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미국에서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가 열렸다. 개발자 컨퍼런스 시즌 마지막 행사라고 해야하나. 매년 5월쯤에 열리는 주요 IT 기업들이 개발자 행사- 페이스북의 F8, 마이크로소프트 빌드, 구글 I/O, 아마존 웹 서비스 서밋 등-의 끝에 열리는 행사다. 간단히 말해 주요 기업들이 개발자들에게 구애하는 기간이다.
하나도 발표되지 않은 하드웨어
이번 행사 전에 WWDC 2018에서 아이폰SE2가 나온다는 루머가 많이 돌았다. 나올 때가 지났는 데도 나오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으니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루머…다. 실제로 WWDC는 신형 맥북 컴퓨터가 발표되는 자리이기도 때문에, 정말 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아쉽지만, 새로운 하드웨어 발표는 하나도 없었다.
올해 행사는 2016년과 비슷하다. 주로 새로운 버전의 운영체제를 선보였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iOS 12, 맥북용 새로운 OS 모하비, 애플워치용 워치OS5, 애플TV에 들어가는 tvOS 12가 그 주인공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선보였다기보다는, 한 박자 쉬어가는 느낌으로, 기존에 있던 것들을 업그레이드시켰다-라고 보면 되겠다.
개발자 대회인 만큼, 원래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중심 행사이긴 했다. 다만 올해는 이상하게 아이폰SE2 소문이 무성하게 돌았다. 이런 움직임이 보여주는 애플의 속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이폰 라인업은 가을쯤 한번 정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작년에 아이폰X(텐)이 출시되면서 아이폰SE에 7에, 8에 8 플러스에 10까지, 갑작스럽게 복잡해진 라인업이 정리될 때가 되긴 했다.
iOS 12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iOS12는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가장 좋게 봤던 것은 예전보다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 애플 주장에 따르면 12버전 iOS를 설치할 경우 앱이 뜰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고 40%, 키보드가 표시되는 시간은 최고 50%, 카메라 앱이 구동되는 시간은 최고 70%까지 빨라진다고 한다.
칩 설계팀과 협업해서 성능을 많이 개선했다고 하는데, 신형 아이폰뿐만 아니라 구형 아이폰5s도 iOS 12로 판올림을 할 수 있다. 옛날 제품도 OS를 업데이트하면 속도가 좀 더 빨라지는 것은 덤…일까? 지금까지 운영체제는 하드웨어가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정하고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기능을 써보기 위해 기기를 바꿔야 하는 때도 많았다. 실제로 새로운 OS를 깔아보면 더 느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아이폰은 심했다.
다만 지난 배터리 게이트 이후, 애플은 개발자들에게 긍정적 메세지를 던져야 했다. 소비자 신뢰를 많이 잃어버렸으니까. 2013년 발표된 아이폰5s 까지 지원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번엔 빼도 누가 뭐라 그러지 않았겠지만, 5년이나 OS 업데이트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이만큼 자신들은 이용자가 안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구형 아이폰도 최신 OS를 사용할 수 있으니, 맘껏(?) 최신 OS에 맞게 개발해 달라고(아이폰5s나 se 이용자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여전히 미래는 AR에 있는걸까?
또 하나 인상적으로 본 것은 ‘AR킷2’다. 지난번 AR 기능이 맛보기였다면, 이번엔 좀 더 본격적인 AR 기능을 쓸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해도 좋겠다. 얼굴 인식 기능이 강화되고, 3차원으로 물체를 감지할 수 있으며, 여러 명이 함께 쓸 수 있게 됐다.
공식 측정 앱(Measure)도 출시된다. 이 앱을 이용하면 AR 기능을 이용해 현실에 있는 사물이나 방 크기 등을 자로 잰 듯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아예 기본 앱으로 탑재된다. 다만 AR 기능은 아이폰6 이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구형 아이폰을 지원하면서도, 신형으로 바꿀 이유를 빼먹지는 않은 셈이다.
그 밖에도 기조 연설에서 발표된 내용은 매우 많다. 중요한 내용은 Siri에 숏컷이란 새로운 기능이 들어간다는 것과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해주는 기능, 자신을 닮은 아이콘인 미모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겠지만. 또 맥OS를 iOS와 통합할 계획은 없지만, 대신 iOS용 앱을 쉽게 맥용으로 바꿀 방법은 찾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가만히 보다 보면 분명 보수적이다.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보다 예전 것을 다듬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동안 애플이 옛날 애플답지 않다는 말이 많았다. 최신 기술은 쓰지 않아도 한번 쓰게 되면 흠잡을 데가 없이 쓰는 회사가 애플이었는데, 요즘엔 소프트웨어 버그도 많고 많이 불안정해진 모습을 보여왔다.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가 성장하던 시대에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여도 문제없지만, 올해부터는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이 멈추는, 어쩌면 감소할 지도 모를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시기에는 단골들을 잘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은 가장 매력적인 플랫폼 회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 판단은, iOS12가 정식 출시된 다음에나 할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