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게임 클짱이 11살이라고 해도

호기심에 약한 사람이라 무언가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자꾸 그 일을 하고 싶어 진다. 3D 프린터에 관해 쓰다 보면 프린터를 사야 할 것 같고, 로봇 강아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로봇 강아지를 주문하고 있다. 글 쓰다 사게 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음성 인식 스피커가 한 둘이 아니다.

게임에 대한 글을 쓸 때가 제일 괴롭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게임하는 시간이 열 배는 더 많다. 지금 하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게임을 소개하는 글을 쓰다 알게 됐는데,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다. 옛말이긴 하지만 이 정성으로 연애 했으면 이미 결혼하지 않았을까?

혼자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클랜’에 가입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실력이 미천해서, 받아주는 모임이 별로 없어서 힘들었다. 초보에게도 친절한 곳을 찾아 겨우 들어갔는데, 여기도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가끔 클랜원들과 채팅을 하는데, 하루는 누군가 채팅창에서 욕설이 섞인 못된 장난을 치고 있었다. 클랜 대표가 화가 나서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너 몇 살이냐?

나 11살이다.

 

잠시 망설이다 돌아온 대답이 ‘9살이요’였지만, 이미 내 말문이 막힌 뒤였다. 그동안 게임 전략을 가르쳐주고, 물량을 나눠주고, 활동을 지시하고, 커뮤니티를 관리해 왔던 그 예의 바른 사람의 정체는 ‘11살’이었다. 정말 놀랐다.

클랜원들이 어릴 거라 생각하긴 했다. 게임에 참가하는 시간을 보면 얼추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이리 어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까운 이들 중에 어린이가 한 명도 없고, SNS나 게임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 탓이다. 아이들과 내 취향은 매우 다르다.

 

해외에서는 이 세대를 Z세대 또는 ‘마인 크래프트 세대’라고 부른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게임 ‘마인 크래프트’를 즐기며 자라나서 그렇다. 이 게임은 주어진 줄거리 없이 블록 장난감처럼 가상 세계를 조립하며 만들 수 있는 ‘도구’ 같은 게임이다. 간단한 규칙은 있지만, 규칙은 가상 세계를 지탱하는 원칙에 관해 설명하는 길잡이에 가깝다.

여기서 아이들은 스스로 세계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며 논다. 때론 유튜브에서 남이 만든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서버를 만들어 다른 이를 초대해 함께 즐기고 게임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아이도 있다. 이 안에서 영화를 찍고, 소설을 쓰고, 게임 안의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부모님은 게임이나 한다고 그리 반기지 않지만.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은 아니다. 배움은 언제나 모방하고 재현하면서 이뤄진다. 예전에도 소꿉장난하거나,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을 흉내 내며 놀거나, 스스로 게임을 만들거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아이들은 있었다. 다만 정규 교육 과정에 들어가는 순간 억압되는 놀이를 마인 크래프트 같은 게임은 계속 연장해 준다. 게다가 이 게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백지장 같은 공간에서 스스로 결정해서 만들고 움직이며 자기 세계를,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게임 세대, 회사를 점령하다』라는 책에서 보여주듯 사람은 자신이 즐겼던 행동에서 생활 습관이 만들어지고는 한다. 어떤 정보를 찾을 때 부모님 세대는 잘 아는 사람에게 묻거나 114로 전화를 하고, 우리 세대는 인터넷이나 SNS를 검색하며, 새로운 세대는 유튜브를 검색해서 동영상을 찾는 것처럼. 지금 세대의 몇몇 아이는 게임을 통해 주도적으로 성취감을 맛봤다. 서버를 위한 컴퓨터 세팅과 커뮤니티 운영을 경험한 이도 있고, 이야기꾼 재주를 드러내거나 창작에 소질을 보인 이도 있다.

 

이들이 자라나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될까? 쉽게 예상하기 어렵지만, 내가 할 일은 안다. 나는 클랜에서 탈퇴하지 않았다. 온라인 모임방을 만든다기에 잠시 망설이다 가입했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따라가 배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원칙은 그대로다. 우리 클랜 대장이 11살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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