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선이 없는 세상을 꿈꿔본 적이 있지 않을까? 꼭 필요하지만 거추장스러운 USB 케이블이나 전원 코드, 이어폰 선, 랜 선 같은 것이 없는 세상에서 살면 좋겠다고.
수많은 케이블이 뒤엉켜 있는 컴퓨터 책상을 본다거나, USB 케이블이 망가지는 일을 겪었다거나, 이어폰 선이 걸려 스마트폰이 떨어지는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더할 듯하다. 말끔한 집 안 인테리어를 늘 망가뜨리는 것도 선이고, 충전 케이블 꽂는 것을 잊어 배터리가 떨어진 스마트폰을 들고 출근해야 하는 일도 있다.
…이게 모두 선 때문이다.
무선 충전은 그래서 태어났다. 정확하게는 무선전력전송(Wireless Power Transfer)이라 불리는 기술을 이용한 충전 방식이다. 처음에는 전동 칫솔 같은 ‘물에 적셔질 위험이 있는’ 기기 위주로 쓰이다가, 지금은 스마트폰 충전 방식으로 많이 쓰인다.
충전 케이블에 꽂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쓰기 편하다. 물리적인 연결 부분이 없어서 망가질 일도 적어진다. 다만 지금 방식은 진짜 무선 충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유선 충전기에 가깝게 놓아야 하니, 스마트폰에 선만 꽂지 않았을 뿐 유선 충전과 뭐가 다르냐는 뜻이다.
처음에는 지금과 달랐던 무선 충전
꼭 그렇게까지 따져야 할까? 싶겠지만, 사실 처음 무선전력 전송을 구상했을 때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1905년, 교류 전기의 아버지 니콜라 테슬라가 뉴욕에 테슬라 타워(또는 원더클리프 타워)를 세웠을 때는 말이다.
미국에서 영국으로 전신, 전화, 화상 전송 등을 할 목적으로 세워진 이 타워는, 비록 무산되긴 했지만, 내부에 설치된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 장거리 무선전력 전송을 실험하려고 했다. 테슬라는 가장 먼저 무선전력 전송 실험에 성공한 과학자였고, 세계에 무선으로 무료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능 여부를 떠나, 이 시스템이 가지는 장점은 명확하다. 라디오 전파를 잡는 일과 마찬가지로 전기를 쓰면 된다. 선을 꽂거나 특정한 장소에 놓을 필요 없이, 어디서나 기기를 충전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무선전력 전송 방식이다.
단점도 분명하다. 실현하기 어렵다. 특히 전자파의 인체 영향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큰 이 시대에는 실험도 하기 힘든 전송 방식이다. 이런 방식 대신 채택한 기술이 근거리 무선 충전, 그중에서 자기 유도 방식이다. 송/수신부가 가까워야 작동하지만, 안정적이고 효율이 높다. 무선 충전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은 거의 이 방식으로 충전한다. 사실상 표준은 세계무선충전협회(WPC)에서 정한 Qi(치)다.
다양하게 지원되는 무선 충전
테슬라 이후 간헐적 시도에 머물던 무선 충전은,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싹을 틔웠다. 2018년 IHS 마켓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약 4억 5,000만 개인 무선전력 송/수신기는 2023에는 22억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스마트 디바이스 무선 충전 표준이 Qi로 통합되면서 도입 비용이 낮아진 탓이다. 주로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 전동 칫솔 같은 개인위생 기기에 사용된다.
무선 충전 표준이 확립되면서 이를 지원하는 제품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가구 업체 이케아에서는 무선 충전을 지원하는 탁상 스탠드, 플로어 스탠드, 작업등, 침대 협탁 등을 내놨다. + 표시된 자리에 무선 충전 지원 스마트폰을 올려두면 간단히 충전할 수 있는 가구다. 삼성전자에서 새로 내놓은 노트북은, 트랙패드를 무선 충전기로 쓸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무선 충전은 계속 진화 중
자기 유도 방식 말고도, 무선전력 전송 방식은 다양하게 있다. 수 m 이내의 거리에서 여러 기기를 동시 무선 충전할 수 있는 자기 공진 방식이나, 전력을 마이크로파나 레이저, 초음파로 바꿔 먼 거리를 전송하는 방식도 연구 중이다.
무선 충전이 사용되는 곳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전 기기 전원 공급을 비롯해 전기 자동차를 충전하거나, 생체 의료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우주 태양광 발전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해 더 작은 기기에, 더 멀리, 더 강하게, 한꺼번에 전력을 무선 공급하는 방안을 개발 중이다.
지난 2019년 3월 드러난 삼성 TV 특허를 보면, TV 하단에 놓인 자기 공명 방식으로 추정되는 무선전력 송신기를 통해 TV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특허가 상용화될 경우, 앞으로 수많은 가전제품이 무선으로 전기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TV 설치 및 위치 변경도 지금보다 자유로워지고, 무엇보다 더 깔끔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카이스트 교원창업기업 와이파워원은 ‘제6회 국제전기차엑스포’에서, 도로 밑에 매설된 전선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이용해 충전하는 무선 충전 전기 버스를 선보였다. 이 전기 버스가 도입될 경우 기존 전기 차량의 충전 플러그 호환성 문제, 충전기 설치 공간 문제, 충전 대기 시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선 서울대공원 코끼리 열차, 카이스트 교내순환 셔틀버스, 구미시 시내버스 일부가 무선 충전 전기버스로 운행하고 있다.
오씨아(Ossia)에서 출시 예정인 코타(Cota)는 RF 신호를 이용해 최대 10m 이내에 있는 여러 대의 기기를 동시에 최대 1W로 충전하는 무선전력 전송 시스템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전기를 공급하는 와이파이 공유기다. 스마트폰, 전구, 디지털 액자 등을 비롯해 집 안에 있는 여러 사물 인터넷 기기를 동시에 충전하거나, 전원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변영재 교수 연구팀은 ‘페라이트(ferrite)’를 이용해 여러 개의 전자기기를 자유롭게 배치해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책상 상판에 페라이트를 겹겹이 붙여서, 책상 전체를 무선 충전기로 쓰는 기술이다.
무선 충전은 어디로 향해가고 있을까? 우선 전기 자동차와 사물 인터넷이다. 이 분야는 무선전력 전송 기술을 도입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확실하다. 언젠가는 원거리 전력 전송이 가능해져 ‘우주 태양광 발전’이 상용화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정말 선이 하나도 없는 책상도 꿈이 아니지 않을까?
… 아니, 이렇게 말하고 나니 왠지 선이 하나도 없는 책상을 죽을 때까지 볼 수 없을 듯한 기분이;;