파도 있었다. 바로 중국과 VR이다.

이번에 중국의 약진(?)은 대단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페이크 제품, 또는 부품 공급사, OEM 업체라는 형식으로 CES에 참가했던 중국이, 최근 몇 년간 주인공 자리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었다. 실제로 이번 CES 2017 참가 업체 1/3은 중국 업체였다. 노쓰/메인/싸우스 홀로 나뉜 CES 행사장에서, 싸우스 홀에 가면 중국어를 더 많이 들을 정도였다고.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유인(?) 드론 이항

 

 

가상현실은 기술과 기기, 양쪽으로 다양하게 응용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레노버, 폴라로이드 등 다양한 회사에서 꽤 많은 VR 헤드셋을 선보였으며, 인텔 프로젝트 알로이에선 알로이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촉각을 강조한 VR 주변 기기들도 은근히 등장했다.

예전부터 컴퓨터 비전 같은 이름으로 커넥티드카, 드론 등에 적용되고 있는 부분을 빼고서라도, 가상 현실 기술이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보였다. BMW는 이번에 ‘홀로 액티브 터치’라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증강 현실 기술을 구현하는 도구로 스마트 글래스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그래서, 빌 게이츠의 전망은 적중했을까?

빌 게이츠가 꿈꿨던 ‘제2 디지털 시대’는 대부분 이뤄졌다. 다만 그 시대의 주역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었을 뿐. 빌 게이츠가 은퇴한 그다음 해부터 아이폰3Gs가 세상을 휩쓸었고, 많은 변화는 그런 스마트폰 보급에 기반을 둬 이뤄졌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대화면 디스플레이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이 언제나 함께하는 디스플레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인간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는 사실 ‘정전식 터치’ 기술을 통해 아이폰이 구현하고, 음성 인식 인공 지능을 통해 가능성을 테스트 받고 있는 중이다.

콘텐츠 소비는 온라인으로 많이 옮겨갔다. 이제 사람들은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고, 애플 뮤직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온라인 서비스로 음악을 듣는다. 많은 콘텐츠 서비스는 아이디 기반이라 하드웨어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기기로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다.

… 하지만 아직, 제3 디지털 시대는 오지 않았다.

이번 CES에서 보여준 것들 역시, 이미 있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정말 새롭다-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는 아이디어로 끝나지 않고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것들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아직까진 한계가 많이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도 느리다. 사람으로 따지면 청소년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나 할까. 당분간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중에 먼저 어른이 되는 기술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내가 가지고 싶은 제품은 벌써 등장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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