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항상 참고하는 사이트가 있다. 바로 카카쿠닷컴(http://kakaku.com/)이다. 우리말로 하면 '가격.com' 이랄까? 다나와 같은 가격 비교 전문 사이트인데, 제품 가격 정보 밑에 붙은 리뷰들이 꽤 쓸만해서 한국에서 제품을 사기 전에도 버릇처럼 한 번씩 들려보고는 한다.
얼마 전 카카쿠 닷컴이 20주년을 맞이했다. 1997년에 오픈했다는 말이니 상당히 오래된 사이트인 셈이다. 예전에 처음 개인 홈페이지를 열었던 때가 1998년 1월 30일이었다. 국내에서 상당히 빨리 연 개인 페이지라고 생각했는데, 가격비교 사이트가 그때보다 먼저 문을 열었으니 꽤 선구적인 사이트였던 셈이다.
아무튼 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카카쿠 닷컴에서 20주년 기념으로 당시 베스트 상품을 보여주는 특집 페이지(http://kakaku.com/20th/)를 오픈했다. 그 해를 대표하는 대여섯 가지 상품을 그때 당시 홈페이지 모습으로 보여주는데, 쏠쏠하게 재밌다.
그렇게 보다 보니, 내가 쓰고 있는 기기들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그래서 시작하는 오늘 글, 카카쿠 닷컴 20주년 기념 페이지로 돌아보는 지난 20년간 스마트 기기 변천사 이야기. 자- 그럼 1997년부터 차근차근, 과거로 한번 되돌아가 보자.
먼저 1997년이다. 한국은 아직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고, 개인적으론 전용 전화선을 놓아 PC통신을 하던 시절이었다. 윈도 95 발표화 함께 DOS를 벗어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환경으로 크게 변하고 있던 시기였고, 초기 인터넷 이용자들이 있던 때였다.
그런 만큼, 구 시대적 물건들도 많이 보인다. 프린터가 최고 인기 상품중 하나였다니. 요즘이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가장 반가운 것은 역시 도시바 리브레또 60. 당시 모바일 기기 가운데 가장 잘 나가던 제품 중 하나였다. 크기는 딱 비디오테이프 크기였는데, 진짜 윈도가 돌아가서 신기했던 기억. 물론 속도는... ^^;
... 물론 한국은 1997년 말에, IMF 사태를 맞이했었지...
다음은 1998년이다. IMF 사태의 파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던 시기. 이해에 윈도 98이 나왔다. MS는 한번 걸러서야 제대로 된 OS를 내놓는다는 주기 아닌 주기가 처음 생겼던 때다. 디지털카메라가 처음 히트 치기 시작했고, 나도 30만 화소 디카를 처음 사봤다.
하지만 세상은 이 해를, 아이맥과 함께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부활한 해로 기억할 거다. 그만큼 충격이었다. 뭐 사람 한 명이 돌아오고 나니 갑자기 히트작이 터져...;; 게다가 저 디자인도 꽤 충격이었다. 칼라풀한 일체형 컴퓨터라니. 물론 우리는 소니 바이오 PCG-C1을 사고 싶었다. 지금은 왜 저런 컴퓨터 안 만드나 몰라.
1999년, 인류 종말의 해라고 알려졌던 그 해다. Y2K 버그라는 공포 아닌 공포가 세상을 휩쓸고 있기도 했다. 물론 세상은 변한 게 없었고, 이 해 이후로 노스트라다무스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스마트 기기들은 전환점을 맞기 시작했다.
모바일 인터넷을 탑재한 휴대폰이 나오고, 애완 로봇이 등장했으며, 디카 열풍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한국은 2002년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아이모드의 인기는 정말 선풍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렌드를 만드는 주체로 (일본) 여고생이 각인되던 시절이기도 하다.
아참, 벤처 기업 붐이 이때부터 불기 시작했다.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무렵이기도 하다. 폴더식 휴대폰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때였던가.
1999년이 전환점이었다면, 2000년은 물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21세기를 장악할 트렌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각종 콤팩트 디카를 비롯해, 카메라를 장착한 휴대폰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모바일 인터넷과 게임이 꽤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희대의 명기 PS2 도 이때 발매됐다.
2001년은 뭐 딴 것 볼 것도 없다. 아이팟과 윈도 XP가 등장한 해다. 나중에 아이팟과 휴대폰이 합쳐질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이땐 아이팟이란 하나의 기기가 미국/일본 등지를 휩쓸고, 우린 이 제품을 살 수 없어서 속상했던 시기.
벤처붐이 슬슬 꺼져가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2002 월드컵으로 기억되던 해. 동시에 효순이/미선이 사건으로 인해 광장으로 촛불이 타올랐던 해이기도 하다. 프리챌의 허튼짓으로 싸이월드 붐이 불었고, 디카를 사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도토리가 있었는지는 가물가물.
... 반면 스마트 기기-라는 입장에선 별 볼일이 없었던 한 해이기도 하다.
역시 스마트 기기 입장에선 재미가 별로 없었던 해. 한국은 휴대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아마 Mp3 탑재 문제로 시위를 하던 음반사 관계자들도 있었다.... 그래, 휴대폰으로 Mp3 듣게 한다고 음반 관계자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했었다. 하아...
Mp3 플레이어, 디카 등등은 여전히 유행이었지만.. 우린 인터넷을 가지고 노는 것이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2005년경부터 기존의 소형 노트북을 넘어선 초소형(UMPC) 포터블 PC군과 맥미니, 아이팟 터치 등 기존에 유행하던 스마트 기기들의 소형/경박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저때 UMPC는 진짜 핫한 얼리어댑터들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블로그 붐이 천천히 불기 시작했다. 시작은 2003년 경이었지만..
2006~2007년쯤에 스마트 기기들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물론 이후 나올 스마트폰의 등장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휴대폰은 점점 멀티미디어 기기가 되어가고 있었고, Mp3도 진화하고 있었고, PS4와 닌텐도 위-등 신선한 게임기들도 등장했다.
... 하지만 이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역시 NDS. 정말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갔다. 일본에선.
윈도 7을 제외하면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던 시기. 하츠네 미쿠가 등장한 것도 사건이면 사건일까. 하지만 이 해에
아이폰이 발표되었다
아이폰 3G와 넷북이 등장했다.
이 사진에는 안 나와 있지만 아이폰3Gs가 발표되고, 한국에도 들어왔다. 그리고 세계는 변했다. 그에 비하면 윈도 7 정도야...
2009년 이후 스마트 기기 시장은 완전히 변해갔다고 봐도 좋다. 카메라는 콤팩트 디카 - DSLR 시가를 지나 미러리스 시기로 들어왔고, 콤팩트 디카는 도태되기 시작. 맥북 에어는 경량 초박형 노트북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으며, 시대는 완전히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기 시작한다. 아이폰4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도 저때는 진짜...
닌텐도 3DS와 PS vita의 발표. 아이패드 역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모바일 페이지가 등장했다. 이때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었기에, 일본 경기가 많이 움츠렸던 상황임을 감안하자.
그리고 다시 재미없는 시기의 도래. 로봇 청소기가 판매량 상위에 올라간 것은 눈에 띄지만, 비슷한 스마트폰과 비슷한 태블릿 PC와 비슷한 디카들이 많아 나왔던 과도기.
PS4 발표를 빼면 재미없는 시기 2. MS에서 2 in 1 PC라는 모델을 내놨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스마트폰 주변기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인기와 함께 페블릿 폰이 본격 등장하고, 3D 프린터 같은 스마트폰 다음 세대를 넘보는 기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액세서리들이 여전히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특히 음악 관련 액세서리들이.
드론이 첫 인기 상품으로 등장. 스틱 PC들이나 크롬 캐스트 같은 스마트폰 확장형 기기들도 관심을 받았던 시기. 그나저나 발뮤다 토스터가 이때 등장하면서, 생각을 잘하면 백색 가전(?)도 살아남을 길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3D 프린터와 드론에 이어 VR 헤드셋, 로봇, 가열식 전자담배(응?) 등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포켓 몬스터가 나왔고, 다이슨이 발뮤다에 이어 또 다른 백색가전(?)의 성공 방식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20년간 흐름을 쭈욱 보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PC, 인터넷, 휴대폰 시장이 한창 무르익으며 초박형 노트북, 신기능 휴대폰,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디지털카메라가 인기를 얻다가, 스마트폰 등장 이후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액세서리, 스마트폰 파생 기기(태블릿 PC 등)가 인기를 얻다가, 최근엔 스마트폰 다음 세대를 노리는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일본판이라서 어떤 것은 알고 어떤 것은 아예 모르는 제품도 많지만, 왜인지 90년대 후반과 지금 상황이 조금 비슷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가지고 싶은데, 살 수 없는 제품들이 많다. 드론은 DJI가 한국 진출했으니 괜찮지만, PS VR은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고, 로봇 관련 히트 상품들은 한국에선 보지도 못했다(참고로 저 제품은 로봇형 스마트폰...이다.).
지난 20년간, 스마트 기기 시장은 정말 숨 가쁘게 변해왔다. 그땐 그렇게 친숙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굉장히 옛날 기기가 된 느낌이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새로운 산업 전환을 꿈꾸는 마당에, 우리가 쓰게 될 스마트 기기들이 옛날과 같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앞으로 어떤 기기들이 등장하게 될까? 음, 일단 게임기들을 좀 사고 싶다. 특히 닌텐도 스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